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바보 예찬 - 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김영종 지음 / 동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바보의 신이 있다는 말도 생소하였지만, 바보의 신이 말하는 세상사는 방법은 어쩌면 세상을 뒤집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바보, 별로 친근감 있는 단어는 아니다. 우리가 기피 하였던 단어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바보의 신이 관장하는 주관하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혹은 신이 말하는 인간의 영역은 어느 부분이었을지 궁금하다. 각박한 세상살이를 조금은 느긋하게 살아가기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일까?




바보의 신이 처음부터 가장 많은 불만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빛에 대한 부분이다. 결국 지식을 추구하고 문명의 이기를 만들고 하는 것은 고대의 문명에서 빛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불행의 시작이라 말한다. 이런 빛의 추구는 사람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고 이 고단함을 바탕으로 우리는 바보의 신이 말하는 많은 즐거움을 잃어 버리고 살았을지 모른다. 빛, 인간이 추구하던 빛은 고대의 철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소유한 인간은 권력을 차지하고 이러한 권력의 합리화를 위한 사상과 지식을 만들어 바보로 살아가면 행복한 사람들을 좀더 고달프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철의 문화가 발전을 하며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었던 파라오의 욕망처럼 말이다.




그럼 바보의 신이 말하는 친구 즉 축제의 동반자는 누구일까? 경솔, 망각, 쾌락, 아첨과 자존심, 숙면의 신, 게으름의 여신, 안일함의 여신, 미식의 신, 등 지식과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멀리 해 오던 단어의 신들과 친구로 지내며 동반자로 살아가는 것을 권유한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겠지만 바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접한다면 어쩌면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길을 우리는 무시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바보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어쩌면 세상의 근심에 반응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많은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어쩌면 나도 모르게 바보가 되어가는 방법을 찾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삶의 끝 자락에는 세상사람들이 모두 갈구하는 지식 혹은 명예 그리고 권력이 있을지 모른다. 이 사이에서 무엇을 찾아 가는 것이 나에게 가장 맞는 방법이 될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바보를 예찬하는 삶도 결코 바보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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