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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켜다 - 무도한 세상에 맞서는 세상의 울림
표정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3월
평점 :
모든 덕은 양극단 사이에 있습니다. 용기는 비겁함과 만용사이에 있습니다. 너그러움은 낭비와 인색의 중간이고, 긍지는 허영과 비굴함의 중간이며, 기지와 재치는 익살과 아둔함의 중간이며, 겸손은 수줍음과 몰염치의 중간입니다. 이처럼 용기, 너그러움, 긍지, 기지, 겸손 등 모든 덕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중용입니다. (80쪽)
사람은 모든 것의 양 극단 사이에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된 것을 자신만의 가치와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고, 그 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마도 철학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사람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 시대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흙, 공기, 불, 물을 온 세상을 만드는 기본 물질로 생각하고 그 것의 결합을 사랑과 미움의 정도에 따라 구분 되었다고 생각한 엠페도클레스의 생각을 지금의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많은 것을 알 수 없었던 오래된 과거의 사람들의 생각의 시작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이 만들어 졌을까? 라는 질문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던진다면 그 아이는 무엇으로 세상이 만들어 졌다고 대답을 할까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문명의 이기가 없었던 시절 그 시절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어떤 답을 하고 그 것을 진실이라 믿었을까요?
시대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그 생각은 변화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와 보이고 편한 것에 대한 가치 그리고 남을 지배하는 것과 그냥 자연의 일부로 세상을 살다가는 것에 대한 가치의 경중을 따진 다면 우리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요? 아마도 사람마다 다르겠죠? 이름을 남기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에 가치를 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좀 다른 비유 이기는 하겠지만 사후를 믿는 종교인들에게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겠으나 사후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자신의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니 또 다른 의미가 될 것 이구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자신이 알아낸 진실을 위해 종교재판을 불사했던 코페르니쿠스와 자신이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종교재판을 피하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렸던 갈릴레이 이들의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더라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같은 사실을 가지고 한사람은 종교재판을 한 사람을 그 사실에 고개를 돌립니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저자는 철학을 심오한 것으로 보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가 만든 진실도 어쩌면 세월이지나 역사의 관점으로 볼 때 진실이 아닐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면 지금의 나의 생각과 가치의 무게는 아마도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것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나만의 생각도 후세에 필요한 것이 있고, 쓰레기처럼 버려질 것이 있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현 시대의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역사라는 시간이 더해져서 우리의 사고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배우기에 사장된 이론과 사상은 조금 멀리 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다루기에 조금 방대함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요약본 혹은 요점정리와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 저자의 생각과 위트가 더해져 있고 시대적 상황도 때로는 편지글 때로는 대화로 표현이 되어 있어 읽는 것이 무겁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원한 것이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형식의 파괴 였다면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가치관과 진실에 대한 싸움을 끈임 없이 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해나가야 할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앞선 사람들의 생각의 자취와 줄기는 파악해 놓아야 한다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발점이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