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 숏폼, 데이팅 앱, 초가공식품은 나의 뇌를 어떻게 점령했는가
니클라스 브렌보르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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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신간, 니클라스 브렌보르 <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은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숏폼, 데이팅 앱, 초가공식품 등이 어떻게 우리의 뇌를 잠식하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진화생물학과 신경과학을 넘나드는 통찰력으로 극찬을 받았다. 무작정 의지력 부족이라 비난하는 대신..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왜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탐닉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진화의 관점에서 파헤친다.


저자 니클라스 브렌보르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덴마크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전작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30개국 이상에 번역 출간되었다. 노보 노디스크 국제 재능 프로그램 등에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복잡한 생물학적 기제를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의 자극이 과거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보상 회로를 교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인간의 의지력 부족을 탓하기보다 환경 설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목차를 살펴보면 이 책의 방대한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1부에서는 식품 중독을 다루며 진화 과정에서 희귀했던 당과 지방이 오늘날 경쟁적인 초가공식품의 형태로 넘쳐나면서 비만과 대사 질환을 일으키는 함정을 지적한다. 2부는 포르노 중독과 성적 자극의 범람이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분석한다. 3부에서는 스크린 중독을 통해 끝없는 스크롤에 빠진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그린다. 이러한 맹독성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스마트폰을 끄거나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수준을 넘어, 자극의 원천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환경 자체를 리셋, 재설계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도파민에 대한 신경과학적 재해석이다. 저자는 1950년대 캐나다의 피터 밀너와 제임스 올즈가 진행한 쥐 실험을 언급하며 도파민이 단순한 쾌락 물질이 아니라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게 만드는 욕망의 분자임을 명확히 한다. 우리는 쾌락을 느껴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것을 원하도록 속았기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이 날카롭게 해부하는 지점은 초자극 시대에 범람하는 포르노그래피의 폐해다. 과거 인류에게 짝을 찾는 일은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클릭 한 번으로 무한한 시각적 자극을 얻을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갈구하는 진화적 본능인 쿨리지 효과가 인터넷의 무제한 콘텐츠와 결합하면서 우리의 뇌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책 속 "성적 자극은 보상 효과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선택권이 주어지면 동물은 그 보상을 열심히 추구한다" (150쪽)라는 문장은 이 함정의 무서움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포르노 중독이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학적 재난임을 경고한다. 강렬한 성적 초자극은 도파민 수용체를 둔감하게 만들어 일상적인 기쁨을 앗아가고 현실의 친밀한 관계 맺기를 방해하며 뇌 기능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


끝없는 스크롤과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의 폐해 역시 이 책이 짚어내는 심각한 질병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시선을 단 1초라도 더 붙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새롭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무한 주입한다. 소셜미디어를 스크롤하는 행위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예측 불가능한 간헐적 보상은 슬롯머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사용자를 화면 앞에 묶어둔다. 이는 개인의 시간을 훔치는 것을 넘어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고 깊은 사유의 가능성을 앗아간다.


저자는 결론부에서 진화생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의 연구를 인용하며 '초자극'이 지닌 양면성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가짜 알을 품으려 애쓰는 새처럼 맹목적으로 쾌락적인 초자극을 좇으면 결국 파멸에 이르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인류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 쏟아지는 자극 속에서 현명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뇌가 지닌 생물학적 취약성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단순한 의지력에 기대는 대신 유혹과 나 사이에 물리적 장벽을 세우는 환경 설계가 필수적이다. 스마트폰을 침실 밖으로 치우고 정제 탄수화물을 집 안에 두지 않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 나아가 학습, 운동, 창작과 같은 생산적인 활동에 초자극의 보상 원리를 결합하여 긍정적인 도파민 회로를 구축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새장 안에서 커다란 알을 쳐다보고 있다.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엇을 할지 고민하더니, 알 위로 뛰어오르려 한다."_여는 말 7p


라는 첫머리의 비유처럼 우리는 지금 본능을 교란하는 거대한 가짜 알 앞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무방비 상태로 알고리즘과 자본이 던져주는 파괴적인 쾌락에 끌려다닐 것인가, 아니면 진화의 맹점을 직시하고 환경의 지배자가 될 것인가? 의지가 아닌 환경을 철저히 통제하고 긍정적인 초자극을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중독의 사슬을 끊고 진정한 삶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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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바이킹 비케와 독재자의 도시 동화는 내 친구 44
루네르 욘손 지음, 에베르트 칼손 그림, 배정희 옮김 / 논장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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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장 신간, 스웨덴의 아동문학가 루네르 욘손, 삽화가 에베르트 칼손이 탄생시킨 <소년 바이킹 비케와 독재자의 도시>는 지혜와 용기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는 고전 명작이랍니다. 폭력과 힘이 지배하던 바이킹 시대에 칼 대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따뜻한 마음으로 평화를 이끌어내는 꼬마 비케의 활약상은 1965년 독일 아동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전 세계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며 국경을 초월한 감동을 선사했어요. 완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른들과 대비되는 비케의 총명함은 폭력 없는 평화로운 문제 해결의 교과서라 불리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어야 할 필독서로 평가받는답니다.


저자 루네르 욘손은 스웨덴의 언론인이자 작가로서 평화주의적 신념을 바탕으로 물리적인 힘보다 지혜가 위대하다는 철학을 작품에 꾸준히 녹여낸 인물이에요.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웅은 폭력을 쓰는 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임을 강조했답니다. 에베르트 칼손 특유의 생동감 넘치고 풍자적인 펜화가 더해져 이야기의 매력이 한층 더해졌어요.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시사 만화가이기도 한 에베르트 칼손은 인물들의 우스꽝스럽고 개성 넘치는 표정을 통해 어리석은 권력자,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답니다.


페이지를 펼치면 플라케 마을의 바이킹 용사들이 남쪽으로 항해를 떠나며 벌어지는 모험을 엿볼 수 있어요. 으스스한 도시에 도착한 할바르 대장, 비케, 선원들은 갈게 대왕, 레프 대왕, 욀가 대왕이라는 탐욕스러운 독재자들과 맞닥뜨리게 된답니다. 힘으로만 덤비려는 어른들과 달리 비케는 악어와 사자가 득실거리는 함정을 피하고 독재자들을 무너뜨릴 기상천외한 계획들을 척척 세워나가요. 공중을 날아가고 맹수들이 들이닥치는 위기 속에서도 비케의 지혜 덕분에 왕들은 줄줄이 쓰러지고 마침내 변신한 도시에서 프리슬란드 해적들까지 참회하게 만드는 통쾌한 승리의 과정이 스피디하게 펼쳐진답니다.


1963년 첫 출간된 <소년 바이킹 비케> 시리즈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아동 문학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 역사적인 작품이에요. 근육질에 호전적인 전통적 바이킹의 고정관념을 뒤집고 작고 힘없는 소년이 상상력과 지혜로 무리를 이끈다는 설정은 당시로서는 무척 혁신적이었답니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유연한 사고에 있다는 깊은 울림을 현대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줘요.


이 작품이 대중문화에 끼친 매력적인 영향은 세계적인 만화 시리즈 <원피스>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다는 점이랍니다. <원피스>의 원작자 오다 에이치로는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비케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통해 해적에 대한 동경과 모험의 즐거움을 처음 느꼈다고 고백했어요. 무모하지만 정 많은 어른들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지혜로운 소년의 서사는 <원피스> 특유의 유쾌한 동료애와 기발한 문제 해결 방식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배가 거센 파도를 타고 고향으로 달리는 동안 할바르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난 역사에 남을 거야." 할바르는 이제 정말로 집이 그리웠습니다! 윌바는 진짜로 여자들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 할바르 같은 사람에게는 가끔씩 그렇게 쿡쿡 찔러 대는 사람이 꼭 필요하니까요."_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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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 더숲히스토리
야마다 시게오 지음, 박재영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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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 신간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는 고대 오리엔트사 권위자 야마다 시게오가 집대성한 국내 최초의 아시리아 통사다. 한국 출판계에서 아시리아 제국의 흥망성쇠 전체를 단독으로 깊이 있게 다룬 기록은 이 책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학술적, 대중적 의의가 매우 크다. 이 책은 성경이나 그리스 고전의 조연으로만 인식되던 아시리아를 역사의 주연으로 끌어올린 역작이라 할 수 있다.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앞서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방대한 고고학적 데이터와 점토판 사료 등을 바탕으로 제국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저자 야마다 시게오는 일본 쓰쿠바대학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고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아시리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세계적인 학자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구약성경이나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넘어 19세기 중반부터 진행된 발굴 조사와 쐐기문자 번역을 통해 탄생한 최신 학술 정보를 동아시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철저한 문헌 검증을 거친 그의 연구 스타일은 신화와 전설의 장막을 걷어내고 실증적인 고대 서아시아의 민낯을 직시하게 한다.


책은 기원전 2000년경 티그리스강 중류의 도시 국가 아수르에서 출발한다. 고아시리아 시대 아수르 상인들은 아나톨리아 고원의 카네시를 거점으로 웅대한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자본주의적 상업 시스템을 운영했다. 샴시 아다드 1세 시기 북 메소포타미아를 호령하던 아시리아는 기원전 18세기 중반 이후 사료가 급감하는 암흑기를 맞이하지만 중아시리아 시대로 접어들며 투쿨티 니누르타 1세 등의 정복 활동을 통해 이집트, 히타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역 국가로 성장한다.


진정한 제국의 기틀은 신아시리아 시대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의 정복과 통합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그는 광범위한 영토를 통제하기 위해 행정주를 세밀히 분할하고 정복민을 강제 이주시키는 다방향 이주 정책을 펼쳤다. 아람어와 아카드어의 이중 언어 사용 정착, 중앙 집권적인 행정 체계, 도로망 구축, 상비군 운용 등은 훗날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이 차용한 세계 제국 시스템의 바탕이 되었다.


제국의 최전성기인 사르곤 왕조 시대는 치열한 정복 전쟁과 찬란한 문명이 교차한 시기였다. 신수도 두르 샤루킨을 건설한 사르곤 2세의 영토 확장, 장대한 수도 니네베를 재건하고 유다 왕국의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센나케립, 웅장한 바빌론 재건과 이집트 원정을 감행한 에사르하돈의 서사가 펼쳐진다. 학자 군주였던 아슈르바니팔은 제국 전역의 문헌을 수집해 세계 최초의 국립도서관인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세웠고 예술적 걸작인 사자 사냥 부조를 남기며 아시리아 문화의 정점을 찍었다.


영원할 것 같던 제국은 기원전 7세기 말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무자비한 정복 전쟁과 강제 이주가 역설적으로 주변국의 극심한 반발을 초래했다. 엘람 왕국과의 소모전, 정치적 혼란, 가뭄에 따른 식량 위기가 제국의 국력을 갉아먹었다. 결국 나보폴라사르가 이끄는 바빌로니아와 신흥 강국 메디아의 연합 공세에 의해 수도 니네베가 함락되고, 새로운 거점 하란마저 무너지며 거대 제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는 폭력과 야만의 제국이라는 서구 중심적 편견을 걷어내고 거대 제국의 시스템을 발명한 개척자로서 아시리아를 재조명한 훌륭한 역사서다. 찾아본 결과.. 한국 출판 시장에 아시리아만을 단독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다른 역사서는 사실상 전무하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폭넓게 접하고 싶다면 폴 크리워첵(Paul Kriwaczek)의 저서 <바빌론: 메소포타미아와 문명의 탄생 Babylon: Mesopotamia and the Birth of Civilization>을 추천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전체의 흐름을 다루면서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치열한 패권 경쟁을 밀도 있게 묘사한 책이다. 류모세의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구약편 3부> 같은 역사서를 통해서도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던 막강한 제국 아시리아의 팽창기를 성서적 관점에서 교차해 읽어볼 수 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아시리아 제국의 숨겨진 역사를 다룬 다양한 저서가 선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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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지옥
김인정 지음 / 아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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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작 신간, 김인정 소설집 <다정한 지옥>은 파국이 예정된 치명적인 사랑과 아스라한 동양 환상담을 엮어낸 수작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먼지와 진흙으로 가득한 가혹한 무협 세계 속에서 약점투성이 인물들이 엮어 내는 찰나의 로맨스를 탐구한다. 독자들은 타협 없이 맹렬하게 서로를 베어내는 참혹한 연정 속에서 숨 막히는 서정성을 마주하게 된다.


저자 김인정은 서강대 국문학과와 방송대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장편소설 <화조풍월>로 제3회 황금드래곤문학상 장편 부문 본심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필진으로 활동해 온 작가는 동양적이고 서정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환상 소설과 로맨스를 집필해 왔다.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홀연>, <차마 봄이 아니거니와> 등의 단편을 냈으며 '호노라'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로맨스 소설을 출간했다. 작가는 제도와 불합리한 숙명에 휩쓸리면서도 치열하게 살고 죽고 사랑하며 욕망하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삶의 굽이마다 걸려 넘어지면서도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인물들의 심리가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장으로 피어난다.


<다정한 지옥>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은 각기 다른 결의 매혹적인 세계를 펼친다. 시작하는 단편 <선화>부터 기세가 심상치 않다. 악명 높은 벼슬아치 육종득이 기생 난옥을 불러서는 수청을 들라 명하지 않고, 입묵 즉 문신을 새기고 싶다 청한다. 바깥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최후가 멀지 않았음을 자각했는지.. 그녀의 맨 등에 형형색색 극락을 새기고는 자신은 오랏줄을 받고 이슬처럼 사라진다. 기생 난옥은 자신을 선화라 부르는 오라버니 형완에게 바늘로 촘촘 새긴 극락세계를 단칼에 베어줄 것을 청하는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무협 로맨스 판타지는 긴장감을 더해간다.


신궁 내을에서 졸다가 짙은 푸른 문장을 마주한 국통 누마는 요망한 예지몽을 꾼다. 들불과 같은 사랑 앞에 당주는 화주가 되어 찾아올 것인가?_<누마의 여름>

서향 아씨를 남몰래 연모하는 노인 헌오는 정성껏 키운 서향화를 바라보며 야릇한 상상에 빠진다. 과연 어여쁘고 향기로운 그 꽃이 진 이후에도 연정은 이루어질 수 있을지..<화적> 등 뇌리에 박히는 인상적인 작품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책의 대미를 장식하며 무협 로맨스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리고 낙원까지>는 당대 최고의 고수이자 이검귀라 불리는 살수 연교가 유가장의 가주를 참살하는 잔혹한 장면으로 문을 연다. 눈보라를 헤치고 찾아온 가주의 어린 딸 아설은 복수 대신 원수인 연교에게 검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표지에 그려진 날 선 두 장검이 맞부딪치는 것처럼.. 언젠가 제자가 자신의 목을 칠 것을 알면서도 맹목적인 애착으로 곁을 내어주는 스승의 서늘한 연정이 깊은 잔상을 남긴다.


이 소설집이 돋보이는 이유는 일상의 안전하고 밋밋한 관계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맹렬한 생명력이 서사 전반에 흐르기 때문이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기어이 불나방처럼 서로에게 뛰어드는 인물들의 핏빛 로맨스는 독자의 심장을 서늘하게 쥐고 흔든다. 작가는 타협이나 섣부른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각자의 지옥 속에서 철저히 부서지고 망해버리지만, 그 파멸의 끝에서 비로소 가장 찬란하고 기형적인 다정함을 길어 올린다.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지독한 애착과 집착은 역설적인 미학을 선사하며 책을 덮은 후에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코리아 판타지의 신비로운 분위기, 섬세하고 탐미적인 문장, 벼랑 끝에 선 인간의 짙은 욕망을 갈망하는 독자라면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무협로맨스 소설이다. 핏빛 웅덩이, 어두운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기이한 사랑의 형태를 목격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서늘하고도 다정한 지옥으로의 초대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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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넘어 - 칼 세이건 이후 우주와 인간의 새로운 이야기
세라 알람 말릭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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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물리학자 세라 알람 말릭이 집필하고 고현석이 번역한 흐름출판의 신간 <코스모스를 넘어>는 캄캄한 우주 저편의 비밀을 철학적 사유와 함께 풀어낸 수작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부터 현대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우주를 이해해 온 역사를 거대한 서사시처럼 엮어냈다. 제목 그대로.. 칼 세이건을 잇는 차세대 우주 교양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물리학자 숀 캐럴 등 저명한 학자들은 이 책이 우주의 경이로움과 물리 법칙을 절묘한 디테일로 담아냈다고 평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인간 존재의 위치를 재정의하는 철학적 울림을 주고 있다.


저자 '세라 알람 말릭'은 유럽입자 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 프로젝트 등에 참여한 세계적인 암흑물질 전문가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답게 저자의 문체는 감각적이고 역동적이다. 전문 용어에 갇히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활용해 우리를 자연스럽게 우주의 심연으로 이끈다. 최근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우주를 연구하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책에서도 현대 우주론을 닫힌 진리가 아닌 진행 중인 질문으로 제시하며 우리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80년대 명저 <코스모스>를 통해 대중을 광활한 우주의 세계로 안내한 다정한 선구자였다. 세라 알람 말릭은 서두에서부터 세이건의 통찰을 인용하며 그가 남긴 유산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확장한다. 세이건의 시대 이후 새롭게 정립된 우주론적 발견들이 이 책의 척추를 이룬다.


<코스모스>와 비교하여 두드러지는 차이는 우주의 95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다. 우주의 팽창 속도를 가속하는 암흑에너지의 존재는 세이건의 책이 출간된 이후인 1990년대 후반에야 관측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인 입자물리학을 바탕으로 가장 작은 아원자의 세계와 가장 거대한 우주의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규명한다. 뉴턴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넘어 양자역학의 확률적 해석, 나아가 다세계 해석 등 현대 물리학의 도발적인 이론들을 통해 인간이 불확실성과 어떻게 공존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책의 흐름은 인류 지성의 도약 과정을 묵묵히 따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관측과 이슬람 제국의 천문학적 성취를 시작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어떻게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붕괴시켰는지 살핀다. 뉴턴이 중력 법칙으로 천상과 지상의 세계를 통합한 과정, 러더퍼드가 원자 내부의 세계를 밝혀낸 사건, 베라 루빈이 암흑물질의 존재를 입증한 순간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보내온 최신 관측 결과는 과학이 축적이 아닌 단절과 도약의 역사임을 증명한다.


인간이 우주의 거대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 2026년 4월 미국 항공우주국이 주도한 '아르테미스 2호'의 궤도 비행 성공은 이 책의 메시지와 깊은 궤를 같이한다. 4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운 오리온 탐사선은 달 뒷면 6500여 킬로미터 상공을 통과하며 인류 최초로 달의 이면을 육안으로 관측했다. 달에 의해 신호가 가로막혀 지구와 통신이 두절되었던 40분의 침묵은 우주의 심연과 마주한 경건한 시간이었다. 우주비행사들은 달 뒷면의 분화구 두 곳에 탐사선 캡슐 이름인 '인테그리티', 사령관 리드 와이즈먼의 사별한 아내 이름인 '캐럴'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차가운 우주 공간에 인간의 따뜻한 서사를 새겨 넣은 셈이다. 먼지보다 작은 인류가 달의 뒷면을 넘어 미지의 우주로 나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코스모스를 넘어>는 이 끝없는 지적 탐험에 기꺼이 동참하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지만, 사유를 통해 그 우주를 이해한다."

<팡세>_파스칼


"미래는 별들 사이에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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