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 ㅣ 라임 그림 동화 47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이현경 옮김 / 라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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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신간,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책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를 읽고 나니 마음 한구석에 깊은 여운이 감돌아요. 누구나 숨기고 싶어 하는 어둡고 축축한 감정들을 참으로 따뜻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낸 그림책이랍니다.


마음의 밑바닥, 진흙 세계로의 탐험

주인공 유키는 잔뜩 화가 나 있어요. 오빠와 함께 하교하는 길 마음속은 짜증으로 가득하지요. 책의 도입부에서 유키의 상태는 이렇게 묘사된답니다.


"퉁명스럽고 버릇이 없지.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발버둥을 치면서 울어. 내 마음속은 이 거리의 전깃줄처럼 마구 뒤엉켜 있거든."


충동적으로 집 열쇠를 하수구에 던져버린 유키는 열쇠를 찾기 위해 뚜껑 열린 하수구 밑으로 내려가요. 그곳은 퀴퀴하고 어두운 지하 세계랍니다. 바다 토끼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유키는 거대하고 끈적이는 진흙 괴물을 만나요. 그 세계의 진열장에는 '슬픔, 짜증, 화,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온갖 병에 담겨 있지요.


"네가 거짓말을 할수록 나는 자꾸자꾸 더 커져."


괴물은 거짓말을 먹고 자라며 뚝뚝 진흙을 흘려요. 유키는 그곳 '짜증 쓰레기 박물관'에서 오빠의 노란 강아지 인형을 발견한답니다. 늘 어른스럽게만 보이던 오빠 역시 이 어둡고 혼란스러운 지하 세계를 헤맨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모두 다 자신을 떠나버리고 멀리한다며 엉엉 우는 괴물을 유키가 꼭 안아주면서 엉켜있던 마음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지요.


저자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랍니다. 1996년 프랑스 몽트뢰유 도서전에서 '미래의 인물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주목받았어요. 이후 2007년 <파리에 간 사자>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2020년 <사라지는 것들>로 프랑스 소시에르상을, 2022년 <우리는 공원에 간다>로 다시 한번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과 안데르센상 후보로도 꾸준히 지명되는 거장이지요.


작가의 작품 세계는 늘 어린이의 내면과 불안, 존재의 본질을 향해 있어요. 다양한 질감이 느껴지는 재료를 활용해 거칠면서도 따스한 감성을 캔버스에 담아내지요. 형광빛이 도는 쨍한 색감과 어둡고 탁한 색채를 대비시키는 스타일이 인상적입니다. <유리 아이> <어린이> <페퍼와 나> 같은 전작들을 함께 읽어보면 상처를 치유하고 내면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작가 특유의 다정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어요.


유키가 내려간 하수구 밑 지하 터널은 무의식의 세계.. 즉 겉으로 드러내기 싫은 어두운 감정들이 억눌려 있는 내면의 밑바닥을 상징하는 거 같아요. 끈적거리는 진흙 괴물과 콧물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감정 찌꺼기들이지요. 짜증, 분노, 슬픔 같은 감정들은 예쁘게 다듬어지지 않은 채 진흙처럼 자신에게 엉겨 붙어 있어요. 자신의 진짜 마음을 외면하고 피하고, 거짓말을 할수록 이 부정적인 감정 덩어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답니다. 보기 흉한 괴물은 다름 아닌 사랑 받고 싶어, 관심받고 싶어 투정 부리는 유키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에요.


모두가 같은 불안을 품고 산다는 위로

오빠의 강아지 인형을 발견하는 장면은 이 책의 빛나는 지점 중 하나예요. 나만 못나서 툭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타인 역시 나와 똑같은 고민과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답니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만의 진흙 괴물 한 마리쯤은 키우고 있다는 깨달음은 묘한 안도감과 연대감을 선사하지요. 타인의 내면을 향한 이해의 폭이 한 뼘 더 넓어지는 순간이랍니다.


성인이 된 유키도 다시 진흙 괴물과 조우할 수 있을까요?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슬픔과 짜증, 불안이라는 감정들이 마법처럼 증발하고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 하수구 뚜껑이 열리고 축축한 진흙 괴물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유키는 더 이상 괴물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저 다가가 꼭 안아주면 괴물은 더 이상 몸집을 불리지 않고 얌전해진다는 것을 이미 배웠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치부, 어두운 면까지 끌어안을 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유키의 앞날이 그려진답니다.


라임 신간 <내 마음속 진흙 괴물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라고 가르치는 대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다독이는 법을 알려주는 가치 있는 그림책이랍니다. 페이지마다 펼쳐지는 환상적인 화면 구성과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가 이야기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려요.


자기감정을 통제하는 데 서툰 아이들 그리고 여전히 내면의 엉킨 전깃줄을 풀지 못해 끙끙대는 어른들 모두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어줄 책이에요. 어둑하고 못난 내 마음까지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이들에게 꼭 한번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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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기 ㅣ 나의 그림책 1
김은진 지음 / 나는나(논장)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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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품에 안고 읽어주기 참 좋은 그림책을 만났어요.

나는나, 김은진 작가 신간 <우리 애기>라는 책이랍니다.

표지부터 초록 하늘의 별빛 속에 포근하게 눈을 감고 있는 달덩이 같은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아요.

이 책은 복잡한 줄거리 대신 따뜻한 사랑의 고백을 담고 있어요.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으며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우리 애기라는 다정한 메시지를 전한답니다. 책장을 넘기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정겨운 모습부터 고양이, 앵무새, 돌멩이까지 저마다의 소중한 존재들을 비추며 사랑의 의미를 넓혀 가요.


이 따스한 이야기를 지은 김은진 작가는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어요. 이전에도 <아, 어쩌란 말이냐!>, <너는 어떻게 보여?> 같은 그림책을 쓰고 그렸답니다. 마음속에 퐁퐁 솟아나는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 작가가 되었다고 해요.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들과 현재의 어린이 모두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짓는다는 작가의 진심이 책 곳곳에 묻어나요.


<우리 애기>의 가장 큰 매력은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그림체에 있어요. 붉게 물든 볼과 편안하게 감은 두 눈을 가진 표지 속 달님 얼굴만 보아도 마음이 차분해진답니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나 색연필을 꾹꾹 눌러 그린 듯한 따뜻한 질감과 노랗고 초록초록한 배경 색채가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을 주어요. 책 속에 등장하는 길가의 돌멩이, 귀여운 고양이, 수다쟁이 앵무새 등 주변의 소소한 존재들이 어떻게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받는 우리 애기가 되는지 찾아보는 과정이 이 책의 매력 포인트랍니다.


주변의 엄마, 아빠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는 넌 나의 가장 소중한 애기라는 확신을 심어주어 정서적 안정감을 채워준답니다. 부모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어요. 육아에 지치고 고단한 날 이 책을 펼치면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벅찬 감동이 떠오른답니다. 부모인 나 자신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였음을 깨닫게 해 주어 어른의 마음까지 다정하게 안아주는 매력을 지녔어요.


별책으로 제공되는 네임 스티커와 놀이 활동북은 아이들과 독후 활동을 하기에 무척 유용해요. 책 속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그려진 네임 스티커는 아이가 아끼는 장난감이나 학용품에 이름을 적어 붙여주며 너만의 소중한 물건을 아껴주자는 이야기를 나누기 좋답니다. 놀이 활동북은 책을 소리 내어 읽은 뒤 활용하면 알차요.


책에 등장했던 돌멩이, 고양이, 앵무새 그림을 보며 글자를 따라 써보고, 빈칸에 들어갈 단어를 책에서 스스로 찾아 적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과 친해질 수 있어요.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쥐고 꼬물꼬물, 삐뚤빼뚤 글씨를 쓰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크답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었을 때 반응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우리 애기라는 말이 반복될 때마다 배시시 웃으며 품으로 파고들겠지요. 책 속에 나오는 고양이와 앵무새를 짚으며 반가워하고 놀이활동북을 풀 때는 정답을 찾았다며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아이가 먼저 엄마, 아빠 사랑해~ 하며 안아주는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김은진 그림책 <우리 애기>.. 아이와 부모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읽기에 더없이 좋은 그림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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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예의 바른 괴물 봉바르봉의 심부름 ㅣ 미운오리 그림동화 23
큐라이스 지음, 봉봉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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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어린이 신간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예의 바른 괴물 봉바르봉의 심부름>을 읽고 우리 엄마 아빠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은 앞서 나온 <세상에서 제일 예의 바른 괴물 봉바르봉>의 두 번째 이야기로 전편의 재미를 가득 담아 다시 찾아왔답니다.


깊고 깊은 바닷속에 사는 괴물 봉바르봉이 처음 심부름을 떠나는 이야기예요. 엄마가 부탁해요.

"봉바르봉, 뜨끈뜨끈 용암 케이크를 북극에 계신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렴."

엄마의 부탁으로 두근거리는 첫 심부름이 시작되지요. 봉바르봉은 노란 바구니에 케이크를 소중하게 담아 북쪽으로 길을 나서요.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고 나아가는 봉바르봉.. 가는 길에 풀밭의 젖소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고, 핫도그 가게 앞에서는 요리사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해요. 자신을 진짜 섬인 줄 알고 곤히 잠든 탐험가를 조심스레 땅에 내려주는 착한 모습도 보여준답니다. 마침내 북극 동굴에 도착한 봉바르봉은 할아버지가 끓여 주신 따뜻한 차와 달콤한 용암 케이크를 함께 먹으며 심부름을 무사히 마쳐요.


저자 큐라이스의 통통 튀고 귀여운 그림이 눈길을 쏙 끌어요. 밝고 화사한 색감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답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커다란 덩치와 어금니를 가진 무서운 겉모습과 다르게 너무나도 예의 바른 봉바르봉의 행동이에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꾸벅 배꼽인사를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는 모습이 정말 큰 웃음을 준답니다.

아이와 부모님 모두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무서운 괴물일 거라는 생각을 기분 좋게 깨주면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려줘요. 낯선 곳으로 혼자 심부름을 떠나는 아이의 용기를 힘껏 응원하게 된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봉바르봉을 보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도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책을 다 읽은 아이들의 반응도 정말 사랑스러워요. 봉바르봉을 흉내 내며 입을 쩍 벌리고, 두 손을 모으고 꾸벅 배꼽인사를 따라 하며 까르르 웃는답니다. 덩치 큰 괴물이 살금살금 걷는 장면에서는 아이들도 같이 숨을 죽이고 푹 빠져드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줘요. 할아버지와 나누어 먹는 용암 케이크 그림을 볼 때는 자기도 먹고 싶다며 꿀꺽 입맛을 다시기도 해요.


설레는 첫 심부름의 두근거림과 따스한 웃음을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은 엄마 아빠라면..

<세상에서 제일 예의 바른 괴물 봉바르봉의 심부름>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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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에바 틴드 지음, 손화수 옮김 / 산지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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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신간, 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 장편소설 <뿌리 Ophav>는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를 탐구하는 밀도 높은 서사로 출간 직후부터 국내외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소설은 입양과 결손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강렬하게 그려냈다. 주요 평단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을 자유롭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다며 작가의 독보적인 재능에 찬사를 보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연대와 자아 발견에 이르는 과정은 낯설면서도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저자 에바 틴드는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2009년 시집 <죽음>으로 데뷔한 이래 2010년 덴마크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클라우스 리프비에르그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소설 <한>을 통해 북한으로 떠나는 입양인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무성영화배우의 삶을 그린 <아스타의 그림자>로 2016년 오토 룽 작가 상을 받았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늘 경계에 선 이들의 고독과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관통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덴마크어 제목 'Ophav'는 근원 혈연 기원을 뜻하며, 'op'와 바다를 뜻하는 'hav'의 합성어로 생명이 발생한 태초의 바다이자 내면의 안식처를 상징한다. 특유의 시각적이고 추상적인 문체는 척박한 북유럽의 숲과 뜨거운 인도의 열기를 교차하며 독자들을 압도한다.


<뿌리>의 서사는 코펜하겐, 달라르나, 오로빌, 티루반나말라이, 서울, 마라도 등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1990년대와 2010년을 오가며 아버지 카이 어머니 미리암 딸 수이의 시점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성공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갈망한 미리암은 엄마의 역할을 버리고 스웨덴의 외딴 숲 달라르나로 떠나 홀로 예술혼을 불태운다. 홀로 수이를 키운 카이는 타인의 병을 고치는 신비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기력에 빠진다. 수이가 열여덟 살이 되어 독립하자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카이는 치유를 위해 인도의 대안 공동체 오로빌로 떠난다. 한편 수이는 자신의 기원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고 서울 공항에 도착해 이방인으로서의 뼈저린 고립감을 느낀 후, 해녀들이 모여 사는 모계사회 마라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이가 서울 공항에서 구겨진 점프 슈트를 입고 단정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영어로 마라도에 사는 한국인 할아버지를 찾겠다고 도움을 청하는 장면은 이방인의 서글픔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뿌리>는 가족 소설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혈연의 무조건적인 화합, 동거를 강요하는 낡은 관습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소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개인들이 결국 각자의 고독한 여정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함을 보여준다.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예술적 야망을 위해 물리적 장벽을 쌓아 올리고 곁을 떠나는 미리암의 서사는 모성에 대한 전통적 기대를 배반하며 강렬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카이 역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에 짓눌려 있던 자아를 인도의 순례길에서 마주하며 존재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이 책은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해 부유하는 현대인들에게 근원이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각자의 가슴속에 지닌 고요한 내면의 목소리임을 일깨운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기원을 똑바로 직시할 용기를 얻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 속에는 각 인물의 내면과 관찰을 절절하게 보여주는 문장들이 담겨 있다. 빈집에 남겨진 카이가 2010년 코펜하겐에서 쓴 편지 형식의 일기는 지독한 상실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사랑하는 수이 너는 집을 나가 독립했고, 나는 무기력한 공허감에 빠져 있어. 이런 내 모습을 네겐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_84p


아울러 수이의 자유롭고 비범한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은 이 가족을 감싸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수이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었던 일은 물론, 주변의 모든 일을 매일 수첩에 기록했다. 손수 만든 옷과 헐렁하고 이상한 바지를 입은 그녀는 마치 고대 신화에 나오는 님프처럼 보이기도 했다."_13p


이 대목은 혈연의 신화를 걷어낸 자리에 남은 인물들의 진솔한 고백이 새로운 관계, 연대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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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신현호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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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신간, 앤드루 로스 소킨 <1929>는 번영의 정점에서 파국으로 치달았던 자본주의의 가장 극적인 52개월을 복원한 논픽션이다. 1929년 2월의 맹목적인 낙관론부터 1933년 6월 위기의 주역들이 법정에 서는 순간까지 탐욕과 오만이 빚어낸 시스템 붕괴의 실체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빌 게이츠가 올해의 책으로 극찬했으며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저자 앤드루 로스 소킨은 뉴욕타임스 간판 저널리스트이자 경제 매체 CNBC의 핵심 앵커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다룬 <대마불사>로 널리 알려졌으며 인기 금융 드라마 <빌리언스>의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그는 권력과 자본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밀도 높은 취재 스타일로 제럴드 로브상과 에미상을 거머쥐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소킨은 과거의 라디오 기술 혁신이 현재 인공지능 시대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대중의 빚투 열풍과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은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고 경고했다.


책의 목차는 1929년 2월 1일의 불길한 징조에서 시작해 대폭락 직전의 여름을 거쳐.. 파국의 순간으로 치닫는 순차적 구성을 취한다. 당시 월스트리트는 찰스 미첼이 이끄는 내셔널시티은행을 필두로 주식 투자를 위한 대규모 마진 거래를 조장했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신용 대출이 급증하며 시장에는 끝없는 우상향에 대한 확신이 팽배했다. 10월 24일 검은 화요일을 기점으로 J.P. 모건, 리처드 휘트니 등 당대 금융 거물들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평범한 시민부터 윈스턴 처칠 같은 유명 인사까지 막대한 부가 증발했고 이는 뼈아픈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수년이 지난 1933년이 되어서야 허술한 규제 정책을 다시 세우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고통스러운 회복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역사와 비극은 반복된다. 인간의 탐욕은 멈출 줄 모르고 경주마처럼 질주하기에 그 시간차는 점점 짧아지고, 낙폭은 커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주식 시장은 AI와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혁신에 베팅하며 과거 1920년대의 광풍을 재현하고 있다. 소수 대형 기술주가 지수를 견인하고 개인 투자자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은 100년 전 월스트리트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최근 오픈 AI의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미래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제기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1920년대 라디오 산업의 무한한 성장을 믿었던 맹신이 1929년 대폭락으로 산산조각 났던 궤적과 섬뜩하게 겹친다. 만약 다우지수, 나스닥, 비트코인 등에 낀 거품이 일시에 꺼져 대폭락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 규모는 1929년을 아득히 뛰어넘을 것이다. 당시 윈스턴 처칠이나 J.P. 모건의 임원들조차 속수무책으로 막대한 자산을 잃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붕괴는 실리콘밸리의 테크 거물들과 글로벌 금융 기관들을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다. 전 세계 시가총액 수십조 달러가 단기간에 증발하고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평범한 시민들의 노후 자금까지 연쇄적으로 파괴될 위험이 도사린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AI 기술의 발전이 수익성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시장의 맹목적인 기대감은 순식간에 공포로 돌변할 것이다.


<1929>에서 디테일하게 묘사하듯 빚을 내어 투자한 마진 거래의 연쇄 청산은 단순한 금융 붕괴를 넘어 실물 경제의 장기 침체라는 참혹한 후유증을 낳는다. 현대의 금융 규제 시스템을 위안으로 삼기에는 인간의 탐욕, 상류층의 도덕적 해이라는 근본적인 리스크가 여전히 굳건하다. 막연한 낙관론을 경계하고 자산의 레버리지를 엄격하게 통제해야 다가올 파국에서 생존할 수 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비공개회의록, 개인 일기, 메모 등 방대한 미공개 자료를 파고든 저자의 집념이 돋보인다. 숫자의 나열을 넘어 허버트 후버, 찰스 미첼 등 실존 인물들의 심리와 선택을 스릴러처럼 생생하게 복원해 냈기에 이 시대의 필독서로 강력히 추천한다. 책의 서문에는 1929년 10월 26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남긴 통찰이 적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실질적인 교훈을 얻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한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각자가 그 교훈을 매번 새로 배워야만 한다."_서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현인이 남긴 말은 버블의 정점에 선 우리에게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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