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 - 삶의 인사이트가 넘치는 어른 사용법
이지행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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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신간, 이지행 작가 글/그림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정답 없는 인생 속에서 대책 없이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한 20년 차 광고인의 솔직한 에세이다. 저자는 전 세계 9억 명이 열광한 게임 <던전 앤 파이터>와 <카카오톡 게임별>의 브랜드 네이밍을 주도했던 베테랑 카피라이터이자 전작 <B급 광고 인문학>으로 광고인으로서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개미처럼 일하다 번아웃을 맞이한 직장인이나 나이에 걸맞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펼쳐봐야 할 필독서로 추천한다.


어른이라는 오답 노트

우리는 막연히 어른이 되면 번듯한 집과 안정된 직장을 갖추고 흔들림 없는 삶을 누릴 것이라 착각한다. 저자 역시 남들이 쉴 때 맹렬히 일하며 가파른 언덕 너머의 평온을 기대했으나, 막상 도달한 현실에는 안온함 대신 끝없는 오르막의 굴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의 서두를 여는 '1막 어른은 나도 처음이라'는 이처럼 예상과 빗나간 현실을 마주한 당혹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있지도 않은 파랑새를 찾아 희망을 담보로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이 과연 옳은지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궤도에서 이탈해 옥탑방으로 출근하며 회사가 망해가는 과정을 관조하는 저자의 태도는 서글프기보다 오히려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기보다 주어진 오늘을 한껏 누리는 편이 낫다는 깨달음은 숨 가쁘게 달려온 이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틀린 음표로 연주하는 나만의 재즈

시선을 사로잡는 대목은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일화를 인용한 'Wrong is right' 챕터(62p~)다. 동료 연주자가 엉뚱한 건반을 눌러 당황할 때, 몽크는 틀린 음이라도 자신만의 리듬으로 이어나가라며 호통을 쳤다. 저자는 이 에피소드를 빌려 인생에는 정박보다 엇박이 다분하며 불완전함, 실수조차 나다움을 완성하는 고유한 음악이 된다고 역설한다. 우리말에서 아름답다는 표현이 나답다는 의미를 품고 있듯.. 남이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는 무채색 일상에 선명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수잔 손택의 저서 <타인의 고통>을 언급하며 스크린에 비친 이상적인 직업의 허상을 꼬집는 부분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시각을 보여준다.


짜장면 한 그릇이 위로하는 마흔의 사춘기

가혹한 생존 경쟁에서 한걸음 물러난 저자는 일상의 소박한 결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3막 마흔의 사춘기, 인생의 별책불혹'에서는 현대의 산타클로스는 썰매 대신 따뜻한 백화점으로 출근하며 번아웃을 겪는다는 유쾌한 상상을 통해 현대인의 피로를 어루만진다.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다룬 영화 <데드 맨 워킹>을 떠올리며 옥탑방 평상에서 곱빼기 짜장면을 음미하는 172쪽의 일화는 단연 압권이다.

니나 시몬의 노래 <필링 굿>을 배경음악 삼아 시원한 소주 한 잔에 단무지를 베어 무는 순간의 환희는 억만장자 부럽지 않은 충만함을 전달한다. 철들기를 거부한 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어른의 진면목이 활자 곳곳에 묻어난다.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별것 아닌 찰나들이 포개져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갱년기를 맞이한 4050 세대에게 건네는 명랑한 처방전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육체적, 심리적 갱년기를 지나며 깊은 상실감에 빠진 40대와 50대 장년층에게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준다. 저자는 사모아 원숭이 사냥법을 소개하며, 손에 쥔 옥수수를 놓지 못해 사람에게 붙잡히는 원숭이의 미련이 곧 알량한 명함과 지위를 쥐고 허덕이는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이제는 그 움켜쥔 손을 펴고 자유를 찾아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더불어 양말 속 구석진 곳에서 온몸의 하중을 버티며 자라나는 발톱을 향해 "그러니 발톱아, 너도 힘내렴!"이라는 유머러스한 응원을 보낸다. 이는 묵묵히 팍팍한 삶의 무게를 견뎌온 4050 세대의 쓰라린 속내를 위로하는 뭉클한 대목이다.

또한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75세 노모의 "살아보니 인생이란 게 참 짧아. 그러니 늘 재미있고 멋지게 살아!"라는 당부는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단단한 용기를 심어준다. 파리 재즈 바에서 영화 <라라랜드>를 떠올리며 두 번의 인생은 없으니 일방통행로 같은 생의 오늘을 맘껏 즐기자고 다짐하는 저자의 태도는 남은 반평생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중년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한다.


낭비할 줄 아는 자가 쟁취하는 온전한 삶

진정으로 놀고 쉬는 행위는 단순히 일을 회피하는 도피처가 아니다. 다음 스텝을 도모하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의 호흡을 되찾는 적극적인 회복의 과정이다. <아주 잘 노는 어른이 될 거야>는 무조건 열심히 살 것을 강요하는 자기 계발서의 폭력성을 배제하고, 느슨한 보폭으로 일상을 거닐도록 안내하는 이정표다.

휴일의 유통기한이 만년이기를 바라는 몽상가적 기질과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안목이 조화를 이룬다.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밑반찬을 차려내려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불안한 내일 대신 눈부신 오늘을 기꺼이 낭비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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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것 없는 행복 교양 100그램 12
서은국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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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진화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서은국 교수는 전작 <행복의 기원>을 통해 한국 사회에 행복에 관한 새로운 생물학적 패러다임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에서 종신교수로 일했던 그는 인간의 행복을 철학적 당위가 아닌 진화론적 생존의 관점에서 해부해 왔다. 창비의 문고판 시리즈 '교양 100그램'의 열두 번째 책으로 출간된 신간 <어려울 것 없는 행복>은 이러한 저자의 학문적 궤적을 잇는 동시에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복을 감각하고 누려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 사유를 더한다. 이 책은 다소 강박적으로 행복을 추구해 온 현대인들에게 강력한 해독제로 작용한다. 특히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행복마저 하나의 달성해야 할 스펙이나 과제로 여기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행복의 본질을 명징하게 재정립해 주는 지침서라 할 수 있다.


행복은 도달해야 할 결승선이 아니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현대인들이 행복을 대하는 태도의 모순을 꼬집는다. 인간은 일상의 큰 관심사가 된 행복조차 하나의 인생 숙제처럼 여긴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쟁취해야 할 목표로 변질시켰다. 저자는 면접을 앞둔 수험생의 비유를 통해 지나친 절실함이 오히려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여 본래의 실력 발휘를 가로막는 현상을 설명한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도리어 우리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역설이다.

우리는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비롯된 목적론적 삶의 태도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인생이라는 긴 경주를 달리다 보면 결승선에 행복이라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이러한 철학적 환상을 단호히 배격하며 행복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현재 뇌가 느끼는 구체적인 감각임을 선언한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뇌의 작용

이 책의 핵심적인 통찰은 인간의 뇌가 애초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는 생물학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이래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지상 과제는 오직 생존과 번식 두 가지뿐이었다. 스마트폰을 쥐고 살아가는 현대 문명인의 삶은 인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했을 때 고작 마지막 몇 분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여전히 수렵채집 시대의 생물학적 목적에 맞춰 작동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감정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강력한 신호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쾌감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은 모두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생존 장치다. 결국 행복감이란 생존에 필요한 자원들을 확보했을 때 뇌가 잠깐씩 켜주는 보상 신호에 불과하다. 뇌가 스스로 좋아하는 생존 관련 자원들을 일상에 자주 배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와 칠레의 해변

저자는 돈이나 사회적 성공을 행복의 전부라 믿는 태도를 사막에서 물을 찾는 행위에 비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좇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지만, 이는 행복을 유발하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일 뿐 본질이 될 수는 없다. 행복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거창한 차력 쇼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 속에 수록된 2024년 칠레 비냐 델 마르의 사진은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뒷받침한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산불의 검은 연기를 배경으로 해변에서 한가로이 공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사회였다면 작은 위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당장 대피하거나 불안에 떨었을 상황이다.

저자는 무결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삶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상태를 기다린 뒤에야 행복을 누리려 한다면 우리는 평생 그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여유가 필요하다.


노르웨이 절벽과 인천대교가 묻는 사회적 안녕

책 중반부에서 저자가 비교한 노르웨이 트롤퉁가 절벽과 한국 인천 대교의 일화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아찔한 노르웨이 절벽이 개인의 자연 감상과 경이로운 경험을 존중하는 철학을 보여준다면 자살 방지를 이유로 바다 뷰를 철제 펜스로 가려버린 인천대교는 위험 차단을 명분으로 일상의 즐거움마저 통제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더불어 저자는 한국인들이 타인의 평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물질주의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신이 체감하는 주관적 기쁨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태도는 행복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다. 저자가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도출한 행복의 흔들리지 않는 필요조건은 결국 '사람'이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고립을 자처하기보다 일상을 함께하며 서로의 행복 전구를 켜줄 수 있는 이들과의 풍성한 사회적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제대로 알고 자주 느끼는 행복의 기술이란?

책 전반을 아우르는 저자의 행복론을 요약하자면 결국 일상을 재편하는 실천적인 지침으로 수렴된다.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그 실체를 제대로 아는 일이다. 행복은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주어지는 거창한 보상이 아니며 현재 뇌가 감각하는 긍정적인 신호 그 자체다. 이러한 본질을 이해했다면 다음 단계는 일상에서 자주 좋다고 느끼는 삶의 방향으로 과감하게 나아갈 차례다. 행복의 열쇠는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 거대한 성취를 위해 현재를 억누르기보다 자신에게 소소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행복의 압정'을 일상 곳곳에 적극적으로 흩뿌릴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행복의 필요조건이 가족이나 친구 등 다른 사람의 존재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고립되기보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연대하는 삶이야말로 진화가 인류에게 물려준 가장 확실한 생존법이다.


일상에 즐거움의 압정을 흩뿌리며..

창비 신간 <어려울 것 없는 행복>은 거창한 목표 대신 사소한 사회적 경험의 가치를 일깨운다. 표지 일러스트에 그려진 수박, 야구공, 아이스크림, 기타 등 다채로운 일상의 조각들처럼 행복은 촘촘히 박혀 있는 즐거운 경험들의 총합이다. 저자가 인용한 격언처럼 혼자 천국에 가는 것보다 좋은 친구와 지옥에 가는 것이 낫다는 말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강요하는 흔한 자기 계발서의 조언과 달리 이 책은 뇌의 메커니즘을 속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실체적인 경험을 직접 설계하라고 권한다.


추상적인 철학적 담론에서 벗어나 과학적 팩트와 명쾌한 문장으로 행복의 민낯을 보여주는 이 책은 치열한 일상을 견뎌내는 모든 이들에게 유의미한 인식의 전환을 선사한다. 삶의 곳곳에 작고 확실한 즐거움의 압정들을 흩뿌려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뇌의 생존 본능을 다독이며 오늘을 유쾌하게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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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 1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2
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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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는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전미도서상을 세 차례나 수상하고 퓰리처상과 1976년 노벨문학상까지 휩쓴 독보적인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시카고에서 성장한 그는 다층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김현우 번역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솔 벨로> 1권은 작가가 생전에 직접 선정한 중단편들을 국내 최초로 묶어낸 의미 있는 선집이다. 이 책은 현학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작가 특유의 문체가 응축되어 있으며 단순한 서사적 재미를 넘어 인간 존재의 모순을 치밀하게 탐구하려는 독자들에게 강력히 권한다.


익명성의 도시 속 실존의 확인, <그린 씨를 찾아서>

이 단편은 1951년 발표된 작품으로 대공황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시카고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다. 고전학 강사였으나 현재는 구호 수표를 배달하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주인공 조지 그리브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폐허가 된 남부 구역에서 흑인 수급자인 '그린 씨'를 찾아 헤매지만, 주민들은 극도로 방어적이고 냉담한 태도로 그를 배척한다. 작가는 이름표가 없는 우편함과 불신으로 가득 찬 이웃들의 묘사를 통해 현대 도시의 철저한 익명성과 단절을 건조하게 그려낸다. 결말부에서 그리브가 그린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헐벗은 여성에게 수표를 건네고 서명을 받는 장면은 압권이다. 비록 그 여성이 진짜 수표의 주인인지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브는 기필코 대상을 찾아냈다는 사실 자체에서 기이한 성취감을 느낀다. 이는 거대한 관료주의 시스템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혹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는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상징한다.


소멸에 저항하는 처절한 생의 의지, <노란 집 물려주기>

1957년에 쓰인 이 서사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세고 호수 근처를 배경으로 늙고 병든 여성 해티의 고립된 삶을 조명한다.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어느 날 무리하게 운전을 하다 차가 철로에 끼는 사고를 겪는다. 차를 철로 밖으로 꺼내려다 이웃 달리의 트럭 견인줄에 걸려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신체적 훼손과 함께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해티는 이웃인 롤프와 제리 등에게 의지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인 '노란 집'을 지키려 집착한다. 유언장을 작성하며 집을 누구에게 남길지 고민하던 그녀가 결국 변호사에게 자신은 제정신이 아니며 집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항변하는 대목은 인간의 서글픈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신의 곁에서 동고동락하다가 세상을 떠난 인디아, 한때의 연인 윅스 등을 회상하는 그녀는 점점 스러져감을 느낀다. 쇠락해 가는 육체 속에서도 끝내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맹렬한 삶의 의지가 황량한 사막의 풍경과 대비되며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이성관습과 날것의 감정이 충돌하는 가족사, <옛날 방식>

이 작품은 유대인 이민자 가족의 복잡다단한 애증을 브라운 박사의 냉철한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본다. 지식인 브라운은 돈과 부동산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촌 이삭과 티나의 끔찍한 불화를 회상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티나와 그녀를 찾아온 이삭 사이의 갈등은 로즈 숙모의 반지를 매개로 폭발한다. 작가는 교양과 이성으로 무장한 현대인들이 정작 피가 섞인 가족의 원초적인 감정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통찰한다. 눈물을 쏟아내는 유대인 친척들의 모습을 보며 인류가 감정을 착취하고 뒤흔드는 행위에 묘한 흥분을 느낀다고 분석하는 브라운 박사의 내면 독백은 서늘하면서도 날카롭다. '옛날 방식'으로 대변되는 끈적한 핏줄의 굴레와 죽음이라는 절대적 무(無) 사이의 간극을 세밀하게 포착한 솜씨가 돋보인다.


오만함과 실패의 서늘한 대비, <모즈비의 회고록>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다룬 또 다른 수록작인 이 소설은 학자 모즈비가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하며 과거에 만난 실패자 러스트가르텐을 회고하는 과정을 담는다. 유해조사단 소속으로 암시장 거래에 뛰어들었다가 번번이 좌절하고 마는 러스트가르텐의 고단한 삶을 모즈비는 철저히 3인칭의 냉정한 시각으로 재단한다. 하지만 멕시코의 고대 유적지에서 죽음의 기운을 직면하고 숨을 헐떡이는 모즈비의 결말부 묘사는 타인의 실패를 조롱하며 쌓아 올린 우월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러스트가르텐의 신체적 고통과 거만하고 차가운 모즈비의 내면이 빚어내는 서사적 긴장감이 상당하다.


거대한 지성과 육체의 기묘한 부조화, <오늘 하루 어땠나요?>

이 단편은 시카고의 혹독한 겨울 날씨를 배경으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 빅터와 그의 연인 카트리나의 하루를 면밀하게 추적한다. 늙고 쇠약해진 육체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폭력적일 만큼 거센 지적 오만함과 권위 의식을 내뿜는다. 예술과 문학에만 몰두하며 엘리트주의에 젖어 있는 빅터 일당과 그 곁에서 거물의 연인이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맞추려는 카트리나의 역학 관계가 무척 흥미롭다. 카트리나가 기상 악화로 발이 묶인 빅터를 만나기 위해 렌젤의 식당에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이나, 낡은 차를 타며 짜증을 내는 빅터의 묘사는 이성을 숭배하는 현대인의 옹졸한 이면을 여과 없이 폭로한다. 작가는 관념적 사유 이면에 웅크린 물리적 한계와 세속적 욕망을 집요하게 해부한다. 카트리나가 아이들을 맡겼던 크리그스타인과 조우하며 품속에 총을 지닌 그의 미치광이 같은 강박과 기이한 이념적 집착을 마주하는 후반부 장면은 일상 속에 방치된 지식인의 신경증적 불안을 섬뜩할 정도로 리얼하게 포착한다.


그 외 <제틀랜드: 성격증거에 따라>, <은접시>, <해선 안 될 말을 한 남자>를 포함, 총 8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다.


현대문학 신간 <솔 벨로 1> 출간의 문학사적 의의와 필독 추천 이유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필립 로스는 "20세기 미국 문학의 근간은 솔 벨로와 윌리엄 포크너, 이 두 작가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은 명실상부한 20세기의 멜빌이자 호손이며 마크 트웨인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세계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거장의 자선 중단편들을 국내 최초로 번역하여 한데 묶어낸 이번 신간은 한국 출판계와 문학 애호가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성과다. 작가가 생전에 손수 선정한 작품들인 만큼 그의 문학적 세계관이 가장 짙게 배어 있으며 장편소설에 가려져 있던 단편 미학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1976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작가는 "인류의 핵심 문제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집단 권력과 투쟁하는 일이며, 개인의 핵심 문제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기 위하여 비인간화와 싸우는 일이다"라고 선언했다. 기술의 발전과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점차 소외되고 파편화되는 현시대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거대한 울림을 전한다. 상실과 결핍 속에서도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들의 투쟁기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성의 본질을 되찾도록 돕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시대의 파도를 뛰어넘어 그의 고전 소설을 반드시 펼쳐보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솔 벨로의 단편소설들을 읽는 것은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도사린 모순과 직면하는 고통스럽고도 경이로운 과정이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결핍을 안고 있으며 거대한 세상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결코 사유하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물들의 지적 분투는 파편화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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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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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변호사 출신인 앨런 레비가 일흔의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 <테오>는 출간 직후 특별한 마케팅 없이 입소문만으로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진귀한 이력을 지닌다. 2023년 자비 출판으로 시작해 독자들 사이에서 '하얀 책'으로 불리며 자발적인 지지를 얻은 이 작품은 2026년 아마존 종합 1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30개국에 출간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수십 년간 수백 곡의 미공개 곡을 써 내려간 음악가 다운 리듬감 있는 문체와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자라며 법조인으로 다져진 예리한 통찰력이 책 전반에 스며 있다. 저자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4년에 걸쳐 홀로 집필한 이 소설이 일상 속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담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삶의 예기치 않은 비극을 마주하고 방황하는 이들, 혹은 타인과의 진실한 교감을 갈망하는 성인 독자들에게 견고한 문학적 위안을 제공하는 소설이다.


상실의 늪에서 길어 올린 생의 감각

주인공 테오의 삶은 평범한 겉모습 이면에 처참한 붕괴, 상실을 품고 있다.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통제력을 잃은 아내의 음주 운전 사고로 배우자와 아이 티타를 한꺼번에 잃는 참척의 고통을 겪는다. 식음 전폐와 불면, 경련 속에서 내가 아이를 지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가혹한 자책에 시달리던 그는 세간의 호기심을 뒤로한 채 새로운 공간과 인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작품은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파국을 묘사할 때조차 감정을 전시하지 않고, 오히려 건조한 시선으로 상처의 이면을 응시한다. 살아남은 자가 짊어져야 하는 죄책감과 허무를 서술하는 방식은 독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서사의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다채로운 인간 군상이 빚어내는 삶의 교향곡

배경으로 등장하는 골든이라는 지명과 다수의 인물은 테오의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애셔 글리슨이라는 지역 화가가 그린 92점의 초상화를 차례로 구입하여 주인에게 돌려주는 행위를 거듭한다. 초상화의 주인은 처음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접근하며 초면의 노인을 경계하지만, 테오에게 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 라미샤가 중상을 입은 청소부 켄드릭, 첼로 연주를 하는 시몬, 거리에서 버스킹 공연, 노래를 하는 바질, 인생의 굴곡을 심하게 겪은 노숙자 엘렌 등이 테오와 대화를 하고 초상화를 선물받으며 위로를 받고 각자의 상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도 베트남 전쟁 당시 벤숙에서 겪은 참혹한 기억을 회상하며 오열하는 서점 주인 토니의 이야기, 1859년산 크리너 첼로를 매개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파블로 카살스를 논하며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시몬과의 대화는 소설의 층위를 한층 다채롭게 확장한다. 각 인물이 품고 있는 고유한 역사와 상처는 테오의 삶과 유기적으로 얽히며 거대한 서사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단절을 허무는 연대와 치유의 미학

과거의 망령에 얽매이지 않고 켄드릭, 시몬, 바질, 엘렌, 라미샤, 화가 애셔 등 젊은 세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테오의 태도는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골든의 지역 유지이자 부동산 업자 폰더 씨와 같은 지적 동반자와 사무실 2층의 신성한 공간에서 골든의 역사를 경청하고, 예술을 논하는 장면은 세대와 계층을 초월한 진정한 사귐의 가치를 증명한다. 앨런 레비는 각기 다른 상실과 결핍을 지닌 인물들이 서로의 내면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과정을 세밀히 그린다. 그해 골든의 푸른색들은 푸르게 넘쳤다는 책의 한 구절처럼.. 소설은 슬픔과 우울의 색채를 띠고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색으로 물든다. <테오>는 단절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상처를 꿰매어 가는가를 묻는 진중한 질문이자, 그 자체로 따뜻한 해답을 제시하는 소설이다.


은총처럼 쏟아지는 아흔두 점의 다정한 유산

작품의 후반부는 테오가 골든의 이웃들에게 남긴 뜻밖의 선물과 편지들을 통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일상에서 마주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낸 아흔두 점의 초상화는 그가 타인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했는지 증명하는 다정한 유산이다. 애셔를 비롯한 여러 인물에게 남긴 편지 속 문장들은 상실의 고통 속에 영원히 갇혀있지 않고 기어코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한 인간의 눈부신 의지를 보여준다.

결말부에 이르러 서서히 베일을 벗는 테오의 진짜 삶과 정체, 그가 선택한 마지막 행보는 우리의 가슴에 진한 파문을 일으킨다. 거대한 비극을 겪고 비밀을 품은 이가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사심 없는 친절과 환대로 누군가의 구원, 위로가 되는 과정은 경이롭다. 분명 테오는 저자 앨런 레비의 분신이자 페르소나임이 분명하리라. 저자의 70년 인생 지혜, 사랑, 우정, 고통, 슬픔, 트라우마 등을 희로애락을 녹여내 다시 빚어낸 형상은 이 소설을 통해 '테오'라는 친절하고 자애롭고 현명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팬하우스 신간, 앨런 레비 장편소설 <테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감동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친절한 미소, 온기 어린 대화라는 위대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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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영혼의 왈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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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넘어 한국 독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영혼의 왈츠> 1, 2권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개미>, <타나토노트> 등으로 독창적인 상상력을 입증한 그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는 그만의 고유한 서술 방식은 전미연 번역가의 매끄러운 문장과 만나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인류 멸망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과거로 회귀하여 해답을 찾는 여정을 그리는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지적 모험을 즐기는 독자, 역사와 인류학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게 주저 없이 권할 만한 소설이라 평가한다.


파국을 막기 위한 12만 년의 시간 여행

소설은 세상의 종말이 단 5일 남았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막을 올린다. 아포칼립스 D-5일인 8일 일요일부터 D-2일인 11일 수요일까지 숨 가쁘게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르네 톨레다노의 딸 외제니가 새로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파리 울름가 26번지에 위치한 퀴리 병원 병실에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둔 채 외제니는 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는 최면을 통해 109번째 전생으로 향한다. 그녀가 당도한 곳은 기원전 12만 년 전의 타분 동굴이다. 그곳에서 호모 사피엔스인 엄지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인 검지가 조우하는 원시의 풍경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횃불을 밝힌 동굴에서 흑표범의 습격에 맞서 싸우는 주술사 아버지와 두 남녀의 처절한 생존 투쟁은 현재의 멸망 위기와 교차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주술사 아버지가 코끼리 가족의 매장 풍습에서 영감을 얻어 시신을 묻고 영적 생활을 시작하는 대목은 인류 문명의 발단에 대한 작가의 경이로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몽매주의에 맞서는 지식과 영혼의 수호

이 작품은 <기억>, <꿀벌의 예언>을 잇는 판도라 연작의 세 번째 이야기를 다룬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구원한다는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서사의 전면에 나선 외제니는 전생 체험을 통해 이집트의 아크나톤, 인도의 싯다르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페르시아의 자라투스트라 등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철학적 인물들의 삶에 접속한다.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들이 시공간을 넘어 서로 조우하고 사유를 나누는 장면은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현재 소르본 대학교 도서관을 불태우려 하는 신나치주의, 극단적 공산주의 등 몽매주의 학생 세력의 폭력, 혐오와 대비된다. 외제니와 동료 라파엘 헤르츠는 무지와 혐오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이들의 작전을 막아내며 도서관이라는 인류 지식의 보고를 수호한다. 작가는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리어 반지성적인 몽매주의가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음을 날카롭게 경고한다. 흩어진 영혼의 형제들을 찾아내어 연대하고, 무지에 맞서 지혜를 지켜내는 외제니의 투쟁은 AI 로봇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두 거대한 세계관의 경이로운 결합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이 소설을 가리켜 <천사들의 제국>과 <꿀벌의 예언>을 합쳐 놓은 작품이라 밝혔다는 사실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막기 위해 시간을 넘나드는 <꿀벌의 예언>의 타임슬립 구조에 인간의 영혼과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천사들의 제국>의 영적 세계관이 융합되었다. 무엇보다 베르베르 세계관의 상징적인 인물인 미카엘 팽송과 에드몽 웰즈가 미래의 도서관 사서로 재회하는 에피소드는 마니아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긴다. 천사로서 인간의 운명을 이끌던 이들이 이제는 우주적 도서관에서 인류의 모든 지식과 영혼의 기록을 관장하는 사서로 등장하여 외제니의 여정에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각기 다른 연작으로 존재했던 세계관들이 하나의 유니버스로 통합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지적 카타르시스..

총 2권, 700여 페이지를 읽고 나면 거대한 서사시를 감상한 듯한 여운이 남는다. 작가는 뇌과학, 고고학, 역사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을 소설이라는 무대에 정교하게 옮겼다. 단조로운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피타고라스와 싯다르타의 조우를 통해 인류 영성의 기원을 묻는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치밀한 교차 편집과 속도감 있는 전개 덕분에 독자의 몰입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책 말미 감사의 말을 통해 창작 과정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 비발디, 데드 캔 댄스 등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을 들으며 서사의 배경을 구상했음을 짐작게 한다. 또한 각 장 사이에 삽입된 마야 점성술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에드몽 웰즈의 백과사전 항목들은 단순한 허구를 넘어 현실의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다. 역자 전미연의 유려한 해설이 덧붙여져 베르베르 특유의 철학과 영성, 과학이 결합된 지적 탐구의 정수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차가운 AI 시스템이나 맹목적인 극단주의가 아니라 태초부터 이어져 온 끈질긴 생명력, 지식의 보존, 영혼의 연대 의식임을 일깨운다. 인공지능과 고도화된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리어 인간 본연의 가치와 지성을 상실한다면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는 작가의 경고는 서늘하게 다가온다. 과거의 지혜를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영혼들의 장엄한 춤사위는 혐오와 무지로 분열된 현시대에 강렬한 울림을 던진다.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내면의 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통찰을 담아낸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영혼의 왈츠>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적 나침반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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