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ㅣ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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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웠던 전장에는 꽃을 가지고 가야 하는 법이야."

"아이 버섯은 지혜롭습니다. 지혜가 곧 언어이기 때문이지요. 지혜는 몸이 아닌 목소리입니다."


남미 문학의 신경향을 이끌 작가로 손꼽히는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이 은행나무 '환상하는 여자들' 시리즈의 제2권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오악사카의 후예로서 치유자의 피가 흐르던 '팔로마'가 살해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팔로마는 가스파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출생한, 사포텍 문화권에서 제3의 성으로 인정받는 '무셰'이다.

일종의 주술적 언어를 통해 길흉화복을 점치고 미래를 예지하는 전통 무속인인 듯하다.


팔로마의 살인 사건을 취재하는 젊은 기자 '조에'와 팔로마의 사촌이자 후계자인 '펠리시아나'가 번갈아 등장하고 또는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자신 혹은 주위의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고, 위험에 처하는 장면이 연이어 묘사된다.


현대적인 도회지 멕시코시티와 호젓한 산골 마을 산펠리페에서 각각의 여성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딸에게 닥칠 위험을 예지하는 엄마의 기이한 능력 때문에 몇 번의 구사일생을 경험한 조에는 그 비결을 묻는다.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여성들은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비한 능력을 일부 지니고 태어난다. 그 필살기는 후천적으로 습득될 수도 있다. 허나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홀로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의 무사안녕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단단히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아야만 마녀사냥을 피할 수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고립되어 반사회적인 이단으로 취급받는 마녀들을 불태우기 위한 제단이 높이 솟아 있다. 활활 불타오르는 화형대를 목전에 두고 여성들은 공동체 의식을 굳게 다지는 한편, 각자의 언어적 능력을 발휘해 연대할 필요가 있다. 마술적인 힘과 집단의식이 깃든 언어는 지혜를 발화시키며, 이를 통해 이질적인 세계와 진영은 조화를 이루고 평안을 되찾을 수 있다. 세대를 넘은 치열한 투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때.. 생살이 타드는 고통이 멈추고 잿더미만 남은 전장에 검붉은 꽃무리를 수놓을 수 있는 것이다.


브렌다 로사노의 장편 소설 <마녀들>은 두 여성과 세계가 대립이 아닌, 언어적 치유와 연대를 통해 폭력의 상처를 회복하고 해소하는 이야기를 마술적인 필치로 그린다.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상처가 집단의 언어를 통해 회복되는 주술적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실 사회의 편견과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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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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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로마'는 화려하고 북적이는 대도시지만, 그 이면은 황량하고 혼탁한 데다 퇴색되어 가는 그림자가 기울었다. 그 도시에 머무르는 이들은 수많은 군중들에 둘러싸여 정처 없이 표류한다. 그들은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지만, 도시가 내뿜는 어둑한 그림자에 온몸이 물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절친이었다.




1973년 첫 출간 이후, 절판과 재출간을 거듭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으로 남은 컬트 소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출간되었다.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이어진 명성답게, 로마의 명소를 묘사한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문장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정교하기까지 하다. 커플의 애정 행위를 정밀 스케치한 문장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에로틱하게 들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밀라노에서 로마로 건너온 '레오'가 되어 핀초 언덕의 테라스, 캄포 데이 피오리의 쉼터, 움베르티노 지구 등 한여름 로마의 곳곳을 방랑하듯 거닐 수  있다. 레오는 완벽한 혼자가 아니었다. 로마 상류층에 속하는 어느 부부와 가까이 지냈고, 뜻이 맞아 함께 영화를 제작하려 한 절친 '그라지아노'도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그와 사랑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아리아나' 또한 나비처럼 그의 곁에 머물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번잡한 도시 안에서 무의미하고 공허한 나날을 지속하던 레오는 곁의 모든 이들을 관찰한다. 어떠한 분석이나 냉철한 비판 없이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끝 모를 고독의 중심으로 점차 끌려간다. 가혹한 운명은 무더운 도시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진심으로 교류하던 그라지아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레오는 도시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부정하면서 아리아나 곁에 머물려 했던 그는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헛된 허영심과 사치에 잠식당한 그녀는 결국 레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레오는 하이에나처럼 타인이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랑하는 애인을 독차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절감하며, 도시에서 버림받고 추방당한 모든 이들을 받아주는 푸른 '바다'를 향해 다가간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영원을 향해 나아갔다.

 



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대중들 사이에서 망각되지 않고 복간되는 데는 어떤 보편적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종 SNS로 촘촘히 연결된 인터넷/디지털 AI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레오가 느끼는 고독감과 허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관계는 이런 모순을 극대화하며, 무수한 팔로워에 둘러싸여 소외감과 외로움을 면치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량적인 숫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기간 고립되어 끝내 고독사할 처지에 몰리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도심의 이면에 깔린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진심 어린 사랑과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레오'들은 오늘날 대도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돛을 올리고 나아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이들.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존재 의미를 숙고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이들이 여러 도시에 남아있는 한, 이 책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보편성을 획득할 것이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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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듣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0
이주혜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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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없는 목각 인형, 슬픔을 담는 거대한 그릇이 되다

현대문학 60번째 핀 시리즈, 이주혜 소설 <꼭두, 듣다>는 화자의 설정부터 독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무 인형이다. 입과 혀 없이 오직 커다란 두 귀만 존재하여 자신을 깎아낸 목수로부터 '큰 귀'라는 이름을 얻은 꼭두가 바로 이 소설의 화자다. 피나무 조각에서 태어난 꼭두는 자신을 창조한 박 목수의 한탄과 슬픔을 일방적으로 들이마시는 존재로 기능한다. 입이 없어 발화할 수 없는 화자가 귀만 열어둔 채 타인의 비화를 온전히 수용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처연한 미학을 선사한다. 목수가 조각칼로 나무를 파내며 쏟아내는 말들은 꼭두의 치밀한 나뭇결 사이로 고스란히 스며든다.


"내 몸은 주렁주렁 너무나 무거워 한없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시간의 우물 속에 턱까지 잠기고 말았습니다."


라는 꼭두의 고백은 타인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하는 청자의 숙명을 여실히 보여준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물이 억눌린 비극을 대신 증언하려 할 때 이야기는 비로소 텍스트 밖으로 넘쳐흐르며 숨결을 얻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생명, 외면할 수 없는 온기

박 목수의 삶은 끔찍한 비극과 맞닿아 있다. 소설은 아내의 난산과 죽음, 그리고 홀로 남겨진 핏덩이를 대면하는 사내의 참담한 내면을 조명한다. 아내를 잃은 충격과 절망 속에서 목수는 자신의 아이를 애써 '작은 귀신'이라 부르며 혹독한 현실을 부정하려 애쓴다. 그가 아내를 위해 만들었던 피나무 반닫이 궤가 죽음의 관처럼 느껴지는 순간 목수의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내려앉는다. 허나 삶은 기어코 죽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간다. 허기에 지친 아이가 서투른 몸짓으로 다가와 "물!"을 외치고 목수의 가슴팍에 뛰어드는 대목은 짙은 애잔함을 자아낸다.


"온통 흰 천으로 감싸여 사람 같지 않았던 그 작은 몸은 의외로 따뜻했습니다."


라는 구절처럼 목수는 아이의 붉고 작은 입과 생동하는 숨소리를 통해 다시금 삶의 온도를 회복한다. 아내를 향한 애틋함을 품은 피나무는 반닫이 궤가 되고 귀신이라 여겼던 아이는 목수의 삶을 다시 뛰게 하는 심장이 된다. 작은 귀신을 돌보며 "업어!" 하면 업어야 하고, "안아!" 하면 안아야 하는 일상 속에서 목수는 혹여 아이가 박새나 솔새처럼 포르르 날아가 버릴까 봐 전전긍긍한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안에서 기어이 치열하게 빛을 발하는 생명력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 의식이다.


소외된 삶을 껴안는 청취, 고통을 감내하며 피어나는 위안과 용서

꼭두는 단순히 목수 한 사람의 슬픔만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꼭두의 커다란 귀는 이승을 떠도는 혼령이나 공장에서 억척스럽게 청춘을 바쳐야 했던 누이들처럼 입으로 전해지지 못한 채 천대받는 작은 삶의 소리들을 향해 열려 있다.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는 작품 해설처럼 쏟아지는 타인의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내고 들어야 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청자에게 쓰라린 통증을 남긴다. 상여를 장식하며 망자의 두려움을 달래주던 전통적인 꼭두의 숙명을 이어받은 화자는 자신을 향한 무수한 고백과 한탄을 온몸으로 감내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고독한 경청의 행위는 발화자는 물론이고 듣는 이 자신에게마저 위안과 용서의 감각을 선사한다.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온전히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이 되며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으며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꼭두의 존재는 그 자체로 단단한 연대의 의미를 지닌다.


상처를 대면하는 물리적 통증, 마침내 도달하는 해방..

며칠 전 감상한 데이빗 로우리 감독 영화 <마더 메리>의 강렬한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자해하여 벌어진 마더 메리의 가슴 상처에 샘이 손가락을 비집어 넣는 파격적인 행위는 언뜻 기괴해 보이지만, 결국 회피하던 끔찍한 고통, 트라우마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두 사람을 옭아매던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치유의 시발점이 된다. <꼭두, 듣다>의 화자가 겪는 무방비한 청취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책의 작품 해설에 인용된 파스칼 키냐르의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라는 문장처럼.. 꼭두는 밀려드는 타인의 난폭한 슬픔과 상처를 차단할 방도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한다. 입이 없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꼭두의 나뭇결 사이로 처절한 이야기들이 파고드는 과정은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 넣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물리적 통증을 수반한다. 그러나 타인의 참혹한 비화를 피 묻은 손으로 헤집듯 고스란히 품어내는 이 쓰라린 과정 끝에 비로소 화해와 구원이 찾아온다. 피나무 조각에서 시작되어 망자의 길동무가 된 꼭두의 운명은 결국 타인의 가장 은밀한 흉터에 기꺼이 닿으려는 맹렬한 애정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주혜가 빚어낸 독창적 서사, 경청이 지닌 구원의 힘

전작 <자두>와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미세한 파동을 예민하게 포착해 온 이주혜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한층 도약한 서사적 실험을 선보인다. 그는 화려한 수식어나 자극적인 전개 대신 단정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삶의 진실을 꿰뚫는다. 목수와 아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꼭두의 삼각 구도는 일견 기이해 보이지만, 오히려 인간이 슬픔을 극복하는 단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탁월한 장치로 작동한다. 꼭두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단 하나 타인의 비애를 밖으로 비워내지 않고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상처를 온전히 들어준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텅 빈 공간으로 내어주는 이타적인 헌신이자 숭고한 희생이다.


작가는 입 없는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현대 사회에서 점차 단절되어 가는 소통과 진정한 경청의 의미를 넌지시 묻는다. <꼭두, 듣다>는 과장된 수사 없이도 읽는 이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든다. 그것은 단조로운 수식어 남발을 피하고 서사의 밀도에 집중한 작가 고유의 문학적 뚝심 덕분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고 가만히 끌어안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하고도 다정한 위안을 건넨다. 누군가의 슬픔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행위 자체가 이미 훌륭한 치유의 시작임을 일깨우는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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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극장 ㅣ 미운오리 그림동화 27
더 캐빈 컴퍼니 지음, 봉봉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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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펼쳐줄 매력적인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릴게요. 다가오는 겨울 아이와 함께 읽기 참 좋은 가람어린이 & 미운오리그림동화 시리즈 신간 <크리스마스 극장>이랍니다. 일본 그림책 독자상을 수상한 작가 팀 더 캐빈 컴퍼니가 글을 쓰고 그렸으며 번역가 봉봉 님이 우리말로 옮겼어요.


신비롭고 흥미로운 네 가지 이야기 줄거리

책장을 넘기면 검붉은 커튼이 쳐진 무대 위로 귀여운 아기 천사가 등장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아기 천사예요. 오늘은 여러분을 위해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어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네 가지 이야기랍니다!"라는 대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지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네 편의 이야기가 차례로 무대에 등장하며 마치 실제 극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답니다.

첫 번째 이야기 '문어 산타'에서는 우리가 알던 산타 할아버지의 모습이 조금 달라요. 썰매를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바다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지요. 두 번째 '부르르 트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춥다며 오들오들 떠는 엉뚱한 상상을 담고 있어요. 세 번째 '반짝반짝 씨앗'에서는 하얀 토끼들이 눈 덮인 산에 빛나는 신비한 씨앗을 심는답니다. 마지막 '산타의 비밀'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텅 빈 자루의 비밀, 즉 별 조각과 구름 보푸라기를 모아가는 산타 할아버지의 밤하늘 여정을 그렸어요.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인상적인 장면

<크리스마스 극장>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가득해요. '문어 산타' 에피소드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루돌프의 말랑말랑한 코를 "뿌잇~" 하고 꼬집는 장면은 무척 익살스러워요. '부르르 트리'에서 트리가 "으으, 오늘은 왜 이렇게 춥지?" 하며 "에... 에... 에..." 재채기를 참는 모습도 사랑스럽죠. 하얀 토끼들이 "쑥쑥 자라라, 뿅뿅뿅!" 주문을 외우며 씨앗을 심을 때 과연 눈밭에서 어떤 거대한 선물이 자라날지 아이와 함께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상당하답니다. 게다가 화면을 가득 채운 다양한 소품들과 더불어 경쾌한 의성어, 의태어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찰진 읽는 맛을 한층 살려 주어요.


부모님과 아이에게 추천하는 이유

가장 돋보이는 점은 단연 기발한 창의성이에요. 잘 알려진 평범할 수 있는 겨울 이야기를 바닷속 산타, 추위를 타는 나무, 빛나는 씨앗 등으로 확장하여 아이들의 호기심을 쉴 새 없이 자극하죠. 더 캐빈 컴퍼니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질감이 살아있는 그림체는 마치 한 편의 짧은 연극을 연속해서 보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 줘요.

주변 엄마 아빠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당연하게 여겼던 사물이나 상황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답니다. 부모님 역시 아이와 다채로운 질문을 나누며 풍성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서 무척 유익해요. 길고 복잡한 글이 아니라 짧고 인상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유아들도 끝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어요. 올겨울 우리 아이의 머리맡에 포근하고 다정한 <크리스마스 극장>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올겨울 추천하는 더 캐빈 컴퍼니의 다른 그림책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겨울 시즌,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더 캐빈 컴퍼니의 다른 책들도 덧붙여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릇노릇 갓 구운 동물빵빵>을 추천해요. 반죽들이 스스로 오븐에 들어가 갓 구워진 동물 모양 빵으로 탄생하는 아기자기한 동화랍니다. 겨울 간식을 먹으며 이불 속에서 읽기에 참 좋아요. 또한 기발한 상상력으로 일본 그림책상 독자상을 수상한 <수상한 신호등> 역시 유익하답니다. 탈것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유쾌하게 풀어내어 외출이 잦은 연말연시, 우리 아이들의 안전 교육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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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감탱이가 아직 더 살겠다고
정성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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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신간 정성기 작가 에세이 <이 영감탱이가 아직 더 살겠다고>는 치열한 노년의 일상을 유쾌하고 시니컬한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11년간 치매 노모를 간병하며 삼시 세끼를 차려낸 생생한 기록을 담은 전작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로 이미 많은 독자에게 먹먹한 울림을 전한 바 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 임원으로 일했던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파트 경비원, 실버 택배, 벼룩시장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스스로 삶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 냈다.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밥을 짓고 자전거를 타며 하루를 꼼꼼히 기록하는 성실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가식 없는 언행과 꾸밈없는 생명력이 MZ 세대의 격한 공감을 얻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고단함 속에서도 단단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는 청년층부터 늙어감을 고민하는 중장년층 모두에게 적극 권할 만한 책이다.


스머프할배의 사랑방과 세대를 초월한 소통

저자 정성기를 세상과 연결해 준 핵심 고리는 네이버 블로그 '스머프할배의 사랑방'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2008년 손녀에게 남겨줄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이 공간은 어느덧 누적 방문자 수 500만 명을 돌파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5,000개가 넘는 포스트가 쌓였고 그 속에는 화려한 수사 대신 날것 그대로의 삶이 요동친다. 해가 떴는데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향해 호통을 치다가도 정작 본인의 굽은 등과 쑤시는 어깨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노인의 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숨김없는 감정 표현과 자기 객관화는 고약한 세상을 버텨내는 그만의 독창적인 무기다. 억지로 교훈을 주려 거들먹거리지 않고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챙겨 먹으며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능동적인 일상이 독자들에게 묘한 위로를 안긴다.


책 속 문장으로 엿보는 늙음의 핍진성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 노년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중간중간 그려진 김푸른 작가의 파스텔 톤 삽화는 친근함을 더한다. 1장 '더 살겠다고 운동하고 빨래하잖아'에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돋보인다. 새벽에 일어나 방구석에서 뒹굴면 찾아올 사람은 저승사자뿐이라 억지로 움직인다는 대목이나,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정신 차려 이제 넘어지면 즉사라고 되뇌는 늙은 마음의 소리는 서글프면서도 실소를 자아낸다. 낙엽을 보며 낭만을 외치는 것은 젊은 날의 치기일 뿐, 아파트 경비원으로서 빗자루질할 생각에 골머리를 앓는 장면에서는 노동하는 노인의 팍팍한 현실이 리얼하게 다가온다. 2장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와 3장 '어제는 잊고 내일 걱정 말고 오늘 제대로 살아'를 관통하는 정서 역시 통쾌하다. 비 오는 날 출근길에 말썽 부리는 몸뚱이를 탓하는 자신을 죄 없는 며느리 닦달하는 사흘 굶은 시어머니에 비유하는 문장은 번뜩이는 유머 감각의 정수를 보여준다.


낮은 자리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다짐

<이 영감탱이가 아직 더 살겠다고>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인간의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작가의 결연한 태도다. 정감 가는 푸근한 그림과 함께 배치된 저자의 다섯 가지 기도는 진득한 여운을 선사한다. 내 손으로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내 발로 이 땅에 서며 가족 안에서 은혜를 다시 깨닫고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겠다는 선언이다. 덧붙여 맑은 영혼으로 기도하며 낮은 자리에서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바로 세우겠다는 문장은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고 버텨낸 자만이 쓸 수 있는 진실한 고백이다. 요령 피우지 않고 매일 땀 흘리며 페달을 밟는 스머프할배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든든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악착같이 살아내는 생존기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 추천 이유

책의 말미에 수록된 '독자에게 전하는 편지'를 살피면 저자가 버텨온 험난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치매 어머니를 십일 년간 간병하며 얻은 두 가지 선물 즉 요리와 글쓰기는 단순한 여가를 넘어 생존을 위한 절실한 동아줄이었다. 고단한 아파트 경비 노동 중에도 짬짬이 메모하고 새벽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삶을 기록한 그 끈질긴 성실함은 핑계로 점철된 우리의 나태한 일상을 매섭게 꾸짖는다. 늘그막에 고생한다고 슬퍼하기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믿으며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스스로의 이름과 얼굴을 책임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저자의 고백은 벼락같은 자극을 준다. 밥 한 숟갈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다. 가끔은 궁상맞아 보여도 훗날 돌아보면 희로애락이 담긴 한 편의 멋진 시가 될 것이라는 통찰은 팍팍한 현실을 견디는 모든 이에게 다정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스머프할배가 부디 앞으로도 튼튼한 두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맑은 정신으로 기록하는 삶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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