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신세계 - 동물이 가르쳐준 인간의 12가지 경이로운 감각
재키 히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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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신간 <감각의 신세계>는 출간과 동시에 생명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과학 도서 시장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철저한 문헌 고증과 전 세계 학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탄생한 이 저작은 저자 재키 히긴스가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축적한 시청각적 스토리텔링 기법이 텍스트로 치환된 탁월한 결과물이다. 복잡한 신경과학 기제를 다루면서도 전개 속도가 빠르고 묘사가 시각적이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동물들의 기이한 지각 능력을 빌려 역설적으로 인간 내면에 숨겨진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집필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전문적인 생물학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부터 뇌과학과 진화론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지식인까지.. 다차원적인 감각 확장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강력히 권할 만한 교양서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연구실을 거친 재키 히긴스는 지난 20여 년간 영국 BBC 채널 4,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스커버리 채널 등에서 <호라이즌>을 비롯한 다수의 저명한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온 베테랑 제작자다. 그의 첫 저서인 <감각의 신세계>는 출간 직후 영미권 과학계와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여러 매체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었다. 저자는 오랜 시간 카메라 렌즈 너머로 관찰해 온 동물들의 생태를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굳어져 온 인간의 '오감'이라는 한정된 틀을 산산조각 낸다. 번역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색맹의 섬> 등 저명한 과학 도서를 우리말로 옮겨 온 이민아 번역가가 맡아 가독성을 높였으며,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과 김정호 야생동물 수의사가 이 책이 선사하는 통찰을 추천하며 신뢰도를 더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원과 숨겨진 잠재력에 호기심을 품은 모든 이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지적 안내서로 부족함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를 깬 열두 가지 감각의 지도

우리는 흔히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만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책은 서문에서부터 라틴어 '센티레(sentire)'에 어원을 둔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s)'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며 철학자 대니얼 데닛과 T.H. 헉슬리의 통찰을 빌려온다. 저자는 공작사마귀새우부터 오리너구리까지 총 열두 종의 동물을 각 장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중요한 점은 이 동물들의 초감각을 나열하며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거울삼아 인간의 신경계 심연에 잠들어 있는 다채로운 감각적 역량을 치밀하게 추적한다는 사실이다. 균형감각, 시간감각, 방향감각, 욕망과 고통을 인지하는 감각 등 책이 제시하는 열두 가지 범주는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갯가재와 귀신고기가 일깨우는 시각의 재발견

시선을 끄는 대목은 빛과 색을 다루는 1장과 2장의 서술이다. 1장에서 저자는 열두 개의 광수용체를 지닌 공작사마귀새우를 통해 인간 색각의 비밀을 파헤친다. 19세기 말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레일리 남작 존 윌리엄 스트럿의 적록색맹 연구를 시작으로 네덜란드의 H.L. 더프리스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가브리엘 조던에 이르는 과학사의 흐름을 짚어낸다. 이를 통해 정상적인 세 개의 원뿔세포를 넘어 네 가지 유형의 원뿔세포를 지녀 1억 개의 색을 구분할지도 모르는 인간 '사색형색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심해에 서식하는 네눈박이귀신고기를 매개로 인간의 야간 시력을 재조명한다. 1934년 8월, 윌리엄 비비와 오티스 바턴이 바티스피어라는 초보적인 잠수정을 타고 버뮤다 인근 대서양 800미터 심해로 하강했던 역사적인 일화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박한 광자를 포착하기 위해 거울과 같은 반사 망막을 진화시킨 귀신고기의 생존 전략은 경이롭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74년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이 발표한 에세이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인용하며,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이 과학적 사실과 결합할 때 비로소 인식의 확장이 일어남을 증명한다.


올빼미의 침묵과 두더지의 코가 증명하는 감각의 다면성

시각 외의 감각을 다루는 장들도 흥미로운 지적 자극을 선사한다. 3장의 큰회색올빼미는 인간이 청각을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돌아보게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나이젤 피크 교수의 비행 소음 연구에 따르면 큰회색올빼미 깃털 구조는 난기류를 차단하며, 안면의 파라볼라 안테나 구조와 비대칭 귀를 활용해 쥐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의 3차원 근원지를 정확히 파악한다. 조류학자 팀 버케이드가 찬사한 이 입체 음향 탐지 능력은 1910년 헬렌 켈러가 시각장애보다 청각장애의 고충이 더 크다고 호소했던 편지 내용과 맞물려 듣는다는 행위의 본질을 일깨운다.

4장의 별코두더지는 촉각이 지닌 섬세한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시사한다. 밴더빌트 대학교 켄 카타니아의 관찰 결과, 별코두더지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수중에서 기포를 뿜어내며 냄새 분자를 흡수하고 22개의 살덩어리 촉수로 대상을 인지한다. 신경학자 폴 바키리타와 파스쿠알레오네의 시각피질 공간 인지 이론이 증명하듯, 이 두더지의 코는 눈이 수행할 법한 역할을 촉각으로 대체하며 자연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6장의 골리앗메기와 8장의 큰공작나방 에피소드가 더해진다. 탐험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브라질 아마존에서 마주했던 골리앗메기는 콧구멍 옆과 턱 위아래로 뻗은 수염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탁한 물속의 맛을 온몸으로 감지한다. 장 앙리 파브르가 눈앞에서 목격하고 노벨상 수상자 아돌프 부테난트가 화학 물질 규명에 나섰던 큰공작나방의 페로몬 수용 능력은 후각이 단순한 냄새를 넘어 생명체의 열정과 이끌림을 지배함을 입증한다.

이어지는 10장에서는 이스트테네시 주립대 토머스 존스 연구실의 먼지거미가 등장한다. 23시간에서 25시간을 오가는 변덕스러운 생체 주기를 지닌 이 거미는, 1930년대 생물물리학자 르콩트 뒤 누이가 고민했던 객관적 시간의 본질과 인간 내면에 각인된 시간감각을 묻는다. 

또한 12장에서 배수관을 자유자재로 빠져나가는 참문어의 기상천외한 탈출 일화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베니 호크너의 연체 로봇(옥토봇) 연구는 뼈 없는 동물의 유연함을 통해 인간 고유의 몸 감각을 새롭게 정의한다. 각 동물의 특이한 생태적 특징은 인간의 해부학과 신경망을 설명하기 위한 은유이자 실증적 근거로 충실히 기능한다.


움벨트의 확장, 일상에서 12감각을 깨우는 방법

그렇다면 지각 있는 존재로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경이를 발견해야 할까?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의 지적처럼..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감각이 허락하는 '움벨트(Umwelt, 환경세계)' 안에서만 현실을 인식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일상을 다채롭게 물들이는 해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5감의 좁은 한계를 스스로 허무는 데 있다. 시계를 보지 않고 오직 내면의 생체 리듬에 기대어 흐르는 시간을 가늠해 보거나, 낯선 길에서 내비게이션을 끄고 원초적인 방향감각을 동원해 목적지를 유추해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눈을 감은 채 피부에 닿는 공기의 미세한 파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거나,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의 냄새에서 특정한 감정과 기억을 길어 올리는 훈련도 좋다. 시각과 청각에 압도된 현대 문명 속에서 잠들어 있던 나머지 감각의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울 때, 단조롭던 일상은 12차원의 눈부신 신세계로 탈바꿈한다.


경이로운 연결을 향한 과학적 사유

<감각의 신세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생물학적 호기심으로 시작된 여정이 어느새 인간 뇌과학과 인지 철학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동물들의 초감각은 우리와 무관한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의 기원과 한계를 비춰주는 명징한 프리즘이다. 저자 재키 히긴스는 다큐멘터리 감독 특유의 생생한 묘사력과 과학자의 엄밀한 논리를 직조하여 생명의 신비를 텍스트로 구현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감각이 무뎌졌다고 느낄 때.. 이 책은 잊고 있던 내면의 다채로운 창을 다시 열도록 유도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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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이 마을 2 - 쥐방울과 사고뭉치 버스터 책꿈 12
캐서린 애플게이트.제니퍼 촐덴코 지음, 월리스 웨스트 그림,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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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넘치는 댕댕이 마을의 동물 친구들

가람어린이 신간 <댕댕이 마을 2: 쥐방울과 사고뭉치 버스터>에 등장하는 생쥐 쥐방울은 유기견 보호소인 댕댕이 마을 지하에 숨어 사는 아주 영특한 생쥐랍니다. 책 읽기를 몹시 즐기며 손짓 발짓으로 강아지들과 대화를 나누는 놀라운 재주가 있어요. 이번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버스터는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골든 리트리버랍니다. 이전 주인의 명품 자동차 좌석을 물어뜯거나 웨딩 케이크를 엉망으로 만드는 등 엄청난 사고를 치는 바람에 늘 보호소로 돌아온다는.. 하지만 쥐방울은 버스터의 순수하고 착한 본모습을 발견하고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답니다. 이외에도 몸에 연기 경보기가 달린 로봇 개 스모키, 겁 많은 생쥐 누나 쿠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빨간 자물쇠 우리에 갇혀 있지만 사실은 한없이 유순한 스튜이 등 개성 가득한 친구들이 등장해요!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줄거리와 유쾌한 에피소드

가장 뇌리에 박히는 대목은 버스터가 역대급 말썽을 부리는 웨딩 케이크 에피소드랍니다. 10단짜리 거대한 케이크를 참지 못하고 먹어 치운 뒤 신부의 드레스에 토를 해버린 사건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아이들의 폭소를 자아내는 명장면이에요. 겉으로는 구제 불능 말썽쟁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버스터는 그저 포근한 보살핌을 원했던 평범한 반려견이랍니다. 독서 짝꿍 행사를 통해 만난 마음씨 고운 소녀 산비가 버스터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끝내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가슴을 먹먹하게 해요. 또한 억울하게 갇혀 지내는 스튜이를 위해 쪼그만 쥐방울이 야간 경비원의 열쇠를 찾으려 밤을 지새우는 모습도 감동적이에요.


가슴이 찡해지는 기적 같은 결말 & 입양 이야기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유기견 친구들이 참된 안식처를 찾아가는 과정이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들어요. 위협적인 맹견으로 오해받던 스튜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껴 주는 메리 앨리스 할머니의 품에 안기게 되고, 깡통 로봇 스모키 역시 마음을 연 오언 곁에서 활기찬 삶을 시작해요. 특히 할머니가 명작 동화 <스튜어트 리틀>을 낭독할 때 스튜이가 곁을 묵묵히 지키는 장면은 평화롭답니다.

무엇보다 홀로 남은 파양 전문 버스터가 몰리나리 선생님과 맺어지는 대목은 벅찬 희열을 안겨주어요. 인간을 겁내는 작은 생쥐 쥐방울이 선생님께 용기를 내어 훌륭한 독서 짝꿍이 될 것이라는 진심 어린 쪽지를 전달하는 작전을 펼친 덕분이지요. 산비와 오언도 선생님을 도와 버스터를 더욱 가까이서 돌볼 수 있게 된 결말은 상처받은 영혼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는 눈물겨운 기적과도 같아요!


사랑스러운 반려견을 올바르게 훈련시키는 비법..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가족이 되기 위해 꼭 알아두어야 할 훈련 비법이 수록되어 있어요. 먼저 개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강아지가 몸짓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답니다. 또한 씹을 수 있는 장난감이나 포근한 방석을 마련하여 강아지가 살기 편안하고 쾌적한 집을 만들어 주어야 해요.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방이 막힌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목줄이나 간식 같은 필수 준비물을 챙기는 등 보호자가 먼저 철저히 준비를 마쳐야 한답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억지로 꾸짖기보다는 넉넉한 보상과 아낌없는 칭찬을 통해 훈련을 즐거운 놀이처럼 느끼게 해주는 방식이 훌륭한 효과를 발휘해요. 개는 습관의 동물이므로 매일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편이 좋아요. 구체적인 훈련 비법은 책 말미에 수록된 가이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자녀와 나란히 읽으며 나눈 생각과 추천 이유

가람어린이 신간 <댕댕이 마을 2: 쥐방울과 사고뭉치 버스터>는 단순히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넘어 겉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어요. 말썽꾼으로 낙인찍힌 버스터나 사납다고 기피 당하던 스튜이 모두 내면에는 따사로운 온기를 품고 있답니다. 뉴베리상을 수상한 두 작가 캐서린 애플게이트와 제니퍼 촐덴코가 들려주는 서사는 탄탄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전개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어요.

생명을 아끼는 어린이들이라면 단숨에 푹 빠져서 읽을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창작 동화랍니다. 주변의 학부모님들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지인들에게 방학 동안 꼭 읽어볼 만한 도서로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어요. 아이들과 마주 앉아 책을 덮고 나서 숨겨진 진심을 들여다보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본다면 뜻깊은 독서 시간이 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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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나무 저택의 어린 할머니들 마법 책장 6
도미야스 요코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고향옥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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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아이들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판타지 동화를 하나 소개하려고 해요.

바로 가람어린이에서 출간된 도미야스 요코 작가 & 사타케 미호 그림 작가의 신간 <백합나무 저택의 어린 할머니들>이랍니다. 표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책은 시간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모험과 뭉클한 우정을 담고 있어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비밀스러운 저택의 마법

백여 년 전 지어진 근사한 백합나무 저택은 현재 여러 노인이 함께 살아가는 작은 양로원이랍니다. 이곳에는 사이좋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어울려 살고 있어요. 꽃지, 금실, 두심, 명이 할머니, 큰 바우, 작은 바우가 그 주인공이지요. 어느 봄날 꽃지 할머니가 어릴 적 부르던 공놀이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리자 저택 현관에 있던 해묵은 괘종시계 바늘이 미친 듯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해요. 시계가 정확히 5시에 멈춘 순간 이들은 무려 77년 전인 1941년 8월 3일로 돌아가 훌쩍 어려진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 모습을 하게 된답니다.


흥미진진한 줄거리와 숨겨진 요괴 이야기

갑작스러운 시간 여행에 당황한 것도 잠시.. 아이들은 저택이 품고 있는 오랜 비밀에 다가서게 돼요. 꽃지는 과거 이곳에서 단짝 친구 애월이와 숨바꼭질을 하던 중 벌어졌던 기이한 일들을 떠올려요. 아무도 없는 방에서 문이 닫히고 낯선 발소리가 들렸던 경험은 사실 집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보이지 않는 요괴 아이의 장난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집에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는 이 특별한 존재와 아이들이 얽힌 과거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를 더해간답니다!


잊을 수 없는 77년 전의 약속..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공놀이 노래를 매개로 시공간을 초월한 약속이 밝혀지는 장면이에요. 하나에 매화, 둘엔 개나리, 셋에는 벚꽃, 넷에는 철쭉, 다섯엔 진달래로 이어지는 그 평범한 노래가 사실은 7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게 만든 마법의 열쇠였지요. 할머니들이 회춘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노래 가사 속에 숨겨져 있었답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잊지 않고 노래를 불러준 꽃지를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 여름날로 시간을 되돌려 놓은 수호신의 마음이 무척 뭉클하게 다가와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기 좋은 따뜻한 동화책

가람어린이 신간 <백합나무 저택의 어린 할머니들>은 판타지적인 상상력과 가슴 포근해지는 우정이 멋지게 어우러진 동화책이에요. 처음에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긴장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지만 결말에 다다르면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낯선 시간 여행의 짜릿함을 선사하고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유년 시절의 순수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랍니다. 다가오는 주말에 아이와 나란히 앉아 이 신비로운 저택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시기를 적극 권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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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아픈 마침표를 위하여 - 좋은 안녕을 위한 어느 이혼전문판사의 마음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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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신간, 정현숙 부장판사 에세이 <덜 아픈 마침표를 위하여>는 베스트셀러였던 전작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에 이어 관계의 종결을 마주한 인간의 민낯을 파고든다. 저자는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5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임관하여 현재 부산지방법원에서 근무 중인 22년 차 법관이다. 동시에 22년 차 아내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오며 2017년부터 가사 전문법관으로 수많은 이혼, 양육, 가족 분쟁을 다루어왔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해 <세바시 인생질문>, <어쩌다 어른> 등에 출연하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 왔다.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이혼을 단순한 서류상의 결별이 아닌 한 인간의 세계가 재편되는 치열한 과정으로 조명한다. 파탄에 이른 부부뿐만 아니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짊어진 모든 어른에게 권할 만한 관계 성찰서라 할 수 있다.


타인의 불행을 섣부르게 소비하지 않고 객관적인 법의 잣대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나약함을 보듬는 저자 특유의 온화한 문체가 독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다수의 인터뷰에서 판결문을 쓰는 일 못지않게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도록 돕는 것이 법관의 역할이라고 역설한 저자의 철학은 이 책의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부부 갈등으로 밤잠을 설치는 성인 남녀는 물론 인간관계의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지표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도서다.


어쩌다 일어나는 이혼은 없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세상에 어쩌다 일어나는 이혼은 단 한 건도 없으며 찰나의 결단처럼 보여도 마침내라는 긴 시간의 숙고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1장 왜 이혼은 이렇게 아픈가'를 읽다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부부관계를 가리켜 본래 비혈연 관계로 시작하지만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 그 어떤 핏줄보다 진한 연대로 밀착된다고 통찰한다. 그렇기에 이혼은 단순한 계약 해지가 아닌 부부관계의 사망과 같으며 죽음과 맞먹는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법정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된 남녀의 심리를 그 어떤 심리학 서적보다 냉정하게 해부한다.


법이 포착하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

인상적인 대목은 '2장 법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담긴 날것 그대로의 에피소드들이다. 이혼 법정에 선 인간들의 변명과 기만은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경찰이 출동한 현장에서 아내의 내연남과 남편이 대면해 실랑이를 벌이는 녹취록 원문은 관계의 파탄이 얼마나 참담한 촌극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간통죄 폐지 이후 벌어지는 적반하장의 사례는 독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유책 배우자인 남편이 이혼소송 항소심이 진행 중인 와중에 버젓이 다른 여자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본처와 자식들에게 돌아갈 몫을 뺏기 위해 수백억 원대의 자산을 증여해 버린 사건은 현행법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만든다. 법은 양육비를 산정하고 재산을 분할하는 산술적인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판사의 무력감 속에서 오히려 인간성 회복을 향한 지독한 갈망이 묻어난다.


단절된 관계 속 아이의 시간은 계속된다

이 책의 백미는 단연 4장 아이의 시간에 있다. 저자는 부모의 혼인 관계는 깨지더라도 아이의 삶은 온전히 지속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자녀가 셋이나 있는 부부의 이혼 재판에서 아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충격을 아이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남편에게 제발 부부 상담을 받아보라며 애원하다시피 부탁하는 판사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이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고립감이라는 지적은 부모라는 이름의 막중한 책임을 다시금 가늠하게 만든다. 부모의 갈등 한가운데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충성갈등의 늪에 빠진 아이들의 사연을 읽을 때는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되돌릴 수 없는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책임

책을 읽을수록 어른들의 관계는 끝나지만 아이의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삶은 계속된다는 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찌른다. 부모의 이혼 소송 중 양육자 지정을 위한 가사조사 과정에서 5살 딸 지연이가 이혼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헤어지는 거 엄마 아빠가 슬퍼할 거 같아요(191쪽)라며 도리어 어른을 위로하다 눈물을 쏟는 장면은 비통하기 그지없다. 또한 시야협착증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아픈 아이의 막대한 치료비를 두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는 부모의 사연은 이기심이 아이에게 얼마나 잔혹한 흉터로 남는지를 보여준다. 생모가 교도소에 수감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사진과 서신으로 면접교섭을 허용하는 법원의 치열한 고뇌(121쪽)를 마주하다 보면 부모라는 이름이 지닌 책임의 무게를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관계의 단절이 남기는 상흔과 회복의 신호

면접교섭이 중단된 지 오래된 어느 아이가 아빠를 가리켜 그냥 옛날 사람이에요라고 덤덤히 내뱉는 장면(196쪽)은 어른들의 무책임이 얼마나 차가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아프게 보여준다. 부모는 아이가 애를 써서 믿고 싶은 대로 보려 했던 존재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아이의 애착은 결국 포기로 바뀐다. 저자는 비록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났어도 부모로서의 역할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과거를 부정하는 대신 다시 시작하겠다는 어른의 결연한 태도야말로 아이의 평생을 바꾸는 회복의 신호(221쪽)가 될 수 있음을 거듭 당부한다.


덜 아픈 이혼을 위해 부부가 노력해야 할 점

그렇다면 덜 아픈 이혼을 위해 서로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저자는 가수 화사의 노래 가사를 빌려 실패를 인정하되 함께했던 시간마저 원망으로 물들이지 않는 좋은 안녕을 택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조언한다. 당신들의 시간이 실패였다고 단정하지 말라고 그 시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168쪽) 전하는 판사의 고백처럼 부부가 서로를 원수로 기억하여 아이에게 미움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일처제가 단순한 본능 억압이 아니라 인간을 더 막중한 책임의 자리로 초대하는 제도이듯.. 이별의 순간, 그 이후에도 부모의 역할은 유효하다. 부부 관계가 물리적으로 파탄 났더라도 상대방의 면접교섭권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아이가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정서적 울타리를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협력하는 태도야말로 상처를 줄이는 유일하고도 필수적인 노력이다.


판결문보다 오래 남기를 바라는 간곡한 편지

에필로그에 담긴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법관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인 저자의 진심이 짙게 배어나는 대목이다. 아이의 몸에는 두 사람의 피가 흐르기에 한쪽을 부정하는 말은 아이의 절반을 부정하는 말과 같다는 통찰(223쪽)은 매섭고도 타당하다. 이혼이라는 극한의 아픔 속에서도 부부는 자기 성찰과 책임을 통해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저자는 당신들의 갈등과 결별이 아이의 정체성이 되지 않도록(225쪽) 노력하는 일은 법이 아닌 부모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몫임을 선언한다. 오늘 내리는 법적 판결보다 이 다정한 편지가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 책이 단순한 실용서를 넘어선 치유의 기록임을 증명한다.


<덜 아픈 마침표를 위하여>는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는 자극적인 법정 에세이가 아니다. 관계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역설적으로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가, 나아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에 가깝다. 부서진 관계의 파고 속에서도 기어코 남겨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저자의 다정한 시선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관통한다. 섣부른 위로나 얄팍한 조언 대신 쓰라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덜 아픈 마침표를 찍을 힘을 길러주는 든든한 부부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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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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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중국 허난성에서 태어난 옌롄커는 1979년 등단 이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사서> 등 다수의 화제작을 발표하며 루쉰 문학상, 라오서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 등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는 특유의 '신실주의' 기법을 통해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실험적인 문체를 선보이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북다에서 새롭게 펴낸 옌롄커 소설 <연월일>은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전 세계 22개국에 번역 출간된 그의 대표 소설이다. 서문에 따르면 작가는 1996년 심각한 허리 질환으로 고통받던 중, 시안 교외의 옥수수밭을 걸으며 느꼈던 생명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극심한 가뭄 속에서 발현되는 숭고한 휴머니즘과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척박한 현실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현대인들이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권할 만하다.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처연한 사투

소설을 여는 첫 문장이 처연하면서도 비장하다. 과연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의 솜씨답다.

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덮쳐 세월마저 타서 재가 되어버린 어느 해, 일흔두 살의 셴 할아버지는 피난길에서 돌연 발걸음을 돌린다. 음력 유월 열아흐레,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을 피해 동쪽 쉬저우를 향해 수십 일간의 험난한 이주를 떠나지만 그는 자신의 옥수수에 싹이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홀로 남기를 택한다. 물론 정든 고향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고 있었다. 태양빛이 온 세상을 붉게 달구고 먼지가 구르릉거리는 적막한 바러우산맥 전체를 통틀어 남은 생명은 노인과 눈먼 개, 여린 옥수수 싹 하나뿐이다.


주인 말을 곧잘 알아듣는 눈먼 개의 사연 또한 비통하기 그지없다. 기우 제물로 바쳐져 햇빛에 눈알이 타고 말라붙어 앞을 보지 못하는 개.. 허나 이 개는 주인의 앞길을 내다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충견이다. 개는 주인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주인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타들어 가는 열기 속에서 텅 빈 마을을 지키는 노인의 선택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을 향한 원초적인 집념, 투쟁의 시작을 알린다. 이웃집을 샅샅이 뒤져 텅 빈 자루만 쥔 채 허탈감에 빠지면서도, 찾아낸 소금 단지에서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머금고, 장님 개의 입에도 넣어주는 장면은 극한의 빈곤 속에서도 친구, 가족과 같은 반려견과 온기를 나누려는 연대감을 자아낸다. 모든 것이 증발해 버린 폐허 속에서도 두 생명체는 서로를 온전히 의지하며 질긴 숨을 이어간다.


절망과 마주한 옥수수 한 그루의 의미

생존을 위한 여정은 곧 무자비한 대자연과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소중한 옥수수 종자를 훔쳐 간 커다란 쥐 떼들과 양식 쟁탈전을 벌이고, 핏빛 으스름이 깔린 서산 아래에서 쥐구멍 서른 군데를 파헤치며 파김치가 되는 셴 할아버지의 모습은 생을 갈구하는 인간의 끈질긴 민낯을 대변한다. 노인은 옥수수죽을 미끼로 항아리 모양의 흙구덩이를 파서 쥐 여러 마리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삶아 먹으며 버티고, 40리 밖에 있는 샘물 터까지 매일같이 걸어가 물을 길어 옥수수를 돌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쥐 떼에 이어 우물가로 몰려온 늑대 무리와 대치하는 에피소드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멜대 갈고리를 쥔 채 눈동자조차 깜빡이지 않고 알파 늑대의 두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순간, 물 떨어지는 소리와 서서히 짙어지는 산속의 냉기가 교차하며 빚어내는 회화적인 묘사가 일품이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자신의 손목을 힘껏 꼬집으며 장님 개와 옥수수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밤의 시간들은 고독을 넘어선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거룩한 희생이 잉태한 기적의 씨앗

옥수수를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점차 타자를 위한 거룩한 헌신으로 나아간다. 양분이 부족해 옥수수 잎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며 통탄하던 노인은 마른 잎 가운데서 한 방울의 초록빛을 발견하고 다시금 투지를 불태운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녹슨 동전을 던져 자신과 장님 개 중 누가 먼저 옥수수의 거름이 될지 결정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은 정말 인간의 바닥을 뚫고 심연을 파고드는구나!" 허탈한 탄식을 자아낸다.

"이건 다 하늘의 뜻이야. 나는 옥수수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하거든"이라고 읊조리며 자신의 남은 육신마저 기꺼이 바치려는 셴 할아버지의 태도는 생명의 존엄, 후대를 위한 희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훗날 비가 내린 뒤 돌아온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할아버지와 개의 무덤 곁에서 자라난 옥수수 줄기에 맺힌 씨앗이다. 175페이지 "일곱 알만이 하늘의 별처럼 드문드문 잿빛으로 바짝 마른 알갱이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척박한 땅에서 솟아난 일말의 희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 일곱 알의 씨앗이 일곱 가구의 새로운 모종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유구한 세월을 관통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한다.


결연한 죽음의 수용과 철학적 사유

<연월일>은 잔혹한 기후 재난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시종일관 유려하고 공감각적인 시어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옌롄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포착하는 리얼한 신실주의 문법으로 말라비틀어진 대지 위에 희망을 파종하는 한 개인의 결기를 생생히 묘사했다. 김태성 번역가가 역자의 말에서 언급했듯.. 이 소설이 지니는 진정한 서사적 힘은 '다른 생명을 위한 죽음의 적극적인 수용'에 있다. 끝없는 공허함과 침묵이 짓누르는 환경 속에서 단 한 줌의 생명력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노인의 행보는 무모해 보일지언정 결코 헛되지 않다. 재앙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이 고립된 사투는 결국 살아있음의 가치를 묻는 진중한 철학적 질문으로 맺음된다. 인류의 종말과도 같은 혹독한 위기 앞에서 문학이 어떻게 메마른 영혼을 적시고 고통을 뚫고 솟아나는 푸른 줄기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진정 경탄스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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