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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에 대한 기억은 한 순간 한 동작 모두가 기억이 납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기억은 내 평생을 움직이고 행동의 기준이 되며, 내 생각의 모든 부분의 근간이 됩니다. 혹은 그 행동을 집착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행동을 비정상적인 상태라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그를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고 나는 그가 없으면 삶을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나를 이해해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는 그의 기억을 하나하나 남기며 그의 흔적과 자취를 한 곳에 모으고자 합니다. 많은 박물관의 그 것처럼 나는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모아서 그를 사랑한 마음을 그리고 평생을 거쳐서 내가 그를 위해 했던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순수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퓌순이라는 젊고 어린 소녀를 만나서 뜨겁게 사랑을 하였습니다. 채 두 달이 되지 않은 그와의 만남은 나의 생을 모두 바꿔 놓았고 나는 그가 없이는 세상의 존재가 되지 않았습니다. 케말이라는 이름도 그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와의 만남으로 약혼녀와 파혼을 하였으며, 그가 사라진 시간에는 나의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슬픔에 잠겨서 그를 찾는 일에만 몰두하였습니다.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한 나의 노력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나 나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나는 그가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나는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재산을 생각하는 일에는 다른 사람보다 덜 고민을 하여도 되었다는 것이 어쩌면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그의 남편이 있었으며 나는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습니다. 매일 저녁 그녀의 식구들과 밥을 먹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저 그녀의 곁에 있기 위한 수단을 찾아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사랑하였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하여 보았지만 나는 퓌순만 있다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를 다시 나의 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다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순간은 나에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행동하나하나 그녀가 만지작거렸던 작은 물건 하나 까지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작은 물건 하나하나를 나는 내 이야기와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주려고 합니다. 나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증거 그리고 그녀를 그리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집착을 더하고 집착이라 하기에는 케말의 심리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잊으려는 노력도 시도 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던 44일의 기억은 케말의 평생을 지배하며 퓌순이라는 한 여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 남자의 사랑을 집착이나 아집이라 이야기하기도 불편하고, 편집증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의 행동은 어쩌면 지독한 중독의 증세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을 그리며 그가 남긴 가장 인상적인 물건은 그녀가 피었던 담배꽁초에 대한 기억입니다.
케스킨 씨네 집 식탁에 않아 있던 팔 년 동안, 나는 퓌순이 피운 4213개의 담배꽁초를 가져와서 모았다. 한쪽 끝이 퓌순의 장미꽃 같은 입술에 닿고, 입속으로 들어가고, 입술에 닿아 젖고(가끔 필터를 만져 보았다.) 입술에 바른 립스틱 때문에 붉은색으로 멋지게 물들어 있는 담배꽁초 하나하나는, 깊은 슬픔과 행복한 순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특별하고 은밀한 물건들이다. - 2권 199
담배꽁초 하나에서 그는 그녀의 감정을 읽고, 그녀의 체취를 느끼며, 그녀의 흔적을 더듬는다. 지독할 만큼 치밀한 관찰과 그녀에 대한 관심의 산물이었으리라
그의 이런 지독한 사랑의 관심이 가져다준 결말은 나의 생각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집착이 가져다준 결말이었을 까? 아니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의 마음을 더욱 자극하기 위한 결말이었을까? 그의 박물관을 상상하여 본다.
내가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나, 한 사람의 행동 그리고 말에 대해서 나의 기억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면서 그와의 일들을 추억이라 말하고 싶어서 나는 많은 시간을 소비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몸이 힘들고 피곤하였어도 나는 그를 만나면서 그 피로를 잊었으며, 웃음을 나누며 행복해 했던 기억이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을 지금은 그렇게 기억하고 관심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편하게 옆을 지켜주는 사람에 대한 느슨한 방심인 것 같다. 그가 소중함을 알지만 언제나 옆자리를 묵묵히 지켜 주었던 사람에 대한 안타깝지만 배신 같은 행위 인 것 같다. 그렇게 보지 못하면 서운하고 하루가 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매일 보면서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는 것. 케말처럼 어려운 환경과 상황이 되어서야만 그렇게 집착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 간사한 인간의 본성이 가족에게 까지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아쉬운 부분이다.
케말에게 박물관의 기억은 나에겐 소중한 가정의 기억일 터인데 소설을 다 읽은 지금 가족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케말의 집착, 아닌 순순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긴장감을 조금은 놓아버린 나의 사랑에 대한 반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