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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다산책방)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4월
평점 :
2014년 초판 출간 이후, 소설과 영화 마니아를 양산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 <미 비포 유>가 1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다시 찾아왔다. 개정판 책 표지는 포토그래퍼 '테레사 프레이타스'와 협업하여 산뜻하고 화사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간 저자 조조 모예스는 초판 원고를 꾸준히 수정했다고 한다. 불필요한 지역색이나 장황한 묘사를 대거 삭제했다. 김선형 번역가 또한 현시대 문학적 요구와 젠더 감수성을 반영하여, 전반적인 문체를 가다듬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 곁으로 다시 찾아온 <미 비포 유>는 동시대성을 획득하며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이 죽음에 더 가까워지면서 때때로 크나큰 고통의 파도가 밀려오곤 한다. 2015년 정관수술 후유증으로 배뇨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이후 항문 질환으로 몇 차례 수술을 받았을 때 노년의 삶이 어떠할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2019년 겨울, 요로 결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 마약성 진통제의 위력을 경험했다. 치명적인 델타 코로나의 망령이 떠돌 때 미처 피하지 못하고 온 가족이 격리 조치되고, 증상이 호전되지 못한 내가 생치소와 서울 의료원에 입원했을 때, 이러다 죽음을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공포에 질렸다.
해가 갈수록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의 이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증상과 도저히 견디지 못할 고통이 엄습할까 봐 두려움에 질리곤 한다. <미 비포 유>에서 '윌 트레이너'가 남들이 선망하는 정상의 자리에서 급전직하하여 휠체어에 온몸이 묶이는 순간, 다시는 이전의 자아 충만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삶을 놓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목을 무참히 그어버리고, 옛 애인이 절친과 결혼을 선언하는 순간.. 간병인의 연을 맺은 '루이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윌은 단 하루를 버티기도 어려웠으리라. 그녀의 꾸밈없고 소탈한 성격에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 윌은 6개월 동안 자타의 버킷 리스트에 담았던 계획들을 실현하며 삶의 열망을 되찾는가 싶었는데..
만약 조조 모예스가 대다수 로맨스 소설이 답습한, 안전한 해피 엔딩의 대로를 따라 끝을 맺었다면 이 책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리라. 비범하게도 용감하게도, 저자는 '윌 트레이너'가 심사숙고하여 자신의 삶을 본인의 의지로 끝맺는 과정을 세심히 따라간다. 애석하지만 윌은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 자아가 파괴되는 현재를 용인하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루이자의 사랑과 헌신이 절정에 취했을 시절을 추억하는 한편, 하루의 해가 지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찾아올 인간의 낙담, 배신, 절망 따위를 예감하는 현명함을 갖춘 자였다. 그는 삶의 벼랑 끝에서 쭈뼛거리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죽음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마지막 곁에 남은 모두가 비상하는 그의 어깻죽지에서 뻗은, 이카로스의 흰 날개를 목격할 수 있도록.. 그의 찬란하고 생생한 모습을 기억하도록 최후의 선의를 베풀었다.
560여 페이지의 책 속에서 윌 트레이너의 삶은 끝을 맺었지만, 그는 책을 벗어나 영생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미 비포 유>는 윌의 단호하고 영광스러운 죽음 덕분에 10년, 20년 이상 생존할 자격을 획득했다.
이 책 덕분에 조력 자살, 안락사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었다면 과언일까. 또한 삶의 극심한 고통에 허덕이는 자, 더 이상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없는 자라면 누구든지 숙고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널리 주창되기 시작했다. 그는 책에서 등장하는 윌처럼 상류층에 만능 스포츠맨 사업가에 핸섬하지 않아도, 극히 평범한 서민이라도 사회적/공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는 단순한 신데렐라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삶의 끝을 절감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어느 인간의 사회적, 철학적, 심리적 문제를 다각적으로 다루는 딜레마 소설 또는 생사 입문서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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