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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는 사람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특히 힘없는 사람의 기록은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온 그 뜨거운 시절이 있었어도 그 속에서 힘없이 고통 받고 힘들어 하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머리에서 잊혀 진다. 그래서 사람을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 힘은 때론 젊은 시절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80년대 뜨거운 열정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은 뜨거운 피가 흐르던 시절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비난 할 수 없다. 그들의 뜨거운 피가 만들어 놓은 지금의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청동정원’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후반까지의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과 그 주변의 기록이다. 아니 소설이다. 너무 리얼하게 느껴져서 생생한 기억과의 일치감 때문에 소설 같지 않은 기록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힘을 뺏은 사람 그 힘을 머리로 맨 몸으로 막아내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날부터 6.29 선언이 일어나는 날까지 비참하게 억눌렸던 인권 혹은 사상들에 대한 우리의 현실과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익숙한 말들이 많이 나와서 반갑기도 하고 좀 서글퍼지기도 했다. 당시 운동권의 실상은 그렇게 멋모르는 신입생 하나 꼬득여서 선동가로 만들지는 않았다. 혹 그런 모습이 있었다 하더라도 일부였을 것이고, NL, PL이니 하는 것도 일부에 한하였던 것 같다. 시위도중 최루탄에 맞아서, 고문에 의한 죽음이 아직도 이 땅에 존재한 다는 것에 분개한 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생각된다. 또 성고문이 경찰서에서 자행 되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 역시 있었던 것 같다. 인권이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들로 인해 사회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비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사실 당시 시위에 참가 했지만 여기에 나오는 사상서나 마르크스 뭐 이런 것은 잘 몰랐다. 87년에는 참 많은 시위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 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소설은 몇 가지의 문제점을 던져 주고 있다. 먼저 처음 만난 운동가 선배에게 폭력을 당하는 여자 주인공의 상황, 두 번째는 운동권 학생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 즉 시위 전력으로 감방에 다녀와서 변호사가 되는 것에 대한 묘한 의문, 세 번째로 그렇게 자신들이 저항 했던 세력 밑에서 일하게 되는 상황, 이 상황은 자신의 상황을 빗대서 이야기한다. 군사정권의 아들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페미니즘 요소와, 현실과 이상에 대한 질문, 그리고 정말 생계를 위한 조직에 굴하는 모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문제점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다는 어떤 것이 더 자신을 덜 괴롭히는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이 소설의 나는 소설 작가로 그 탈출구를 찾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