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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평점 :
마지막으로 손 편지를 쓴 적이 언제인가 싶다.
3년 전인가, 대판 부부 싸움을 하고서 화해의 메시지로 엽서에 손 편지를 써서 전했었지.
매년 아이들 생일이나 어린이날에 아빠의 마음으로 축하, 당부의 편지를 전한 적도 있다.
어릴 적 라떼만 해도, 집집 대문 우편함에 이런저런 편지들이 그득한 적이 있었는데..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한다.. 운운하는 '행운의 편지'도
실체가 있는 손 편지로 퍼지던 시절이었다.
01410 모뎀으로 연결하는 하이텔/나우/천리안 시절, 텍스트로만 보내지던 원시적인 온라인 메시지가 다음, 야후, 네띠앙 등 주요 인터넷 서비스에서 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손 편지는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현재는 손안에 쥐는 스마트폰이 데스크톱을 대신하면서 지메일, 네이버 메일뿐만 아니라 카톡, 인스타 DM 등을 통해 단문 메시지를 일사천리로 주고받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럼 이러한 디지털 AI 시대에 아날로그 식 손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구시대적인, 시대에 뒤처지는 소통 행위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대다수가 폰을 터치하고 카톡, 인스타를 뒤적거릴 때, 가느란 편지지에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새기는 이가 진정한 힙스터가 아닐까 한다. 곁에 두고픈 사람에게, 가까워지고픈 이에게, 좋아하거나 애정 하는 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손 편지를 전한다는 것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명필이든 비뚤한 악필이든, 자신의 진심과 정성을 펜촉에 넘치도록 담아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는 상대를 감복케 하는 최고의 소통 수단이요, 하나의 고유한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편지를 써내리기 위해 받는 이를 떠올리고 고심하던 그때의 감정이 묻어나는, 각자의 모아졌다 흩날리는 필체와 끊어질 듯 멈출 듯, 기필코 이어지는 단어와 문장들. 우리는 누군가가 보낸 순백의 편지지에 새겨진 마음을 헤아리고 되새기며, 그 따스하고 애틋한 사연을 영원히 가슴에 품는다.
책 한 권을 소개하기 위해 사설이 길었다. 백승연 작가의 <편지 가게 글월>. '글월'은 편지의 순우리말이라 한다. 실제 오픈한 연희동의 '글월' 매장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란다. 커다란 통창으로 바람이 불어들 것만 같은 표지와 책갈피를 겸한 책날개, 정갈한 목차와 효영의 언니 효민이 보낸 첫 편지글까지.. 책은 익명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손 편지 종합선물 세트처럼 정성스레 꾸려졌다. 손쉽게 퀵하게 보낼 수 있는 온라인 메일을 마다하고 바삭이는 편지지에 손끝 힘을 모아 한 자 한 자, 자신의 마음을 새기는 수고를 자청하는 이들. 그들은 편지 가게 '글월'의 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하며 자신이 쓴 편지를 펜팔함에 넣고, 근처 우체국에 대신 보내달라 청한다.
펜팔함에 꽂힌, 취향에 맞는 다른 이가 남긴 사연을 경청하는 즐거움을 여기 '글월'에서 맛볼 수 있다. 세계 어디로든, 누구에게나 메일과 메시지를 뿌릴 수 있는 시대, 국적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가 무차별 송신한 스팸과 광고, 피싱 메일이 범람하는 시대에 낯설고 수줍으면서 호기심 어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손 편지를 펜팔로 주고받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편지 가게 글월>에는 여러 독자들이 남긴 손 편지들이 소설 속 펜팔 편지로 수록되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효영, 효민, 선호, 영광, 민재, 은아, 원철 등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하여 써내린 편지글은 우리가 '글월'의 목탁에 기대어 편지를 읽는 것만 같은 애틋함과 현장감을 선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물들 각자의 서사에 몰입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순간순간 떠오르는 그리운 이들, 고마운 이들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손 편지를 써볼까 하는 마음이 솟아난다. <편지 가게 글월>는 손 편지를 쓰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누군가를 향한 애타는 그리움과 정갈하면서 차분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생의 한때 머무르고 스쳤던 이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넘칠 것이다. 당장이라도 '편지 가게 글월'을 찾아 편지지를 고르고는 사연을 써내리고 싶을 것이다. 단정한 자세로 바로 앉아 펜을 쥐고 살며시 눈을 감은 당신. 그 마음을 조심스레 살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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