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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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웠던 전장에는 꽃을 가지고 가야 하는 법이야."

"아이 버섯은 지혜롭습니다. 지혜가 곧 언어이기 때문이지요. 지혜는 몸이 아닌 목소리입니다."


남미 문학의 신경향을 이끌 작가로 손꼽히는 '브렌다 로사노'의 <마녀들>이 은행나무 '환상하는 여자들' 시리즈의 제2권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오악사카의 후예로서 치유자의 피가 흐르던 '팔로마'가 살해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팔로마는 가스파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출생한, 사포텍 문화권에서 제3의 성으로 인정받는 '무셰'이다.

일종의 주술적 언어를 통해 길흉화복을 점치고 미래를 예지하는 전통 무속인인 듯하다.


팔로마의 살인 사건을 취재하는 젊은 기자 '조에'와 팔로마의 사촌이자 후계자인 '펠리시아나'가 번갈아 등장하고 또는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자신 혹은 주위의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고, 위험에 처하는 장면이 연이어 묘사된다.


현대적인 도회지 멕시코시티와 호젓한 산골 마을 산펠리페에서 각각의 여성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딸에게 닥칠 위험을 예지하는 엄마의 기이한 능력 때문에 몇 번의 구사일생을 경험한 조에는 그 비결을 묻는다.

"여자들은 모두 자기 안에 마녀 같은 면을 조금은 품은 채로 태어난단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지."


여성들은 무법천지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비한 능력을 일부 지니고 태어난다. 그 필살기는 후천적으로 습득될 수도 있다. 허나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홀로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의 무사안녕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단단히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아야만 마녀사냥을 피할 수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고립되어 반사회적인 이단으로 취급받는 마녀들을 불태우기 위한 제단이 높이 솟아 있다. 활활 불타오르는 화형대를 목전에 두고 여성들은 공동체 의식을 굳게 다지는 한편, 각자의 언어적 능력을 발휘해 연대할 필요가 있다. 마술적인 힘과 집단의식이 깃든 언어는 지혜를 발화시키며, 이를 통해 이질적인 세계와 진영은 조화를 이루고 평안을 되찾을 수 있다. 세대를 넘은 치열한 투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때.. 생살이 타드는 고통이 멈추고 잿더미만 남은 전장에 검붉은 꽃무리를 수놓을 수 있는 것이다.


브렌다 로사노의 장편 소설 <마녀들>은 두 여성과 세계가 대립이 아닌, 언어적 치유와 연대를 통해 폭력의 상처를 회복하고 해소하는 이야기를 마술적인 필치로 그린다.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상처가 집단의 언어를 통해 회복되는 주술적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실 사회의 편견과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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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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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로마'는 화려하고 북적이는 대도시지만, 그 이면은 황량하고 혼탁한 데다 퇴색되어 가는 그림자가 기울었다. 그 도시에 머무르는 이들은 수많은 군중들에 둘러싸여 정처 없이 표류한다. 그들은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지만, 도시가 내뿜는 어둑한 그림자에 온몸이 물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절친이었다.




1973년 첫 출간 이후, 절판과 재출간을 거듭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으로 남은 컬트 소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출간되었다.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이어진 명성답게, 로마의 명소를 묘사한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문장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정교하기까지 하다. 커플의 애정 행위를 정밀 스케치한 문장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에로틱하게 들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밀라노에서 로마로 건너온 '레오'가 되어 핀초 언덕의 테라스, 캄포 데이 피오리의 쉼터, 움베르티노 지구 등 한여름 로마의 곳곳을 방랑하듯 거닐 수  있다. 레오는 완벽한 혼자가 아니었다. 로마 상류층에 속하는 어느 부부와 가까이 지냈고, 뜻이 맞아 함께 영화를 제작하려 한 절친 '그라지아노'도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그와 사랑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아리아나' 또한 나비처럼 그의 곁에 머물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번잡한 도시 안에서 무의미하고 공허한 나날을 지속하던 레오는 곁의 모든 이들을 관찰한다. 어떠한 분석이나 냉철한 비판 없이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끝 모를 고독의 중심으로 점차 끌려간다. 가혹한 운명은 무더운 도시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진심으로 교류하던 그라지아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레오는 도시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부정하면서 아리아나 곁에 머물려 했던 그는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헛된 허영심과 사치에 잠식당한 그녀는 결국 레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레오는 하이에나처럼 타인이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랑하는 애인을 독차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절감하며, 도시에서 버림받고 추방당한 모든 이들을 받아주는 푸른 '바다'를 향해 다가간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영원을 향해 나아갔다.

 



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대중들 사이에서 망각되지 않고 복간되는 데는 어떤 보편적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종 SNS로 촘촘히 연결된 인터넷/디지털 AI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레오가 느끼는 고독감과 허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관계는 이런 모순을 극대화하며, 무수한 팔로워에 둘러싸여 소외감과 외로움을 면치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량적인 숫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기간 고립되어 끝내 고독사할 처지에 몰리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도심의 이면에 깔린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진심 어린 사랑과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레오'들은 오늘날 대도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돛을 올리고 나아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이들.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존재 의미를 숙고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이들이 여러 도시에 남아있는 한, 이 책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보편성을 획득할 것이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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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감각 - 먹고 마시며 건너는 계절
이주연 지음 / 샘터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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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미식 칼럼니스트의 신작 <절기 감각: 먹고 마시며 건너는 계절>(샘터, 2026)은 기후 위기 매거진 <1.5°C>의 기획·편집을 맡았던 저자의 생태적 통찰과 십수 년간 매거진 등에서 에디터로 활약해 온 취재력이 빚어낸 미식 에세이다. 전작 <봄은 핑계고>(2024), 공저 <한국의 장> 등을 통해 식문화를 탐구해 온 저자는, 2014년 가로수길 전통주 바 '드슈'의 실패를 자양분 삼아 현재 구기동에서 영화 칼럼니스트 남편과 다이닝 '시네밋터블(Cinemeetable)'을 운영 중인 자신의 삶을 24절기의 순환 속에 유려하게 녹여냈다.

단순히 제철 음식을 찬양하는 것을 넘어.. 지구온난화와 푸드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우리가 상실해 가는 '오늘의 미각'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미식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구와의 공존을 고민하는 독자,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며 삶의 중심을 잡고 싶은 2040 세대에게 '다정한 미각의 나침반'으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다정한 미각이 품어낸 서늘한 경고: 이주연 <절기 감각> 리뷰

우리는 너무 쉽게 계절을 잊고 또 잃고 산다.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붉은 딸기를 베어 물고, 한여름에도 냉동 식재료로 식탁을 채운다. 풍요로움이 도리어 제철의 결핍을 낳는 역설적인 시대, 이주연 작가의 <절기 감각>은 무뎌진 우리의 미뢰를 흔들어 깨우는 다정한 죽비와도 같다. 서문에서 "절기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새로움의 감각"이라 답하는 작가는.. 책의 날개에 적힌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자급자족하지 않는 우리에게 절기는 변화하는 기후를 감각하게 하는 장치"라는 문장처럼, 낡은 유물로 여겨지던 24절기를 현대적인 리듬으로 재해석한다.


마산 진동면에서 구기동 식탁까지, 일상을 관통하는 맛의 연대기

작가가 절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거창한 담론이 아닌, 지극히 내밀하고 솔직한 일상의 에피소드에서 출발한다. 청명 편에서 등장하는 가족 여행담이 대표적이다. 각자의 취향이 달라 아슬아슬한 가족 여행 중,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뜻대로 마산 진동면의 '이층횟집'으로 향해 미더덕을 맛보는 장면은 평범한 우리네 가족사진을 보는 듯한 짙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군인 아파트 놀이터에서 구조해 안방의 호랑이처럼 모시고 산다는 반려묘 '구니니'와 남편의 엉뚱함이 교차하며 에세이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빛을 발한다.

또한, 식재료를 바라보는 저자의 유연한 태도는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소만 편에서는 사찰음식에서 배운 '오이 된장국'이라는 다소 낯선 메뉴를 소개하며, 최근 <흑백요리사 2>에서 화제가 된 임성근 셰프의 오이 라면까지 끌어와 익숙한 식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반면 곡우 편에서는 친한 선배의 출장지 숙소에서 주인이 끊임없이 내어주는 뜨거운 보이차를 차마 거절하지 못해 사약 받듯 마시거나, 소서 편에서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맥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위경련으로 고생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독자와의 친밀한 거리를 확보한다.


획일화된 식탁 위로 번진 서늘한 생태적 경고

가을과 겨울로 접어들며 작가의 시선은 개인의 식탁을 넘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생태계와 역사로 깊고 넓게 확장된다. 특히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식탁 위 생태계의 획일화를 꼬집는 대목은 뼈아프다. 샤인머스캣의 폭발적인 유행으로 농부들이 기존 포도나무를 뽑아내면서 머루나 켐벨 같은 품종이 사라지고 오히려 더 비싸진 얄궂은 현실을 짚어낸다.

나아가 겨울철 별미로 꼽히는 방어 양식 이면에 숨겨진 환경 오염(사료 낭비와 배출 오물 등)을 지적하는 시선은 매섭다. 작가는 무비판적인 방어 소비 대신, 비슷한 시기에 살이 오르는 자연산 삼치를 제안한다. 입맛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구에 덜 무거운 선택지가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18년 동안 기우제를 올리며 가뭄을 제 탓으로 돌렸던 조선 태종의 일화(백로 편)를 통해 쌀이 흔해진 현대 사회의 역설을 꼬집고, 수온 상승으로 금값이 된 개불(동지 편)이나 공장식 사육으로 계절성을 상실한 오리고기(한로 편)를 다루는 솜씨는 기후 위기를 당장 내 입에 들어오는 익숙한 식재료의 부재로 치환해 내며 우리의 피부에 서늘하게 와닿는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오늘'의 익숙한 감각..


"우리는 늘 새로운 맛에 설레지만, 결국 다시 익숙한 맛으로 돌아온다."


<절기 감각>을 관통하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춘분에 푸이퓌메 와인을 마시고 소서에 테킬라를 들이켜는 자신을 향해, 하늘나라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이 "프랑스인도 아닌데, 제법 괜찮은 사람이군"이라 말해주길 바란다는 작가의 넉살은 결코 가볍지 않다. 24절기의 순환이란 결국 멀어짐과 돌아옴 사이에서 나만의 미각적 취향과 기억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한의 삼치회 촬영 후 식탐을 부리다 공무원과 마주친 어색한 순간마저도 유쾌하게 기록한 이 책은, 혀끝으로 읽어 내려가는 훌륭한 미각의 연대기이자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숨통을 트여주는 작은 휴식처다. "절기를 핑계 삼아 살아간다"라는 작가의 다정한 기록을 덮고 나면, 당장 오늘 저녁 김밥 한 줄을 베어 물더라도 그 안의 오미를 짚어보게 되고, 식탁 위에 오른 작은 제철 채소 하나에도 애틋한 눈길을 보내게 될 테니 말이다. 잃어버린 미각과 계절을 되찾아주는 완벽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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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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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서사 역량을 증명해 온 미우라 시온이 일상과 독서, 여행의 면면을 유쾌하게 담아낸 신간 에세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가 시공사를 통해 2026년 7월 출간되었다. 1976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저자는 2000년 자신의 구직 활동을 바탕으로 집필한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로 데뷔했다. 이후 2006년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상을, 2012년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거머쥐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공히 인정받은 거장이다. 2015년 <그 집에 사는 네 여자>로 오다사쿠노스케상, 2018년 <노노하나 통신>으로 가와이하야오 이야기상, 2019년 <사랑 없는 세계>로 일본 식물학회 특별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흔들림 없는 작품성을 입증했다.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가득한 이번 신작은 김은경 번역가의 손을 거쳐 국내 독자들을 만난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여러 잡지와 신문에 연재했던 단발성 작품들을 한데 모은 이 책은 코로나 시기를 전후하여 겪은 평범한 생활 속 자잘한 기쁨과 슬픔, 활자 속에서 길어 올리는 사색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보여 준다. 한수희 작가가 추천사에서 "침대 옆에 두고 친구와 대화하듯 매일 밤 조금씩 읽고 싶은 책"이라고 평했듯, 지친 현대인에게 따뜻한 위안을 전하는 도서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일상, 여행, 독서, 삶의 다채로운 단면들을 세밀히 포착한다. 1장 '아름다움과 사랑은 곳곳에 스며 있다'와 5장 '너무도 소소한 행복과 불행'에서는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저자가 동네와 집 안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풍경을 관찰하는 따스한 시선이 돋보인다. 베란다 창가에 파키라와 미니 장미를 내놓고 기르면서 식물들이 '이거 위험한 인간한테 팔려 왔네'라고 탄식할지도 모른다며 자조하는 '이름 없는 친구' 에피소드는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든다. '박정한 봄의 싸움'에서는 화분에 심은 딸기를 두고 까마귀, 비둘기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커튼 틈새로 망을 보며 새들을 쫓아내고 기어이 자그마한 초록 알맹이를 지켜내는 저자의 끈기가 흥미롭다. '고양이 네트워크'에서는 길고양이의 접근을 막으려고 창가에 물 담은 페트병을 잔뜩 늘어놓은 도테라 차림의 여자와 그 집 화장실에 볼일을 보며 앙심을 품는 고양이의 팽팽한 신경전을 한 편의 시트콤처럼 묘사한다.


2장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과 4장 '걱정스러울 때나 여행할 때나'에서는 일본 소도시를 유랑하며 겪는 기상천외한 일화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시가현 비와호와 지쿠부섬을 방문하여 호콘지 관음당에서 참배하고, 깎아지른 비탈에서 도리를 향해 질그릇 접시를 던지며 압박감에 패배하는 장면은 시원한 웃음을 선사한다. 시즈오카현 택시 기사와의 찰진 대화를 다룬 '후지산 사랑'에서는 다자이 오사무가 후지산을 가리켜 '저리 친한 산'이라 칭한 대목을 인용한다(295p). 매일 명산을 마주하는 현지인들이 아름다운 자연에 몰래 가전제품이나 쓰레기를 가득 채운 교복 바지 등을 버리는 얌체족들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를 실감 나게 전한다. '즉신불 순회 여행'에서는 이른바 '디자이너스 료칸'의 지나치게 세련된 수도꼭지 작동법을 몰라 홀딱 벗은 채 추위에 덜덜 떨며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을 묘사해 폭소를 자아낸다. 또한 컴퓨터 작업으로 뭉친 몸을 이끌고 대상포진을 의심하다가 마사지 숍을 전전하는 '로보캅 재생' 에피소드는 중년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거창한 철학 대신 평범한 나날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작품 전반에서 밝게 빛난다.


3장 '활자의 늪에서 한숨 돌리기'는 탁월한 애서가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날이 추워질 무렵 하야시 노조무의 <해석 겐지모노가타리>를 욕조 안에서 펼쳐 들고, 기왕 뜨거운 물을 채웠으니 되도록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겠다는 가난뱅이 근성을 발휘하는 모습이 몹시 정겹다. 다양한 문헌 속 문장을 기발하게 인용하는 방식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단숨에 배가시킨다. 단조로운 일과에 지쳐 확실한 기분 전환이 필요한 사람이나 글쓰기 영감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 더없이 적합하다. 책의 뒤표지에 적힌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내일 날씨는 좋겠지?' 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무엇을 위한 날씨 점이었던가. 심장 고동이 멎을 때까지, 이 정도로 속 편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실수가 있더라도,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별달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라는 문장은 이 에세이를 관통하는 든든한 메시지다.


미우라 시온 특유의 무심하게 툭 던지는 듯하면서도 다정하고 통통 튀는 문체는 읽는 이의 마음에 진한 여운과 잔잔한 파동을 남긴다.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생활 곳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찰나를 예리하게 낚아채는 작가의 감상이 든든한 위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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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신세계 - 동물이 가르쳐준 인간의 12가지 경이로운 감각
재키 히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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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신간 <감각의 신세계>는 출간과 동시에 생명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과학 도서 시장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철저한 문헌 고증과 전 세계 학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탄생한 이 저작은 저자 재키 히긴스가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축적한 시청각적 스토리텔링 기법이 텍스트로 치환된 탁월한 결과물이다. 복잡한 신경과학 기제를 다루면서도 전개 속도가 빠르고 묘사가 시각적이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동물들의 기이한 지각 능력을 빌려 역설적으로 인간 내면에 숨겨진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전문적인 생물학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부터 뇌과학과 진화론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지식인까지.. 다차원적인 감각 확장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강력히 권할 만한 교양서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연구실을 거친 재키 히긴스는 지난 20여 년간 영국 BBC 채널 4,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채널 등에서 <호라이즌>을 비롯한 다수의 저명한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온 베테랑 제작자다. 그의 첫 저서인 <감각의 신세계>는 출간 직후 영미권 과학계와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여러 매체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저자는 오랜 시간 카메라 렌즈 너머로 관찰해 온 동물들의 생태를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굳어져 온 인간의 '오감'이라는 한정된 틀을 산산조각 낸다. 번역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색맹의 섬> 등 저명한 과학 도서를 우리말로 옮겨 온 이민아 번역가가 맡아 가독성을 높였으며,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과 김정호 야생동물 수의사가 이 책이 선사하는 통찰을 추천하며 신뢰도를 더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원과 숨겨진 잠재력에 호기심을 품은 모든 이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지적 안내서로 부족함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를 깬 열두 가지 감각의 지도

우리는 흔히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만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책은 서문에서부터 라틴어 '센티레(sentire)'에 어원을 둔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s)'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며 철학자 대니얼 데닛과 T.H. 헉슬리의 통찰을 빌려온다. 저자는 공작사마귀새우부터 오리너구리까지 총 열두 종의 동물을 각 장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중요한 점은 이 동물들의 초감각을 나열하며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거울삼아 인간의 신경계 심연에 잠들어 있는 다채로운 감각적 역량을 치밀하게 추적한다는 사실이다. 균형감각, 시간감각, 방향감각, 욕망과 고통을 인지하는 감각 등 책이 제시하는 열두 가지 범주는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갯가재와 귀신고기가 일깨우는 시각의 재발견

시선을 끄는 대목은 빛과 색을 다루는 1장과 2장의 서술이다. 1장에서 저자는 열두 개의 광수용체를 지닌 공작사마귀새우를 통해 인간 색각의 비밀을 파헤친다. 19세기 말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레일리 남작 존 윌리엄 스트럿의 적록색맹 연구를 시작으로 네덜란드의 H.L. 더프리스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가브리엘 조던에 이르는 과학사의 흐름을 짚어낸다. 이를 통해 정상적인 세 개의 원뿔세포를 넘어 네 가지 유형의 원뿔세포를 지녀 1억 개의 색을 구분할지도 모르는 인간 '사색형색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심해에 서식하는 네눈박이귀신고기를 매개로 인간의 야간 시력을 재조명한다. 1934년 8월, 윌리엄 비비와 오티스 바턴이 바티스피어라는 초보적인 잠수정을 타고 버뮤다 인근 대서양 800미터 심해로 하강했던 역사적인 일화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박한 광자를 포착하기 위해 거울과 같은 반사 망막을 진화시킨 귀신고기의 생존 전략은 경이롭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74년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발표한 에세이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인용하며,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이 과학적 사실과 결합할 때 비로소 인식의 확장이 일어남을 증명한다.


올빼미의 침묵과 두더지의 코가 증명하는 감각의 다면성

시각 외의 감각을 다루는 장들도 흥미로운 지적 자극을 선사한다. 3장의 큰회색올빼미는 인간이 청각을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돌아보게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나이젤 피크 교수의 비행 소음 연구에 따르면 큰회색올빼미 깃털 구조는 난기류를 차단하며, 안면의 파라볼라 안테나 구조와 비대칭 귀를 활용해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의 3차원 근원지를 정확히 파악한다. 조류학자 팀 버케이드가 찬사한 이 입체 음향 탐지 능력은 1910년 헬렌 켈러가 시각장애보다 청각장애의 고충이 더 크다고 호소했던 편지 내용과 맞물려 듣는다는 행위의 본질을 일깨운다.

4장의 별코두더지는 촉각이 지닌 섬세한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시사한다. 밴더빌트 대학교 켄 카타니아의 관찰 결과, 별코두더지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수중에서 기포를 뿜어내며 냄새 분자를 흡수하고 22개의 살덩어리 촉수로 대상을 인지한다. 신경학자 폴 바키리타와 파스쿠알레오네의 시각피질 공간 인지 이론이 증명하듯, 이 두더지의 코는 눈이 수행할 법한 역할을 촉각으로 대체하며 자연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6장의 골리앗메기와 8장의 큰공작나방 에피소드가 더해진다. 탐험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브라질 아마존에서 마주했던 골리앗메기는 콧구멍 옆과 턱 위아래로 뻗은 수염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탁한 물속의 맛을 온몸으로 감지한다. 장 앙리 파브르가 눈앞에서 목격하고 노벨상 수상자 아돌프 부테난트가 화학 물질 규명에 나섰던 큰공작나방의 페로몬 수용 능력은 후각이 단순한 냄새를 넘어 생명체의 열정과 이끌림을 지배함을 입증한다.

이어지는 10장에서는 이스트테네시 주립대 토머스 존스 연구실의 먼지거미가 등장한다. 23시간에서 25시간을 오가는 변덕스러운 생체 주기를 지닌 이 거미는, 1930년대 생물물리학자 르콩트 뒤 누이가 고민했던 객관적 시간의 본질과 인간 내면에 각인된 시간감각을 묻는다. 

또한 12장에서 배수관을 자유자재로 빠져나가는 참문어의 기상천외한 탈출 일화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베니 호크너의 연체 로봇(옥토봇) 연구는 뼈 없는 동물의 유연함을 통해 인간 고유의 몸 감각을 새롭게 정의한다. 각 동물의 특이한 생태적 특징은 인간의 해부학과 신경망을 설명하기 위한 은유이자 실증적 근거로 충실히 기능한다.


움벨트의 확장, 일상에서 12감각을 깨우는 방법

그렇다면 지각 있는 존재로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경이를 발견해야 할까?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의 지적처럼..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감각이 허락하는 '움벨트(Umwelt, 환경세계)' 안에서만 현실을 인식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상을 다채롭게 물들이는 해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5감의 좁은 한계를 스스로 허무는 데 있다. 시계를 보지 않고 오직 내면의 생체 리듬에 기대어 흐르는 시간을 가늠해 보거나, 낯선 길에서 내비게이션을 끄고 원초적인 방향감각을 동원해 목적지를 유추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눈을 감은 채 피부에 닿는 공기의 미세한 파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거나,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의 냄새에서 특정한 감정과 기억을 길어 올리는 훈련도 좋다. 시각과 청각에 압도된 현대 문명 속에서 잠들어 있던 나머지 감각의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울 때, 단조롭던 일상은 12차원의 눈부신 신세계로 탈바꿈한다.


경이로운 연결을 향한 과학적 사유

<감각의 신세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생물학적 호기심으로 시작된 여정이 어느새 인간 뇌과학과 인지 철학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동물들의 초감각은 우리와 무관한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의 기원과 한계를 비춰주는 명징한 프리즘이다. 저자 재키 히긴스는 다큐멘터리 감독 특유의 생생한 묘사력과 과학자의 엄밀한 논리를 직조하여 생명의 신비를 텍스트로 구현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감각이 무뎌졌다고 느낄 때.. 이 책은 잊고 있던 내면의 다채로운 창을 다시 열도록 유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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