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거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카산드라의 저주가 아닌 카산드라의 거울이다. 카산드라는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하여 미래를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게 되는 저주를 받은 여인이다. 베르베르 베르나르는 고대의 이 여인의 설화를 제목으로 가져왔다. 저주가 아닌 거울이라는 이름으로 이 여인을 현대에 부활 시켰다. 거울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 저주 받은 그의 예지능력을 그는 현대의 17살 주인공의 이름으로 차용하면서 거울 즉 그의 저주를 반사하여 돌이키는 그런 모습을 가져온 것일까?




베르베르 베르나르가 주목한 부분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미래이지만 우리가 전혀 준비하지 않고 무시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분명 이 지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테러보다 살인사건 보다 더 중요하지만 아무도 그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지만 우리는 그 것을 무시하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베르베르 베르나르는 주인공들을 쓰레기 집합소에서 찾았다. 세상과 등지고 그 오물투성이에서 살아가는 네 명을 끌어들여 예지자 카산드라의 협조자로 창조하였다. 모두 자신의 과거에 소모품으로 사용된 인생 그리고 버려지듯이 쓰레기하치장으로 굴러들어 올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인생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곰곰이 따라가다 보면 인위적인 미래 예측을 하려는 사람과 확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현실이 있다. 현실은 미래를 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되지만 그 가늠자는 너무 작아서 노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 작은 구명으로 세상을 보기에는 너무 좁다. 이렇게 카산드라의 말은 세상의 울림이 되어 자신들만의 세계에 한정되어 진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주면서 너의 과거를 잊으라고 한다면 나는 그 거래에 응할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가족을 희생할 수 있을까? 소설은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작품임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원초적 질문을 사람이라면 가지고 싶은 욕망과 그리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인간적인 부분과의 상쇄를 요구한다. 둘 다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를 물어 보면서 말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미래는 그렇게 행복하거나 밝은 인류가 아니라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오히려 재앙이 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는 힘이 없다. 조력자를 구해야 한다. 그 것도 상처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 재미를 얻는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느낀다. 희망 속에서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을 바라는 마음이 한 구석에서 조금씩 싹이 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되고 싶다.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우리나라에 많은 팬은 확보한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글의 매력은 무한한 상상력이다. 그의 상상력이 때로는 반어적인 말로 때로는 모순된 상황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소설이 말하는 미래에 당신들은 어느 위치에 있을 것인가 하고 말이다. 누군가의 예언처럼 그 멸망의 날이 온다 하여도 우리는 사과나무를 심을 만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 말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거울 안의 나는 분명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조언을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렇게 우리의 현실과 미래 과거를 짚어 보도록 하자. 소설의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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