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마음 - 내 아이의 수학 정서를 높이는 초등부모의 대화법
강미선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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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저자의 <수학의 마음>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수학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20여 년간 초중고 학생과 예비 수학교사를 지도해 온 교육 전문가의 통찰이 담긴 에세이이다. 국내 최초 수학 전문 서점인 '데카르트 수학책방'을 정유숙 대표와 함께 운영하며 수학교육 대중화에 앞장서는 저자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2년 출간된 <수학은 밥이다>를 전면 개정하여 도서출판 푸른향기에서 새롭게 펴낸 이 책은 점수나 경쟁 중심의 교육에 지친 학부모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수학을 문제 풀이의 도구가 아닌, 아이의 정서와 태도를 기르는 매개체로 바라보아야 함을 지속적으로 역설한다. <강미선 쌤의 개념잡는 분수비법>, <조선수학의 신 홍정하> 등 3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베테랑 저자가 전하는 현실적인 조언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학부모들에게 확고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다시 태어난 완전 개정판, 그 의미와 가치

<수학은 밥이다>에서 <수학의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유는 명확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자녀의 수학 학습 문제로 고통받는 부모와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30대 중반, 대학원을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던 초보 엄마 시절에 쓴 초판의 열정은 그대로 유지하되, 긴 시간 축적된 교육 현장의 경험과 다듬어진 이론을 더해 더욱 단단한 에세이로 완성되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과거의 책이 절판되어 시중에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꼭 개정판을 내달라고 요청한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팍팍한 학습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수학의 본질을 잃지 않고, 호기심과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이 책의 곳곳에 녹아 있다. 문제의 정답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수학적 정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이 개정판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성적이라는 환상을 깨는 인상적인 에피소드

인상적인 대목은 단연 아이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에피소드이다. 과거 담당 피디가 촬영의 재미를 위해 아이에게 100점을 맞고 싶다고 대답하길 요구했을 때, 아이는 단호하게 95점을 맞겠다고 고집을 부려 실랑이가 벌어진다. 저자는 당시 5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을 다그쳤던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고백한다.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의 숨통을 막는 일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은 깨달음을 선사한다. 만점에 대한 강박을 버릴 때 비로소 삶의 여유가 생기고, 아이가 스스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통찰은 학부모의 불안한 심리를 찌르는 날카로운 조언이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가 아이의 수학적 호기심을 어떻게 짓밟는지 돌아보게 하며 진정한 학업 성취는 여유로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기다림의 미학을 증명하는 브라질의 실험

책의 중반부에 소개되는 브라질의 블록 쌓기 실험 역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부모와 아이가 짝을 이룬 팀과 교사와 아이가 짝을 이룬 팀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부모들은 시행착오를 경제적 낭비로 치부하며 아이에게 정해진 정답의 경로만 지시했다. 반면 교사들은 실수를 이해의 과정으로 여기고 아이의 의견을 물으며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이는 수학적 사고력이 마치 공장의 생산품처럼 단기간에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효율성만 따지며 자녀를 다그치던 부모라면, 이 대목에서 아이가 생각할 시간을 빼앗았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왜라고 질문을 던지며 답을 정당화하는 태도야말로 평생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자산이 된다는 저자의 철학이 잘 드러난다.


부모의 기다림과 질문이 만드는 수학적 대화법

아이가 수학의 묘미를 느끼고 온전히 즐기게 하려면 부모의 조급함을 내려놓는 태도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새롭게 추가된 책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엿볼 수 있듯, 아이가 문제의 해답을 곧바로 찾지 못할 때 정답을 다그치기보다는 최소 삼 분 정도 여유를 두고 스스로 생각할 틈을 주어야 한다. 단순한 계산 결과에 급급한 아이에게는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며 풀이 과정을 되묻거나, "그림으로 한 번 그려서 풀어볼까?"라고 제안하며 논리적 근거를 설명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현명하다. 또한 수학은 무조건 답이 하나뿐이라는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해결 방식을 탐구하도록 장려하는 대화가 필수적이다. 남들보다 선행학습을 서두르는 빠른 철학을 가진 부모가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느린 철학을 가졌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12년이라는 장기적인 교육과정의 안목을 둔 상태로 자녀의 성향에 맞는 학습 스케줄을 짜는 지혜가 요구된다. 맹목적인 암기가 아니라 억지스럽지 않게 개념을 납득하는 과정을 거칠 때.. 아이는 비로소 수학을 세상을 살아가는 든든한 무기이자 친구로 삼게 된다.


평생의 동반자로 자리 잡는 수학의 진정한 의미

책의 말미, 저자는 수학을 입시를 위한 단순한 점수 획득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세태를 꼬집는다. 시험 문제의 정답만을 맞추는 데 매몰되면 졸업과 동시에 수학과의 인연은 단절되며, 자칫 과목 자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짚어낸다. 저자는 수학을 일컬어 살아가며 마주하는 곤란한 상황에서 해결 과정을 귀띔해 주는 유익하고 다정한 친구라고 묘사한다. 보이지 않지만 늘 곁에서 자신을 돕는 든든한 학문이라는 믿음이 생길 때, 아이의 마음속 불안은 가라앉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수학은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도구 그 자체라는 에필로그의 통찰은 학부모의 뇌리에 강한 잔상을 남긴다. 대학 입시라는 좁은 관문을 넘어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동반자로서 수학을 대할 때.. 내 자녀의 첫 수학은 비로소 가정에서 올바른 닻을 내리게 된다.


편견을 깨는 실전 지침 & 총평

<수학의 마음>의 전체적인 구성은 부모의 성향을 진단하는 장부터 초등수학 가르치기의 실제, 선행학습과 자기 주도 학습의 허와 실까지 체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수학은 반복 학습만이 능사인지, 답은 오직 하나뿐인지 등 부모들이 흔히 착각하는 선입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토파즈 효과를 조심하라는 경고나, 언어력이 탄탄할수록 수학적 사고도 높아진다는 조언은 실전에서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지침이다.

단조로운 문제 풀이 요령을 넘어 수학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실용서들과 궤를 달리한다. 푸른향기 개정판 <수학의 마음>은 아이의 수학 교육을 빙자하여 부모 자신의 불안을 달래고 있던 어른들에게 건네는 따끔하면서도 다정한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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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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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를 기리며

2026년 7월 23일, 68세의 나이로 대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를 추모하며 글을 시작한다. 1985년 <방과 후>로 데뷔한 이래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1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긴 그는 누적 판매 부수 1억 부를 돌파하며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장르 문학을 이끌었다.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정교한 과학 트릭을 선보이던 그는 점차 사람의 감정과 인물 간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작풍을 넓혀왔다. 넷플릭스 영상화 및 일본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등 눈부신 성과를 기록한 그의 새로운 서사, 시리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 비통하다.


시리즈의 전환점, <투명한 나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 최신작 <투명한 나선>을 손에 들었다. 분량은 400여 페이지..

북다 출판사에서 김선영 번역으로 출간된 이 소설은 시리즈 열 번째 장편이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의 개인사를 처음으로 수면 위에 올린다. 차가운 이성의 대명사였던 유카와의 내면이 드러나는 전개에 신선한 충격을 감출 수 없다. 작가 스스로도 갈릴레오 팬이라면 분명 놀랄 것이고 히가시노 팬이라면 더욱 놀랄 것이라고 공언했을 만큼, 이 책은 작가가 오랜 시간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놓은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투명하게 얽힌 혈연의 미스터리, 그 시작점

지바현 미나미보소 앞바다에서 영상 제작자 우에쓰지 료타가 등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사건은 막을 올린다. 메구로 경찰서의 형사 구사나기와 가오루가 수사망을 좁혀가는 가운데.. 사망자의 동거인인 시마우치 소노카가 일하던 꽃집에 휴가를 내고 돌연 자취를 감춘다. 소노카는 교제 폭력을 일삼던 우에쓰지에게 지속적인 가스라이팅과 학대를 당하던 피해자였다. 옛 친구 오카타니 마키 등 지인을 만나는 것조차 통제당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던 소노카의 삶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홀어머니 시마우치 지즈코마저 잃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노카를 돕기 위해, 평소 모녀를 챙기던 마쓰나가 나에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나 그녀의 도주를 돕는다.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는 여성들의 연대

경찰이 흩어진 단서들을 추적하는 동안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의 비밀이 하나둘 형체를 드러낸다. 특히 고급 클럽을 운영하는 네기시 히데미의 서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히데미는 과거 자신이 버렸던 핏덩이가 아사카게 보육원에서 자란 지즈코였음을 수제 인형의 비밀을 통해 깨닫는다. 후에 진실은 다른 방향으로 인형의 진짜 주인을 가리키지만, 서사는 걷잡을 수 없이 격류를 탄다. 인형 옷 속에 적힌 비밀 이름은 끊어질 수 없는 혈연의 증표였다. 지즈코의 딸인 소노카가 자신의 친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히데미, 그리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기꺼이 소노카의 방패가 되어준 나에까지,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노카를 구원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핏줄이라는 원초적인 연결고리와 헌신적인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차가운 물리학자의 제일 뜨거운 고백

이 소설이 갈릴레오 시리즈의 전작들과 무엇보다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탐정 유카와의 위치와 나이 듦이다. 서른넷 부교수였던 그는 어느덧 쉰이 넘은 정교수가 되었고, 작가는 유카와 부모님의 노환과 병간호 묘사를 통해 세월의 흐름을 현실적으로 조명한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한여름의 방정식> 등에서 유카와는 철저한 외부자의 시선으로 얽힌 실타래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데 주력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냉철한 학자의 표본이었다. 허나 이번 수사 과정에서는 뜻밖에 유카와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는 제삼자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로서 진실의 중심에 선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며 오랜 친구 구사나기에게 선을 긋던 그는 마침내 평소라면 절대 내비치지 않았을 출생의 비밀을 고백한다. 구사나기와의 대화에서 자신을 버렸던 마쓰나가 나에를 가리켜 "내 친어머니야"라고 밝히는 대목은 팬들에게 커다란 놀라움을 안긴다.

단 한 번도 흔들림 없던 유카와가 사건에 직접 개입하며 자신의 뿌리를 마주하는 과정은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히게 이색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끈이 빚어낸 찬란하고 시린 결말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가족이라는 존재는 때로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나선이 되어 서로의 삶을 강하게 옭아맨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의 진상이나 트릭을 파헤치는 쾌감보다는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타당성에 집중하며 아스라한 감동을 선사한다. 논리와 이성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파동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껴안은 이 소설은 인간 탐구 보고서에 가깝다. 본편 에필로그 이후 별개 사건을 다룬 스페셜 단편 <겹치다>가 최초로 수록되어 소장 가치를 더한다. 유카와 마나부,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는 상징적인 문구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랜 시간 머릿속을 맴돈다. 시리즈를 꾸준히 사랑해 온 독자는 물론이고 혈연과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갈릴레오 최후의 수수께끼, 한국에 출간될 유작 <영원한 기억>

고인의 부고와 함께 갈릴레오 시리즈가 이것으로 종결된다는 사실이 무척 애통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한국 독자들을 위해 최종적으로 출간될 진짜 유작이 하나 더 남아있다. 바로 일본에서 지난 2026년 8월 5일 출간된 시리즈 열한 번째 장편 <영원한 기억>이다. '갈릴레오, 마지막 수수께끼'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형사 우쓰미 가오루가 흉기에 찔리는 사건을 계기로 유카와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으며, 교보문고 북다를 통해 조만간 국내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일생을 다해 흥미진진한 서사를 선물해 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하며,

그가 남긴 106번째 서사가 도착할 날을 차분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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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숲 - 제19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소담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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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오기와라 히로시는 1956년 사이타마현 출생으로 세이조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다 39세의 나이에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로 제10회 소설스바루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후 알츠하이머에 걸린 중년 남성의 애환을 현실감 있게 그린 <내일의 기억>으로 제2회 서점대상 2위에 오르며 영화화까지 성공시켰고, 2016년 발표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로 제155회 나오키상을 거머쥐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입증받은 베테랑 작가이다.


2024년 출간된 신간 <웃는 숲>은 제19회 중앙공론문예상 수상 및 독서미터 올해의 도서 2024-2025에 선정되며 그의 식지 않은 필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소설이다. 한국에는 북다, 이소담 번역을 통해 최근 출간되었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인간 소외를 향한 따스한 시선이 문장 곳곳에 스며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상처받고 고립된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자연 친화 & 휴먼 미스터리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복잡하고 메마른 현실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을 갈망하는 성인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작품이다.


실종된 5세 자폐 아동 마히토와 숲이 품은 비밀

소설은 가미모리 산책로에서 행방불명되었던 다섯 살 남자아이 마히토가 일주일 만에 무사히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아이는 눈에 띄게 쇠약해졌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숲에서 물과 음식을 어떻게 얻었는지 묻는 어른들에게 그저 "곰 아저씨가 도와줬어."라는 미스터리한 말만 남긴다. 보호자인 미사키와 삼촌 도야는 아이가 텔레비전이나 어린이집에서 배운 적 없는 나무를 비벼 불 피우는 시늉을 하거나, 숲속 곰 아저씨라는 동요를 부르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며, 실종 기간 동안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보았음을 직감한다. 소설은 마히토의 기적적인 귀환 이후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역추적하는 동시에, 어둡고 광활한 숲속으로 숨어든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과거 시점을 절묘하게 교차 편집하여 보여준다. 이처럼 치밀하게 설계된 플롯은 독자로 하여금 거친 야생의 자연 속에서 연약한 아이를 살려낸 구원자가 과연 누구인지 끊임없이 추리하게 만드는 독서 동력을 제공한다.


벼랑 끝에 선 인간들이 교차하는 고립된 공간

페이지를 넘길수록 배경이 되는 가미모리 숲은 단순한 자연 풍경을 넘어, 각자의 절박한 사연을 품고 사회로부터 도망쳐 온 이들의 은밀한 도피처로 변모한다. 숲에서 길을 잃은 5세 자폐 아동 마히토는 운 좋게도 이곳에서 네 명의 성인을 차례로 만난다. 빚에 쫓겨 야심 차게 원시 캠핑 생존 방송으로 재기를 노리지만 라이터조차 없이 허덕이는 다쿠마, 야쿠자 조직의 상납금을 훔쳐 달아나며 짐승처럼 숲에 몸을 숨기는 다니시마, 소중한 인형의 무덤을 만든다는 기괴한 거짓말로 아이의 입을 막으려는 미나, 그리고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는 중등 교사 사토미가 그들이다. 이들은 우연히 마주친 마히토에게 마실 것을 주거나 추위를 피하게 해 주며 잠시 돌보았을 뿐, 각자의 안위가 우선이었기에 끝내 아이를 집, 수색대에 돌려보내지 않는다. 타인의 생명보다 자신의 도피, 생존이 먼저였던 어른들의 비겁함과 이기적이고 잔인한 면모는 자칫 마히토를 영영 실종 상태로 놔둘 뻔한 아찔한 위기를 조장한다. 불안정한 현대인의 위태로운 내면을 투영한 이기적인 선택들은 팽팽한 범죄 스릴러의 묘미를 선사하며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거대한 자연의 조소와 그 속에서 피어난 기적

허나 벼랑 끝에 몰린 어른들이 외면한 연약한 생명을 거두어 구원한 것은 다름 아닌 대자연이었다. 비겁한 인간들과 대비되게 정체불명의 곰 아저씨와 가미모리 숲은 어린아이를 따스하게 돌봐주었고, 덕분에 마히토는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 품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는 범죄 미스터리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종국에는 오만한 인간성에 대한 경종과 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절묘하게 교직한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러 진상을 조사하는 도야가 숲이 인간들을 조소하고 비웃는 듯한 소리를 듣는다는 묘사는 강렬하고 서늘한 잔상을 남긴다. 거대한 자연의 품속에서 한없이 작고 하찮은 존재일 뿐인 인간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꼬집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ASD) 아동의 시선을 철저히 객관적이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며 억지스러운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 진한 여운을 자아낸다.


서스펜스와 인간 소외, 자연의 비밀에 대한 통찰이 최적의 비율로 배합된 북다 신간 <웃는 숲>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반추하게 되는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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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츠하우스 ANGST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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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의 쇼핑몰> 원작자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입증한 강지영 작가의 신작 <프린츠하우스>는 서늘한 공포와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직조해 낸 스릴러다. 작가는 <심여사는 킬러>, <프랑켄슈타인 가족> 등 다수의 전작에서 보여준 치밀한 플롯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 특유의 블랙 유머를 이번 작품에서도 여과 없이 발휘한다. 17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 출간될 만큼 보편적인 흡인력을 자랑하는 저자는 북다 신간을 통해 가톨릭 구마 의식과 한국 무속 신앙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과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다. 이 책은 단순한 악령 퇴치 서사를 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탐욕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촘촘한 세계관과 탄탄한 서스펜스를 즐기는 독자, 한국형 오컬트의 새로운 지평을 경험하고 싶은 장르 소설 팬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하는 바이다.


욕망이 똬리를 튼 공간, 기묘한 거주지

소설은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게임 개발자 김선우가 한남동의 낡지만 기품 있는 고급 빌라에 입주하며 시작된다. 목차가 암시하듯 소설은 '사람의 집'에서 '귀신의 집', '부마자의 집'을 거쳐 마침내 '영주의 집'으로 향하며 점진적으로 서스펜스의 밀도를 조인다. 선우가 마주한 세입자 전승아는 평범한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이 탁하고 기괴한 이계의 존재들이 들끓는다. 작가는 선우의 이성적이면서도 탐욕적인 시선을 통해 일상적인 주거 공간이 어떻게 자본과 욕망이 얽힌 지옥의 축소판으로 변모하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모기와 지네가 피부를 파고드는 듯한 선우의 환지통이나 과거 연인의 모습을 한 악령과의 조우 장면은 시각적 공포를 넘어 촉각적인 기정사실로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동서양 오컬트의 충돌과 무력한 구원

이 소설의 서사를 이끄는 강력한 동력은 가톨릭 사제와 무당이 빚어내는 파열음이다. 승아의 육신을 차지하기 위해 서양의 악마 레비아탄과 동양의 주술적 저주인 고독이 맹렬하게 충돌한다. 엘리트 지식인으로 포장된 승아의 부모 전무정과 현마리아는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딸을 지옥의 제단에 바치는 끔찍한 패륜을 저지른다. 신장암에 걸린 아버지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기복 신앙에 기대어 타인의 생명을 갉아먹는 행태는 자본주의적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독자를 짓누르는 것은 구마 사제들의 처절한 선택이다. 이사악 신부는 악마를 외부로 쫓아내는 대신 자신의 영혼과 함께 소녀의 몸속에 십 년 가까이 봉인했고, 미카엘 사제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결단을 내린다. 성수와 기도문, 부적과 굿거리장단이 혼재하는 풍경은 이질감을 넘어 기이한 장엄함을 자아낸다.


영원한 지옥, 불티에 잠식된 인간

결말부에 이르러 소설은 장르적 쾌감을 넘어 윤리적 질문과 절망을 동시에 안긴다. 가장 강렬하고 비장한 기운을 내뿜는 대목은 화자 선우가 끝내 끝없는 탐욕에 사로잡혀 '불티'에 휩싸이는 마지막 장면이다.


"내 안의 불티들이 점막을 뚫고 폭발하듯 입과 코로 터져 나왔다. 불티는 맹렬한 속도로 황야를 걷는 미카엘에게 달려들었다."


미카엘 사제는 스스로 타락한 척 악마와 한 몸이 되어 함께 파멸하는 동귀어진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 숭고한 자멸의 대가로 사제가 얻은 것은 구원이 아니라 끝없는 지옥의 황야를 걷는 형벌이다. 반면, 자기희생의 가치를 외면하고 오컬트적 자본의 주술적 매개물인 '불티'에 감염된 선우는 차갑고 무자비한 부자로 살아남는다. 선우가 꿈속 지옥을 걷는 미카엘을 향해 불티를 쏘아대며 조롱하는 묘사는 처절하다. 이는 자본주의의 신비화된 욕망 앞에서는 종교적 구원조차 무력해진다는 작가의 서늘한 선언과 다름없다. 과연 자본주의의 탐욕, 끝없는 증식을 잠재울 수 있는 구마사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값싼 해피엔딩으로 봉합되기를 거부하는 이 책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 섬뜩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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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자들 여정의 시작 6 : 별의 정령 별을 쫓는 자들 1부 여정의 시작 6
에린 헌터 지음, 윤영철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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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어린이 신간, 에린 헌터 판타지 소설 <별을 쫓는 자들> 6권 <별의 정령>은 변신곰 어주락, 갈색곰 토클로, 흑곰 루사, 흰곰 칼릭이 기나긴 여정 끝에 얼음으로 뒤덮인 별섬에 도착하며 겪는 최후의 모험을 다루고 있어요.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굶주림과 싸우던 네 마리의 곰은 바다를 오염시키는 검은 기름과 병든 물개들을 목격하며 자연을 파괴하는 납작얼굴들의 만행에 맞서게 된답니다. 특히 칼릭이 범고래 떼의 습격 속에서 루사를 구하고 고아 새끼 곰 키시미를 거두며 강인하게 성장하는 에피소드와 어주락이 까마귀로 변신하는 툴루가크를 만나 섬 전체를 파괴할 석유 시추의 진실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터전, 핏줄이 다른 곰들이 온갖 갈등과 위협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며 진정한 가족, 동료로 거듭나는 서사는 긴 여운을 남겨요. 인간의 탐욕이 파괴한 생태계의 비극을 야생 동물의 시선으로 생생히 고발하고 있어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별을 쫓는 자들>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6권 <별의 정령>은 단순한 동물 판타지를 넘어 생태계의 위기와 생명의 연대를 통찰하는 의미 있는 서사시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을 읽으며 시선을 끌었던 부분은 곰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근원적인 공포가 거대한 포식자나 매서운 추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독성 물질이라는 점이에요. 썩은 물개 사체들을 추적하다가 마침내 땅에서 석유를 퍼 올리는 납작얼굴들의 시추 작업에 따른 오염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은 현실의 환경 문제를 섬뜩할 정도로 짚어내고 있답니다. 


또한 죽은 어미 흰곰의 새끼인 키시미를 칼릭이 거두어 정성껏 돌보는 대목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의 온기를 전해주어요. 텃세를 부리는 다른 흰곰들과 여러 트러블, 다툼이 있었지만 까마귀 툴루가크와 거대한 순록 무리의 도움을 받아 결국 시추 장비들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통쾌한 장면에서는 신출귀몰한 변신곰 어주락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인답니다. 마지막 갈등을 넘어 야코네라는 새로운 동료가 합류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 역시 감동을 자아내요. 하지만 모든 임무를 마친 뒤 안타깝게도 어주락이 별의 정령을 따라 먼 길을 떠나며 이별을 고하는 결말은 커다란 슬픔을 남긴답니다. 과연 어주락은 나중에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동굴 벽화와 밤하늘에 새겨진 다정한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아요!


희생과 용기로 일궈낸 야생의 고귀한 발자취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 책을 환경 보호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독서로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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