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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에게 장미정원을 약속하지 않았어
조앤 그린버그 지음, 윤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겐 또 하나의 세상이 존재한다. 그 세상은 내가 군림하고 내가 만들고 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 세상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은 아마도 나를 세상과 멀어지게 할 것이다. 이 것이 가져다주는 파급은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므로...
데버러가 만든 세상은 ‘이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과 반대로 돌아가며, 누군가를 멀게 느껴지는 세상, 그 세상에 빠진 데버러는 정신병원이라는 세상과 고립된 공간으로 들어가지만 그 곳 역시 세상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곳에서는 따뜻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는 세상의 눈이 조금 더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데버러는 다시 세상과 조우할 기회를 만든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소녀의 필사적인 자신과의 싸움이 그려진 작품이다. 결국 해피엔딩을 만들고 스스로 세상과 당당하게 맞설 힘을 얻어 돌아온다는 이야기 이지만 그 내면의 에피소드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반에서 이등은 안돼, 넌 일등을 해야 해!” 다치더라도 절대로 울어서는 안돼, 웃어, 그들이 너를 해치고 있다는 것을 절대로 알게 해선 안돼. 그것은 비밀스런 농담을 웃으며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하라는 지시였다. Page 151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일등을 위한 세상인 것 같아서, 아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심코 던진 말 속에서 아이가 받았을 상처와 가치의 충돌을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급하고 조급하고 다급한 부모의 심정에서 아이는 세상이 쳐 놓은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민을 한다. 그리고 부모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고민을 하고 그 것의 가치 충돌로 인하여 아이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데버러가 만든 ‘이르’의 세상이 그 것이 아니었을까?
부모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극단 적인 정신병원의 설정이 아니더라도 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의 내면의 갈등을 엿보기 시작한다. 의사가 말하는 장미정원의 약속을 결코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것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역할은 아닌 것 같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주는 것은 데버러의 부모의 모습처럼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한다.
“나는 평화나 행복을 약속하지도 않았어. 내가 듣는 것은 너가 자유로와 져서 이러한 모든 것들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현실적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고” Page 168
이상적인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소녀의 마음은 세상은 정의로워야 하며 그리고 그렇게 움직여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게 보일 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모습은 스스로 도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고 그 판단에 지지를 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스스로 그 기다림을 위해 많은 부모가 기다려 주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는 날까지
“데버러는 그녀를 위해 이 싸움을 준비한 사람은 자신의 부모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그녀가 아무 변화도 보이지 않던 바로 그 순간에 그녀를 싸움에서 떼어낼 수도 있었다. 그들은 결코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딸의 미래를 믿었다.” Page 354
무슨 내용일까?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읽어 보았는데 같은 부류의 내용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작한 읽기는 읽으면서 심각해지기 시작 했다. 현실의 내 모습과 힘들어 하는 사춘기의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부모의 입장만 강요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덜컥 겁이 나기도 하였다. 데버러처럼 아이가 심각한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신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힘들어졌다. 모든 아이들이 이 시기를 겪으면서 세상과의 충돌 가치관의 충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모의 기대에 대한 자신의 역량을 생각하며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 속에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온 힘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니 조금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 시기 나의 모습역시 그렇게 기다려준 부모님의 모습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것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고 그 믿음을 우리 아이들이 져 버리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