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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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 결정은 한계가 있으며, 개인적인 것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삶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서약이다. (253쪽)

 



이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리고 동물을 먹는 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것일까? 책의 제목에서부터 이런 고민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저자는 동물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우리의 식욕이 가진 탐욕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탐욕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 것 즉 동물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동물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기 시작한다. 쉽게 말해서 공장식 축산업은 저 비용으로 고 효율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공장형의 축산업을 말하며, 이는 닭을 키우든 돼지를 키우든 적게 먹이고 많은 살을 얻을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축산업을 양산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은 비판적인 부분의 저서를 읽었지만 저자는 소설가적 사유를 독자들에게 더 강한 임팩트로 던져주고 있다. 그렇게 사육되는 가축들의 고통을 이야기 할 때도 이 동물들이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고민하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만의 문체로 더 임팩트한 단어의 배열을 통해서 가슴속 깊은 곳에 고통이라는 단어를 남게 만든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고통이란 크고 작은, 날것의 다면적인 모든 신음, 비명, 한숨의 근원에 붙인 이름이라는 것은 안다.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그 단어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보다는 우리의 응시를 정의 한다. (105쪽)

 



이런 수사적 언어의 유희는 이어지는 현장 고발적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물을 사육함에 있어 보다 효율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유전자의 조합 역시 바꿔버리는 인간의 잔악함은 결국 공장식 축산이 아닌 다른 방법 즉 방복을 통한 자유로운 환경에서의 성장을 방해하고 유전자가 그런 상태이므로 그 들은 방목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병들고 항생제를 통해서만 연명할 수 있는 그런 생명체로 존재하며 사람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그런 하나의 소모품과 같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생활이 되었다.

 



즉 저자가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세상의 식욕이라는 감각 때문에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자신의 식욕을 채울 수 없었던 저자의 마음을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소를 잡을 때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눈물로 공손하게 눈을 보고 이야기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많은 것을 남겨준 가축에게 보내는 예의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우리의 입을 채우고 살을 찌우는 많은 동물들에게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알지만 공장식 축산업에는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마도 그 것을 통해 탐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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