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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가족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부모라는 것에 대하여서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고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면서 그 것에 반응하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펭씨네 가족처럼 말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예술이라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자신들의 삶이 같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한 ‘퍼포먼스’ 그 행위의 당사자는 어찌 되었든 자신의 가족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상천외한 퍼포먼스와 그 상황들은 웃음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이 예술을 하는 펭씨네 가족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특이한 복장을 하고, 거기에 맞는 이름을 만들어 내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모습은 겉모습만으로는 매우 흥미롭고 코미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이 우울한 느낌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자신의 퍼포먼스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이들이 즐기고 즐거워하고 만족하였다면 아마도 불편한 마음은 조금 덜 했을 것 같습니다. 과정이나 상황이 조금 과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만족을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이 가족은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일반인들,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 만족을 찾으려 합니다. 내면의 행복을 찾는 일이 더 가까운 길인데 우리의 일상처럼 외면에서 자신의 목마름을 찾아 헤매는 것 같습니다. 가짜 무료 쿠폰을 나누어 주고 한 식당의 당황한 모습을 예상 했지만 아무 문제없이 식당의 매니저는 그 쿠폰으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펭씨가 따지지만 정식 쿠폰이라며 예상치 안은 상황을 만들어 갔을 때의 허탈함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 예술이란 사물들이 살아 움직일 때 생기는 거야. 지랄 같은 얼음덩이 안에 고정된 형태로 가둬놓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181쪽)
이들의 퍼포먼스는 아마도 여기서 생각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행위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결국 이들의 결혼씩 역시 30여회를 넘기는 진 기록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부분에 대한 생각은 아마도 이들이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결과물에 대한 생각이 좀 다른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한 자신들의 느낌이 아마도 이들의 생활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합니다.
여러 가지 퍼포먼스와 이들의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겹쳐져 나오면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이들의 아들과 딸이었습니다. 역시 작가의 마무리 역시 이 가족만의 방법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역시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면 끝이 좀 예상하기 쉬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지가지 상상을 초월하는 퍼포먼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들의 삶의 방식 속에서 가족의 주체와 자신의 주체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조금 대책 없는 질주 속에서 현실을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처럼 아마도 조금 생각을 던지는 상황설정이 아니었나 합니다. 가족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자아라는 정체성, 그리고 속해 있는 사회가 가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즐거운 가족 소설로 생각을 했는데, 예상보다는 많이 묵직함을 전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생각도 할게 많구요, 구체적으로 무엇이라 이야기 하기는 힘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