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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홀로코스트를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작품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데 나는 홀로 코스트의 잔혹함 보다는 현실의 모습을 더 깊게 바라보게 된다. 얀 마텔이라는 작가가 유명하고 파이이야기라는 책이 좀더 유명하였던 것 같은데 나의 짧은 독서 경력으로는 그의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평을 보면서 이 작가가 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의 특성을 조금 짐작할 뿐이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배에 대한 꿈으로 가득하다. 그 것을 묘사하고 그 것을 찾아 해메이며 그에 대한 상상에 스스로 즐거움을 얻는다. 하지만 그 들의 삶은 아니 동물이니 삶이라 하기는 좀 어렵지만 들의 삶을 둘러쌓고 있는 것은 박제된 자신들의 동료의 모습이다. 이 동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화자는 작가 자신이라 보아도 무방한 헨리와 박제사의 이야기 속에서 두 동물 당나귀와 원숭이의 대화로 짜여 진 희극을 다룬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잔혹한 홀로코스트의 잔영을 박제된 동물들 그리고 멸종 되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찾으려 하지만, 내가 만난 작품속의 박제된 동물은 박제사의 의도에 따라 짜여 진 동물들의 모습. 날아가는 새의 모습, 아니면 웅크린 포유류의 모습 어쩌면 절대 권력자 즉 박제사의 의도에 따라서 변화되고 만들어진 동물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혹은 죽은 뒤의 나의 기록은 그렇게 어떤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만들어질지 모른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말이다. 베아트리스와 버질 처럼 한 번도 맛을 보지 못한 배를 찾아 해매이듯이 우리는 행복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무조건 돌진하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이다 박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슬픈 세상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들려진다.
많은 비유와 은유가 숨어 있지만 마지막 게임이라 일컬은 장면은 잔혹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내가 살기위해서 혹은 행복한 기억도 지워버리는 독약을 마셔서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어야 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그런 선택의 자유는 누군가 혹은 박제사가 만들어진 포즈대로 내 삶이 정형화 될지 모른다.
얀 마텔의 소설은 처음 읽지만 생각보다 많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듯하다. 선택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지 모르며, 분명한 사실을 알지만 그 사실을 무시하고 또 다른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나귀 등 뒤에 올라가 있는 버질의 구부러진 꼬리의 감김처럼 우리도 어떻게 감겨있는지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얀 마텔의 의미심장한 단어의 배열 그리고 소설 속에 다시 들어가 있는 희곡의 전개는 독특하면서도 생각을 깊게 만드는 글이었다. 쉬운 듯 어렵게 어려운 듯 쉽게 읽혀지는 묘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