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ㅣ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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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웠던 전장에는 꽃을 가지고 가야 하는 법이야."

"아이 버섯은 지혜롭습니다. 지혜가 곧 언어이기 때문이지요. 지혜는 몸이 아닌 목소리입니다."


남미 문학의 신경향을 이끌 작가로 손꼽히는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이 은행나무 '환상하는 여자들' 시리즈의 제2권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오악사카의 후예로서 치유자의 피가 흐르던 '팔로마'가 살해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팔로마는 가스파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출생한, 사포텍 문화권에서 제3의 성으로 인정받는 '무셰'이다.

일종의 주술적 언어를 통해 길흉화복을 점치고 미래를 예지하는 전통 무속인인 듯하다.


팔로마의 살인 사건을 취재하는 젊은 기자 '조에'와 팔로마의 사촌이자 후계자인 '펠리시아나'가 번갈아 등장하고 또는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자신 혹은 주위의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고, 위험에 처하는 장면이 연이어 묘사된다.


현대적인 도회지 멕시코시티와 호젓한 산골 마을 산펠리페에서 각각의 여성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딸에게 닥칠 위험을 예지하는 엄마의 기이한 능력 때문에 몇 번의 구사일생을 경험한 조에는 그 비결을 묻는다.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여성들은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비한 능력을 일부 지니고 태어난다. 그 필살기는 후천적으로 습득될 수도 있다. 허나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홀로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의 무사안녕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단단히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아야만 마녀사냥을 피할 수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고립되어 반사회적인 이단으로 취급받는 마녀들을 불태우기 위한 제단이 높이 솟아 있다. 활활 불타오르는 화형대를 목전에 두고 여성들은 공동체 의식을 굳게 다지는 한편, 각자의 언어적 능력을 발휘해 연대할 필요가 있다. 마술적인 힘과 집단의식이 깃든 언어는 지혜를 발화시키며, 이를 통해 이질적인 세계와 진영은 조화를 이루고 평안을 되찾을 수 있다. 세대를 넘은 치열한 투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때.. 생살이 타드는 고통이 멈추고 잿더미만 남은 전장에 검붉은 꽃무리를 수놓을 수 있는 것이다.


브렌다 로사노의 장편 소설 <마녀들>은 두 여성과 세계가 대립이 아닌, 언어적 치유와 연대를 통해 폭력의 상처를 회복하고 해소하는 이야기를 마술적인 필치로 그린다.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상처가 집단의 언어를 통해 회복되는 주술적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실 사회의 편견과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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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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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로마'는 화려하고 북적이는 대도시지만, 그 이면은 황량하고 혼탁한 데다 퇴색되어 가는 그림자가 기울었다. 그 도시에 머무르는 이들은 수많은 군중들에 둘러싸여 정처 없이 표류한다. 그들은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지만, 도시가 내뿜는 어둑한 그림자에 온몸이 물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절친이었다.




1973년 첫 출간 이후, 절판과 재출간을 거듭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으로 남은 컬트 소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출간되었다.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이어진 명성답게, 로마의 명소를 묘사한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문장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정교하기까지 하다. 커플의 애정 행위를 정밀 스케치한 문장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에로틱하게 들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밀라노에서 로마로 건너온 '레오'가 되어 핀초 언덕의 테라스, 캄포 데이 피오리의 쉼터, 움베르티노 지구 등 한여름 로마의 곳곳을 방랑하듯 거닐 수  있다. 레오는 완벽한 혼자가 아니었다. 로마 상류층에 속하는 어느 부부와 가까이 지냈고, 뜻이 맞아 함께 영화를 제작하려 한 절친 '그라지아노'도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그와 사랑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아리아나' 또한 나비처럼 그의 곁에 머물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번잡한 도시 안에서 무의미하고 공허한 나날을 지속하던 레오는 곁의 모든 이들을 관찰한다. 어떠한 분석이나 냉철한 비판 없이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끝 모를 고독의 중심으로 점차 끌려간다. 가혹한 운명은 무더운 도시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진심으로 교류하던 그라지아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레오는 도시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부정하면서 아리아나 곁에 머물려 했던 그는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헛된 허영심과 사치에 잠식당한 그녀는 결국 레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레오는 하이에나처럼 타인이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랑하는 애인을 독차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절감하며, 도시에서 버림받고 추방당한 모든 이들을 받아주는 푸른 '바다'를 향해 다가간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영원을 향해 나아갔다.

 



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대중들 사이에서 망각되지 않고 복간되는 데는 어떤 보편적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종 SNS로 촘촘히 연결된 인터넷/디지털 AI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레오가 느끼는 고독감과 허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관계는 이런 모순을 극대화하며, 무수한 팔로워에 둘러싸여 소외감과 외로움을 면치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량적인 숫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기간 고립되어 끝내 고독사할 처지에 몰리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도심의 이면에 깔린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진심 어린 사랑과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레오'들은 오늘날 대도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돛을 올리고 나아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이들.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존재 의미를 숙고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이들이 여러 도시에 남아있는 한, 이 책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보편성을 획득할 것이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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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 시프트 - 부의 경제를 허무는 토큰 금융의 미래
홍창수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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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경제 신간 <토큰 시프트>는 홍창수, 정준영, 홍성욱 세 명의 금융 및 디지털 자산 전문가가 의기투합하여 쓴 책이다. 홍창수는 오라클코리아를 거쳐 삼성증권에서 펀드 등을 운용하며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 기반 금융의 차이를 분석한다. 정준영은 벤처캐피털 심사역으로 활동하며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만나는 기술 생태계의 재편 과정을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홍성욱은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로서 매경이코노미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이력을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등 기존 통화를 대체할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객관적인 지표로 증명한다. 이 책은 다가올 2030년 토큰화 자산 4조 달러 시대를 앞두고 블록체인 기술이 주식, 부동산, 사모펀드 등 기존 자산의 소유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구체적으로 조망한다. 이 책은 다가올 부의 대이동을 준비하고 자산 시장의 지형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지침서이다.


속도의 환상과 장부의 혁명

서장을 열며 마주하는 질문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메시지와 영상은 단 1초 만에 전송되는데 왜 돈을 보내는 데는 며칠이 걸리고 비싼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돈을 기록하는 장부에서 찾는다. 기존 금융기관들이 각자의 낡은 장부를 대조하고 제3자를 통해 정산하는 복잡한 배관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큰 시프트>는 블록체인을 단순히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코인 투자의 수단이 아니라 이 분절된 개별 장부들을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공동 장부로 통합하는 거대한 인프라 혁신으로 규정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관련 규제 정비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의 펀드 토큰화 행보는 이러한 금융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되었음을 방증한다. 어려운 기술 용어 대신 장부라는 직관적인 비유를 통해 금융의 작동 원리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지점을 포착해 낸 저자들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뉴욕 직장인 브라이언의 하루 & 스테이블코인의 실체

책의 서두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뉴욕 직장인 브라이언의 가상 일상은 토큰화된 자산이 가져올 마찰 없는 삶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아침 출근길 단골 카페에서 종이 화폐 10달러 대신 가치가 연동된 10 USDC로 결제하고 유럽으로 유학 간 여동생에게 수초 만에 유로화 기반의 EURC로 생활비를 송금하는 장면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다. 은행 영업시간이나 국경의 물리적 제약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우량 주식과 빌딩 부동산을 조각 투자하듯 실시간으로 매수하는 모습은 놀랍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상 환경의 칩을 넘어 실물 경제의 빠르고 저렴한 결제 수단이자 새로운 통화 인프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일상적인 서사 구조를 영리하게 차용하여 자산 토큰화라는 다소 낯선 개념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춘 점은 이 책이 지닌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토큰 금융의 미래

자산의 토큰화를 넘어 결제 시장이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만나는 3부의 대목은 흥미롭게 읽은 지점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부여된 조건이 맞으면 스스로 판단해 실행되는 토큰은 인간이 아닌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에 최적화된 돈의 형태다. 인간의 번거로운 개입 없이 인공지능이 스스로 최적의 서비스를 검색하고 알아서 대금을 치르는 에이전트 경제에서 프로그램 가능한 스테이블코인은 필수 불가결한 혈액이 된다. 저자들은 달러나 국채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팽창하는 과정을 촘촘하게 분석하며 이것이 종국에는 모든 자산이 경계 없이 유동화되는 초유동경제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기술의 장밋빛 미래만을 맹신하기보다 유동성 문제나 법적 소유권 규제 등 주류 금융이 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을 냉철하게 함께 짚어낸 점도 신뢰를 더한다.


달러의 패권 이동과 거대 금융 기관들의 넥스트 스텝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달러와 미국 국채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나오지만 <토큰 시프트>는 차별화된 관점을 제시한다. 전통적인 종이 지폐와 실물 국채의 매력은 점차 감소할지 모르나 이를 블록체인 위로 올려 프로그래밍 가능하게 만든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된 미 국채는 오히려 새로운 디지털 기축통화로 굳건히 부상할 확률이 높다. 특히 오랜 시간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군림하던 실물 금과 은의 안전자산 지위 역시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체 편의성,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한 즉각적인 결제 및 이자 지급 기능을 탑재한 스테이블코인은 물리적 보관 비용과 이동의 제약이 따르는 귀금속의 단점을 상쇄하며 웹3 경제의 확고한 피난처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에 발맞춰 글로벌 거대 금융 기관들의 움직임도 한층 분주해졌다. 블랙록을 필두로 한 대형 자산운용사는 이미 국채와 현금성 자산을 토큰화하여 온 체인 환경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전통 메이저 은행과 증권사들은 과거 핀테크 플랫폼에 내어주었던 송금 환전 대출 등의 개별 금융 기능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다시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내는 재구성 전략을 취하며 거대한 금융 슈퍼 앱으로 진화하는 넥스트 스텝을 밟고 있다. 민첩한 헤지펀드들 또한 분초를 다투는 차익 거래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제 지연 리스크가 없는 토큰화 자산을 포트폴리오의 최우선 순위로 편입할 만반의 채비를 마친 상태다.


에이전트 경제의 도래와 일상의 지각변동

인공지능 AI 에이전트가 단순한 비서를 넘어 경제활동의 주체로 격상되면서 세상은 또 한 번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맞이한다. 책의 자료들이 시사하듯 다수의 AI가 서로 소통하며 복잡한 과제를 분업하는 멀티 에이전트 환경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사람이 직접 카드를 꺼내 결제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가 지갑을 통제하고 프로그램 방식으로 값을 주고받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데이터나 연산 처리 단위의 미세한 거래부터 24시간 국경을 넘나드는 빈번한 자본 이동까지 AI가 스스로 판단해 대금을 지불한다. 이러한 마찰 없는 결제 생태계에서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같은 글로벌 결제 거인들은 발 빠르게 스테이블코인을 자사 인프라에 수용하며 에이전트 주도 경제의 혈맥을 선점하려 경쟁한다. 머지않아 인간은 번거로운 재무적 의사결정에서 해방되고 AI가 실시간으로 최적의 자산을 탐색, 투자, 정산하는 자율형 금융 일상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초유동경제의 명암과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전략

판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자산 방어와 포트폴리오 재편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다. 모든 자산이 토큰화되어 쪼개지고 24시간 거래되는 초유동경제는 전에 없던 기회를 창출하지만 동시에 막대한 변동성과 신용 전염 리스크를 동반한다. 투자자들은 유동성 고갈이나 연쇄 청산의 위험을 직시하고 자산의 내재 가치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부실한 자산은 토큰으로 형태를 바꾸어도 여전히 부실할 뿐이다. 따라서 과거처럼 단순히 은행 계좌에 현금을 묵혀두거나 전통적인 종이 증권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블록체인 기반의 우량 담보 자산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토큰화된 미국 국채나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온체인 자산을 포트폴리오의 기초 체력으로 삼고 변동성이 큰 디지털 자산의 비중을 세밀하게 조율하는 현명한 리밸런싱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


새로운 부의 패러다임..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

위즈덤하우스 신간 <토큰 시프트>는 단순히 유행하는 기술 트렌드를 나열한 해설서가 아니라 다음 10년의 투자 지형을 예측하는 금융 나침반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가 경고했듯 이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개인과 기업 모두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책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어떻게 블록체인 위로 이동하는지부터 자산 토큰화의 구조, 인공지능이 직접 돈을 쓰는 원리까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질문들을 논리적으로 타파한다. 화폐와 자산의 경계가 무너지고 소유의 문법이 완전히 재작성되는 현재, 남들보다 먼저 부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다가올 마찰 없는 금융 시대를 철저히 대비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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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말하지 않는 것들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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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걷는 거리가 다르게 보일 시간

을유문화사 신간, 건축가 임우진 지음 <도시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와 무심코 지나치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사실은 수백 년의 욕망과 투쟁을 머금은 거대한 기록물임을 일깨워 준다.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르코르뷔지에의 흔적을 좇고, 파리 라빌레트 건축대학에서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저자는 30년 가까이 유럽 현지에서 활동한 이방인이자 경계인이다. 도미니크 페로와 함께 이화여대 ECC를 설계하고 피렌체 국제현대미술비엔날레에서 디자인 부문 최고상을 2회 연속 수상한 그의 이력은 단단하다. 전작 <보이지 않는 도시>로 2023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되며 대중과 호흡하는 글쓰기 능력을 증명한 그는 이번 신작에서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다정한 시선으로 건축의 역사를 바라본다. 학술서의 딱딱함을 벗어던지고 수십 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의심하고 기록한 에세이라는 점에서.. 공간의 의미를 사유하고 싶은 모든 지적 방랑자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권력의 풍경을 직조한 둥근 지붕과 뾰족지붕

책을 펼치면 서양 건축이 어떻게 세계의 지배적인 기준이 되었는지를 묻는 도발적인 질문이 독자를 맞이한다. 저자는 로마의 판테온으로 대표되는 둥근 돔과 프랑스 노르트담 대성당으로 상징되는 고딕의 뾰족한 탑이 단순한 미적 취향의 차이가 아님을 밝혀낸다. 이탈리아 학자들의 철저한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파생된 로마네스크라는 용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른바 야만족이라 불리던 노르만족이 어떻게 거친 기후와 재료적 한계를 극복하며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창조했는지 서술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도시는 정답을 말해주지 않지만 건축물의 형태 속에 권력의 이동과 인간의 두려움과 경외심을 은밀하게 숨겨두었다. 돌과 벽돌이라는 물질적 한계와 종교적 압력이 맞물려 탄생한 건축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했던 서구의 스카이라인이 낯설고도 경이롭게 다가온다. 저자가 세상에 순수한 고딕 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하는 장면은, 우리가 맹신하던 역사적 분류법이 얼마나 허술한지 통쾌하게 꼬집는다.


제국주의의 욕망, 대도시 스카이라인의 탄생

파리, 런던, 뉴욕, 그리고 서울까지 거대한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에는 그 시대를 지배했던 욕망과 두려움, 권력과 기술, 그리고 각자의 믿음이 층층이 축적되어 있다. 저자는 워싱턴 D.C.의 백악관과 뉴욕 증권거래소가 왜 2천 년 전의 고대 그리스, 로마 양식을 차용했는지 예리하게 포착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초라한 과거를 지우고 서양 문명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던 미국의 강박증이 만들어낸 족보의 비약인 셈이다. 서울의 풍경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가 지은 옛 조선총독부 청사와 고종이 매료되었던 영국 영사관의 신고전주의 양식 이면에는, 서구의 외형을 빌려 제국주의의 위엄을 과시하려던 일본과 근대화를 통해 제국의 영원함을 증명하려던 대한 제국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 얽혀 있다. 19세기 말 에펠탑 건설을 두고 거센 비난이 일었던 파리와 달리, 다국적 이민자들이 모인 뉴욕은 문화적 진공 상태 덕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시그램 빌딩 같은 마천루를 유연하게 쏘아 올렸다. 이렇듯 열강들의 치열한 건축 전쟁은 단순한 미학적 성취를 넘어 자본주의와 권력의 이동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거대한 역사책으로 다가온다.


모더니즘의 환상을 넘어 한국 건축의 정체성 찾기

이어지는 2, 3부에서는 모더니즘의 등장과 현대 도시의 뿌리, 나아가 한국 건축이 직면한 정체성의 혼란을 집요하게 짚어낸다. 르코르뷔지에를 위시한 현대 건축의 거장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이 현실의 자본 및 탐욕과 부딪혀 어떻게 왜곡되고 희석되었는지 파헤치는 과정은 새로운 통찰을 안겨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통제되는 빛나는 도시의 이면에 자리한 획일성의 그림자를 지적하는 시선이 날카롭다. 뉴욕 시그램 빌딩의 매끈한 미학이 1970년 서울 삼일빌딩으로 복제되며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승리를 상징하게 된 과정은 모더니즘의 환상과 씁쓸한 현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1965년 부여에서 있었던 김수근의 시련을 언급하며 강요된 복제와 거대 기와지붕 속에 감춰진 불안을 조명하는 부분은 우리 삶의 터전을 뼈아프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1973년 세종문화회관이 전통 기와를 씌우려는 권력의 압력에 맞서 현대적 언어로 타협점을 찾은 반면, 1982년 독립기념관은 반일 감정이라는 정치적 목적 아래 수덕사 대웅전을 모방하는 거대한 목조 건축의 형상을 띠게 되었다. 맹목적으로 서양의 잣대를 수용하거나 껍데기만 남은 전통을 고집하는 대신,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과 감각으로 공간을 재구성하려는 치열한 고민이 페이지마다 짙게 배어 있다. 조병수의 지평집이 굽이치는 지형에 겸허히 순응하고, 김승회의 롯데 부여 리조트가 한옥의 원리를 상상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시도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는 어느 시대든 특정한 건축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이면에는 뚜렷한 사회적 맥락이 존재함을 환기하며,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끝나지 않은 숙제를 독자 앞에 펼쳐놓는다.


이방인의 딜레마가 낳은 독창적 예술의 성취

에필로그에 수록된 파리 샹젤리제 한국 레스토랑 프로젝트 일화는 저자가 치열하게 고민해 온 정체성의 문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주는 진귀한 기록이다. 파리 중심부에 가장 한국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저자의 시도는 현지인들에게 그저 이국적이거나 오리엔탈적인 풍경으로만 소비되는 한계에 부딪힌다. 이 뼈아픈 상대성 이론적 혼란 속에서 그는 무용가가 멈추면 관객이 움직이면 된다는 비범한 역발상을 끌어낸다. 반투명 금속 망과 빛의 굴절을 활용해 정지된 공간 속에 승무의 유려한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이 작업은, 1년의 강제 휴업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피렌체 국제현대미술비엔날레 레오나르도 다빈치상을 거머쥐는 쾌거로 이어진다. 이는 서구의 시선을 맹목적으로 좇거나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는 대신, 비물질적인 감각과 움직임을 통해 한국의 고유한 미학을 번역해 낸 건축가의 눈부신 승리다. 더불어 감사의 글에서 흙과 나무의 질감이 지닌 목적한 가치를 되짚고, 공간을 이해하는 태도를 길러준 어머니와 타국 생활의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는 차가운 도면 이면에 박동하는 뜨거운 인간애를 짐작하게 한다.


익숙함의 장막을 걷어내는 두 권의 지적 안내서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의 신작 <도시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전작 <보이지 않는 도시>와 짝을 이루어 읽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된다. 2023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되며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전작은 공간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신호등 하나, 거리의 의자 하나에 숨겨진 미시적인 삶의 철학을 이방인의 시각으로 건져 올렸던 저자는 이제 시선을 확장해 거대한 대도시의 스카이라인과 역사적 지층을 해부한다. 일상의 미시적 풍경을 다룬 전작과 제국주의, 권력, 모더니즘이라는 거시적 담론을 다룬 신작을 나란히 서가에 소장하고 읽는다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입체적이고 충만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오만한 전문가의 언어를 버리고 다정한 에세이의 화법을 택한 이 매력적인 건축 교양서는 밋밋해 보이던 출퇴근길의 건물들이 각자의 치열한 서사를 품고 말을 걸어오는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 온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침묵하던 도시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두 권의 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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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의 작은 정원들 -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골목 정원 이야기
최윤선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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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북스 신간, 최윤선 지음 <북촌의 작은 정원들>은 치열한 의료 현장에서 타인을 돌보며 정작 자신은 방치했던 한 간호사가 도심 속 식물에게서 치유를 얻고 써 내려간 생명력의 기록이다. 저자 최윤선은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병원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사투를 벌이던 의료인이었다. 팬데믹 시절, 번아웃을 겪으며 동네 천변을 걷다 길가의 풀꽃에 눈길을 주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산림치유지도사이자 숲해설가로 변신하여 현재 북촌에서 '비퀠 도심숲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식물을 알아가는 과정이 일종의 자기 돌봄이었다고 고백하며, 멀리 있는 울창한 숲이 아니더라도 출퇴근길 골목에서 만나는 자연이 회복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책은 속도전에 지쳐 마음이 닳아버린 현대인들, 타인에게 에너지를 내어주느라 내면이 고갈된 이들에게 건네는 맞춤형 초록색 처방전이다.


아스팔트 틈새와 낡은 담장이 품은 비움의 길

작가는 북촌을 단순히 예쁜 카페가 늘어선 관광지, 핫플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가 안내하는 첫 번째 정원 '비움의 길'에서 독자는 안국역 주차장 갈라진 아스팔트 틈을 비집고 자라난 오동나무와 조우한다. 옛사람들이 딸을 낳으면 심었다는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저자는 척박한 도시의 문법을 조용히 거부하는 단단한 생명력을 읽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동 앞을 180년 넘게 지켜온 비술나무 세 그루에 얽힌 감상은 진한 잔상을 남긴다. 조선 시대 종친부부터 일제강점기, 기무사 터로 이어지는 곡절 많은 근현대사를 침묵 속에서 지켜본 이 거목들이 땅속에서 뿌리를 맞대고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통찰은, 수잔 시마드의 산림 생태학 연구와 맞물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연대의 가치를 일깨운다. 종친부 옥첩당 뜰에 핀 우리나라 특산 희귀종 미선나무의 향기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학계에 보고된 식물학적 사료까지 꼼꼼히 짚어내며, 지식과 감성이 융합된 독창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인내와 회복을 말하는 골목길의 식물 생태학

<북촌의 작은 정원들>에는 병동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지켜보며 벼려진 남다른 생사관이 녹아 있다. 창경궁 명정문 앞 돌 틈에 핀 작고 소박한 꽃다지를 보며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대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기어이 개화하고 마는 끈기를 찬양한다. 넓고 비옥한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꽃다지의 생태는 번아웃에 빠져 무너져 내렸던 작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굳건한 동력이다. 삼청공원에서 천천히 자라는 회양목을 향해 느린 성장은 정체가 아니며 응축이라고 전하는 메시지 역시 끝없는 효율을 강요당하는 현대인들의 조급증을 단숨에 녹여낸다. 원서동 좁은 건물 틈새의 쉬나무가 묵묵히 결실을 맺는 모습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작가의 태도는 타인을 돌보는 자에게도 반드시 자기 돌봄이 필요하다는 명징한 진실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소소한 발견이 건네는 위로와 구원의 정원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산책하며 병꽃나무, 황매화, 꽃마리, 미스김라일락 등 이름조차 정겨운 식물들을 천천히 오래 바라보는 저자의 눈길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행복은 우연하고 소소한 발견에서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무너진 마음을 구원하고 부축하는 대상이 화려한 풍경이 아니라 사람 냄새나는 소박한 뒷골목과 작은 정원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를 유발한다. 거창한 격려 대신 길가에 피어난 여린 생명들에 눈길을 맞추는 다정한 행위가 일상을 회복하는 든든한 지지대로 작용한다.


나만의 궤적을 긋는 실천, 산책 노트의 의미

책에 부록으로 제공되는 <북촌 산책노트>는 독자를 단순한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기록자로 안내하는 매력적인 장치다. 저자가 안내한 길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조그만 수첩을 챙겨 문밖을 나서서 자신만의 산책길을 새롭게 개척해 보기를 권한다. 매일 무심코 스쳐 지나가던 보도블록이나 이름 모를 잡초,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가로수를 유심히 바라보고, 그 곁에 머물며 피어나는 독자적인 감상을 적어 내려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 건강한 마음 챙김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나 화려한 수식어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식물과 교감한 흔적을 남기는 과정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주체성을 회복하고 단단한 평안을 다지는 소중한 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식물 산책기

저자 최윤선의 문장은 차분하고 정갈하며, 대상을 향한 시선은 따스하다. 자연의 위대함을 막연히 칭송하기보다, 보도블록과 담벼락 아래 서식하는 식물들의 치열한 생존 투쟁을 과학적인 식물학 지식과 결합해 서술한다. 식물형태학과 수목학을 파고든 이력이 묻어나는 정확한 명칭과 생태 묘사는 글의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북촌의 작은 정원들>의 두드러진 장점은 거창한 명산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상적 공간인 창덕궁, 계동길, 삼청동 골목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누구나 당장 문밖을 나서면 자신만의 치유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부여하고 호기심을 끌어올린다. 식물의 침묵에서 인간 존재의 이유를 길어 올리는 이 기록은, 한 개인이 소진을 딛고 일어서는 서사를 넘어 식물과 공간, 사람이 어떻게 교감하며 서로를 살리는지 증명하는 생태 인문학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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