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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7월
평점 :
사람이 극한 상황에 놓이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소설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하는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과 그 속의 배경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묘사와 함께 독자에게 자신을 그 속에 등장 시키는 묘한 상상력 속에서 글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 역시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소설류의 공통점일 것이다. 비슷한 소재는 많지만 [극해]는 또 다른 한 가지를 담고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그 아픈 역사의 배경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육지가 아닌 바다라는 사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이 저지른 여러 가지 만행 속에서 피해를 당한 여러 나라의 이야기를 같이 담고 있다. 자위대가 아닌 군대로 자신의 군인들을 단련시키겠다고 말하는 지금을 일본 지도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현실과 역사속의 일본의 한 단면을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많은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등장인물들의 묘사가 비슷하듯이 이 소설의 이야기 역시 극한 상황에서 보일 수 있는 많은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가치관과 생존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공존할 때 느끼는 상실감을 묘사하며, 현재의 우리의 위치에서 자신이 배워온 단어들과 현실에서 존재하는 단어의 의미가 서로 상충할 때 느끼는 스스로의 자괴감이 같이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 속에서 작가의 단초가 풀어낸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의 한 복판에서 저 멀리 남극의 기지까지 이어지며 그리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들의 군상과 현실에 대한 대립을 같이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군수 물자를 관리하던 일본은 포경선으로 사용하던 배를 군용으로 차출하여 전장에 내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고 이들은 식민 국가의 혹은 점령국의 사람들로 채워진다. 선원모집이라는 정상적인 굴레를 가장한 징용 즉 전쟁에 기여하는 사람들로 탈바꿈한 사람들은 일본인의 모진 학대와 고된 노동 속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만 배라는 작은 공간에서는 벗어날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폭격을 받아 엔진이 고장 나고 표류하는 배에서 이들은 더욱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며 전세가 불리한 일본군의 학대는 더 심한 고통을 안겨 준다. 이 속에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정신적 물리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그 속에서 독자는 정말 인간이라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현실을 대입시켜 본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page 60)
정섭은 토하고, 토하고 또 토했다. 안에 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낼 듯이 구역질 했다. 양동이에 그것들이 뒤섞이며 검고 매끄러운 선명한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것은 잔잔히 일렁이다가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와 정섭을 삼켰다. (Page86)
아이러니 하게도 선생이 대학에서 배웠던 것은 부조리에 싸우는 인간과 그것의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하지만 이 배에서 실상 자신은 부조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Page125)
스스로를 위안하며 자신을 바꾸기도 하고 온몸으로 거부하며 자신을 지켜보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은 하나의 미약한 존재로 그대로 거부하지 못하고 그 속의 일원이 된다. 삼켜지고 싶지 않지만 삼켜지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지켜보기도 하고,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를 위안하고 지키는 방법을 고민한다. 작가는 그 극한 상황을 그렇게 표현하며 등장 인물들의 고통과 변화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스토리의 전개상에서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그렇게 익숙해지는 것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작가는 절대 굴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인 민족의 특성을 끌어낸다. 처음에는 그렇게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 가지만 결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극에 달하면 꿈틀하며 세상을 뒤 엎는 힘을 가진 민족이다. 그 민족혼을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 준다. 통쾌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하지만 책은 이제 절반의 분량밖에 지나지 않았다. 끝날 것 같은 이야기의 끝은 또 다른 이야기로 흘러간다.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로가 무언가를 이루어 내고 지켜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잘 뭉쳐서 어려움을 헤쳐 나간 사람들의 그 뒷이야기는 씁쓸하다. 우리의 현실을 보는 모습이기 때문일까? 아등바등 다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거대한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은 악다구니 치며 벗어나려는 현실이 거대한 흐름 속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 아마도 놓치지 않으려고 움켜쥐었던 모래를 바라보는 절망감에 고개를 숙였을 때 내가 서있는 이곳이 모래사장이었음을 알았을 때의 허탈감 같은 것을 느낄 때의 느낌 이었을 것 같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단초하여 그 속에서 인간의 모습과 현실을 작은 배와 시대적 흐름 속에서 보여주는 군상들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내용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