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교수. 그는 평생을 디아스포라, 즉 이방인과 소수자의 영토에서 살았다. 어느 국적이나 집단에 명확히 소속되지 않은 채, 내부도 외부도 아닌 경계선을 방랑하며 한국과 세계정세를 주시했다. 1951년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의 재건 과정을 낱낱이 지켜본 그는 군홧발에 짓밟힌 모국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지는 꿈에도 몰랐으리라. 70년대 군부에 의해 조작된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두 친형이 구속되자, 그는 전 세계에 부당함을 호소하고 형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을 견제하고 가족들의 무고를 증명할 만한 세계 각지의 인권/시민/종교 단체, 민주화 인사 등과 소통하며 유랑하던 중, 그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최전방이자 다양한 인종/문화가 뒤섞인 용광로와 같은 미국에 발을 들이는데..




세월이 흘러 그는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판데믹 시기에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을 집필하면서 친형들의 구명 활동을 펼치던 1980년대를 회상한다. 낯선 이국의 땅에 도착한 그는 서투른 영어 실력을 자각하는, 고립되고 소외된 이방인에 불과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몇몇 인권 단체들과 구호 운동 관계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서경식 교수와 수많은 저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구명 운동을 펼치는 틈틈이 그는 가까운 미술관에 들러 거장들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위안을 받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용기를 얻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암울했던 시기를 견디게 했던 '선한 아메리카'의 기운에 대해 말한다. 부당하게 차별 당하고 소외된 자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경청하던 당시의 자유분방한 아메리카를 떠올린다. 겉으로 보기에 미국은 변화무쌍한 혼돈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는 듯하지만, 그 복잡성과 다양성이 '아메리카'라는 거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허나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동향은 어떠한가? 소수자와 이민자들을 공개적으로 배척하고, 판데믹 시절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내몰았던 '트럼프'는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기 위해 행보가 분주하다. 러시아는 침공한 우크라이나에서 철군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과 반 유대국 간의 국지전과 마찰은 격화되는 상황이다. 서경식 교수는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져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필리핀과 캄보디아, 미얀마의 학살 등 잔악한 적대 행위가 반복되고 재현되는 최근 세계정세에 대해 진부하게 느끼는 우리의 둔감한 감정에 대해 경고한다. 일찍이 그는 자신을 '어두운 탄광 속에 갇혀 질식해 가는 카나리아'라 표현하며, 평생을 소수자의 처지에서 방랑한 디아스포라의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낸 바 있다.



그가 존경했던 세기의 현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과 유대 민족의 가시 돋친 경계를 허물고,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2003년 9월 세상을 떠났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으려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은 서경식 교수는 지난 2023년 12월 고인이 되었다. 우리는 성큼 다가온 전 세계적 비극과 절망에 대해 경고해 줄 날카롭고 명민한 카나리아들을 하나둘씩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과연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앞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갈수록 짙어지는 어둠과 안갯속을 헤매면서, 아우성치고 서로에게 주먹과 칼을 휘두르고 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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