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창조 -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
이어령.강창래 지음 / 알마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어 본적이 있다. 나도 말을 잘 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생대가 논리적이고 사례도 풍부하며 학식도 많다면 나는 주눅이 들어서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 사람이 지위도 높고 사회적 명망이 있다면 더더욱 주눅이 드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말을 참 잘하시는 분 중에 하나가 이어령 박사님이 아닐까 한다.




그의 글을 많이 접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글과 말을 듣고 있다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어쩜 수긍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아쉽게도 돌아보면 그의 말에는 조금의 모순도 없고 논리에 어긋남이 없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의 말에 동의하기는 싫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이 아마도 한국과 한국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문화부 장관이 되었을 때 그의 책이 눈에 뜨여서 읽기 시작을 하였다. 재미있게 분석적으로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끌렸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좀 이상하게도 당시의 정부는 대학생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던 정부였던 것 같다. 당시 문화부 장관으로 지낼 당시 얼핏 들었던 그의 문학의 사회참여에 대한 견해가 막연하게 그의 글에 동조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당시의 민중예술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지면서 문학예술의 사회 참여가 두드러지던 시기에 그의 견해는 젊은 혈기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그의 글에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불연 듯 하나의 문구가 들어오게 된다. 불온시 논쟁이라는 책 소개로 나온 인터뷰 책이었다. 정말 사실을 판단하지도 않고 무작정 배척하였던 젊은 시절의 생각에 다시금 바르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한 장씩 넘기며 그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본다.   




책은 50페이지 가까이를 당시의 논쟁의 대상이었던 김수영 시인과 이어령 박사의 글을 실어 놓았다. ‘에비’로 시작한 문학의 순수성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 되었던 이어령 박사의 글은 김수영 시인의 반박과 이어령 박사의 재반박으로 이어지면서 문학에서의 순수와 참여를 둘러싼 이 논쟁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반면 이어령은 권력 및 이념으로부터의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직접 몸담아 있었지 않았기에 느낌을 알기란 쉽지 않지만, 현대적 사회구조 속에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르다 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나의 지식이 너무 짧은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아직도 이 논쟁에 대해서는 문학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잊혀지지 않을 만큼 그리고 근본적이 논쟁 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이어령은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고 있다.




김수영 씨는 지금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불온시들이 햇빛을 볼 수 있는 세상이 와야 비로소 한국에 제대로 된 문학이 생겨날 수 있다고 목청을 높였던 거요. 그런데 정말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서랍 속에서 햇빛을 보게 된 작품들이 나온 것이 없잖나. 검열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서우휘 국장이 아니라 시대가 보여주고 증명한 거요. 그래서 더 이상 유통기간이 지난 쟁점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빈 무덤지기가 되고 싶지 않았던 거지  - Page103




정말 그럴까? 군사정권의 피해의식 때문인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못하고 산다고 느끼는 스스로의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부분이 이어령의 불온시 논쟁에서 많은 사람들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김수영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령 박사는 대한민국의 장관까지 지내며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변론하고 반박할 수 있지만 김수영 시인은 우리 곁에 없는 분이다. 이 논쟁은 아마도 사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이루어 질 수도 아니면 사회적인 분위기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와 같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논쟁의 대상이 분명하게 있고 서로 장시간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사회에서 위치를 만들고 명성을 만들면서 사회를 이끄는 양 축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사회적 발전의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김수영 시인의 너무 빠른 죽음이 아쉬울 뿐이다.




책의 내용이 불온시 논쟁에만 한정 된 것은 아니었는데 이 부분이 내게는 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장황한 글쓰기를 이어 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다음 장은 그레이존에 관한 창조성에 관한 이야기와 지성에서 영성으로 즉 기독교인이 된 이어령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시기의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 진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참 재미있는 표현으로 그리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지를 비유 적절한 표현으로 이야기 하여 주었다.




내가 자주 말했지만 나는 우물 파는 사람이지, 판 우물에서 퍼낸 물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야.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희곡도 써보았지. 인생은 짧은데 많은 가능성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인데, 조금이라도 물이 나오는 것을 알면 그만두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파기 시작했거든. 물이 나오는 것을 알면 그만두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파기 시작했거든. 물이 많을지 적을지. 잘 나올지 나오다 말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물이 나온다는 것을 아는 것까지가 관심사였거든. (중략) 그러나 인제는 우물 하나를 깊게 파서 자식들에게 손자들에게 그 우물물을 마시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 page 280.281




자신의 젊은 날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 인지 너무 명확하게 표현을 하고 있어서, 참 멋진 삶을 사셨다라고 생각을 했다가. 나의 불온한 생각이 가시지 않는 것은 병인 것 같다. 우물 파러 갔을 때 그 땅 주인 들하고는 잘 협상을 하고 값을 잘 치렀을까, 마시지도 않을 우물은 왜 파고 다녔을까 하는 불온한 생각. 이 병은 언제 고쳐 지려는 지 참 스스로 고민을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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