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하우스 신간, 니클라스 브렌보르 <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은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숏폼, 데이팅 앱, 초가공식품 등이 어떻게 우리의 뇌를 잠식하는지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진화생물학과 신경과학을 넘나드는 통찰력으로 극찬을 받았다. 무작정 의지력 부족이라 비난하는 대신..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용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왜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탐닉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진화의 관점에서 파헤친다.
저자 니클라스 브렌보르는 코펜하겐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덴마크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전작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30개국 이상에 번역 출간되었다. 노보 노디스크 국제 재능 프로그램 등에서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복잡한 생물학적 기제를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의 자극이 과거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보상 회로를 교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인간의 의지력 부족을 탓하기보다 환경 설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목차를 살펴보면 이 책의 방대한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1부에서는 식품 중독을 다루며 진화 과정에서 희귀했던 당과 지방이 오늘날 경쟁적인 초가공식품의 형태로 넘쳐나면서 비만과 대사 질환을 일으키는 함정을 지적한다. 2부는 포르노 중독과 성적 자극의 범람이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분석한다. 3부에서는 스크린 중독을 통해 끝없는 스크롤에 빠진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그린다. 이러한 맹독성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스마트폰을 끄거나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수준을 넘어, 자극의 원천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환경 자체를 리셋, 재설계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도파민에 대한 신경과학적 재해석이다. 저자는 1950년대 캐나다의 피터 밀너와 제임스 올즈가 진행한 쥐 실험을 언급하며 도파민이 단순한 쾌락 물질이 아니라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게 만드는 욕망의 분자임을 명확히 한다. 우리는 쾌락을 느껴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것을 원하도록 속았기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이 날카롭게 해부하는 지점은 초자극 시대에 범람하는 포르노그래피의 폐해다. 과거 인류에게 짝을 찾는 일은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클릭 한 번으로 무한한 시각적 자극을 얻을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갈구하는 진화적 본능인 쿨리지 효과가 인터넷의 무제한 콘텐츠와 결합하면서 우리의 뇌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책 속 "성적 자극은 보상 효과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선택권이 주어지면 동물은 그 보상을 열심히 추구한다" (150쪽)라는 문장은 이 함정의 무서움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포르노 중독이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학적 재난임을 경고한다. 강렬한 성적 초자극은 도파민 수용체를 둔감하게 만들어 일상적인 기쁨을 앗아가고 현실의 친밀한 관계 맺기를 방해하며 뇌 기능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
끝없는 스크롤과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의 폐해 역시 이 책이 짚어내는 심각한 질병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시선을 단 1초라도 더 붙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새롭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무한 주입한다. 소셜미디어를 스크롤하는 행위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예측 불가능한 간헐적 보상은 슬롯머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여 사용자를 화면 앞에 묶어둔다. 이는 개인의 시간을 훔치는 것을 넘어 인지 능력을 저하시키고 깊은 사유의 가능성을 앗아간다.
저자는 결론부에서 진화생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의 연구를 인용하며 '초자극'이 지닌 양면성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가짜 알을 품으려 애쓰는 새처럼 맹목적으로 쾌락적인 초자극을 좇으면 결국 파멸에 이르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인류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 쏟아지는 자극 속에서 현명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뇌가 지닌 생물학적 취약성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단순한 의지력에 기대는 대신 유혹과 나 사이에 물리적 장벽을 세우는 환경 설계가 필수적이다. 스마트폰을 침실 밖으로 치우고 정제 탄수화물을 집 안에 두지 않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 나아가 학습, 운동, 창작과 같은 생산적인 활동에 초자극의 보상 원리를 결합하여 긍정적인 도파민 회로를 구축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