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열 한편의 소설은 짧지만 가볍지 않습니다. 쉽게 읽혀 질 평상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내면의 그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개운함 혹은 카타르시스는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없는 영화를 보고도 눈물이 나는 그런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입니다. 어디서 소재를 끌어 왔을까? 작가를 더 궁금하게 만들고 우리가 담아야할 응어리를 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죽어 동지들을 살리려는 젊은 도련님이 물푸레나무 지팡이를 짚고, 자신의 여자가 눈물 떨구고 간 그 길에 핏방울 뿌리며 걷는다. 그 모습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 마음, 제 목숨 던져 무엇을 지키고 단호히 보내고, 단호히 보낸 그 여자 간 자리, 죽을 자리 살아 찾아든 그 마음, 아득히 멀다. (35, 숲의 대화중에서)

 

나도 모르게 이 몇 줄을 몇 번을 읽어 봅니다. 읽고 또 읽고 읽으면서 다시 도련님의 상황으로 들어가 봅니다. 운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도 되어 봅니다. 아니 여인의 간절함을, 눈물 흘리는 여인의 뒷모습의 고개 숙인 눈물 자국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모두 떠난 그 자리에 남아있는 운학은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시간에 떠나보낸 여인의 자취에서 그 여인이 그리워하던 도련님과 대화를 합니다. 인생사에 대한 고찰을 답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도 누구도 원망하지도 않고 살아온 인생 그 속에 아득히 멀다는 아직도 모두 지워지지 못한 흔적을 그렇게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잔잔한 이야기 속에 깊은 아픔을 담고 있지만 시원하게 한 바탕 눈물을 흘리고 난 느낌입니다. 그렇게 들려주는 우리 역사의 굴곡과 개인사는 짧은 글에 무섭게 녹아들어 있었나 봅니다.

 

세월은 정작 둥글려야 할 것은 그냥 놔두고 육신만 갉아먹은 모양이다.

(57, 봄날 오후, 과부 셋 중에서)

 

모진 세월이 지나도 항상 그 때처럼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를 만난 나이는 지금의 우리도 그 나이로 돌려놓습니다. 그 느낌으로 봄날 오후, 과부 셋의 느낌이 남습니다. 인생의 서편 모진세월 힘든 시간을 보낸 이 세 여인, 할머니의 이야기와 행동은 과거의 그것과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분명 못된 일임을 알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을 이 친구에게 만은 하고 맙니다.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험한 세월이 지나도 과부가 된 지금도 그 들은 친구입니다.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모든 과거를 알고 있는 과부 셋은 그렇게 황혼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더 주절거리고 한 편 한 편에서 받은 느낌을 옮기는 일이 수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중풍에 누워 있는 아버지 그 기억 속에 어머니와 외국인 어린 신부 그냥 등장인물만으로 저는 짠 해집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하지만 좌절은 없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행복의 출발점을 찾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렇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쉽게 읽혀지지 않고 곱씹어 읽게 만드는 문장과, 한 편이 끝나면 잠시 눈감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여운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단편을 읽고 이렇게 묵직한 느낌, 가끔은 행복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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