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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할 년, 그래도 사랑합니다 - 눈물로 써내려간 10년간의 치매 엄마들 간병기
정경미 지음 / 다반 / 2024년 5월
평점 :
오랜 간병에 효자, 효부 없다. 예부터 이런 말이 있다.
아무리 지극한 효심을 지닌 이라 할지라도, 갈수록 병드는 가족을 구완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고 극심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정경미 작가의 <염병할 년, 그래도 사랑합니다>. 제목이 직설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사실상 짧은 제목 안에 책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부제는 눈물로 써 내려간 10년간의 치매 엄마들 간병기.
2014년 저자의 옆집에 살던 친엄마가 쓰쓰가무시병에 걸리면서 기나긴 간병기가 시작된다.
위급한 질병으로 몸이 허약해지면서 치매라는 위험에 노출된 걸까. 자상했던 엄마의 성격이 돌변하면서 욕지거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염병할 년, 지랄맞은 년.. 갖은 쌍욕들이 자신을 향하지만, 저자는 당황하지 않고 엄마를 곁에 두고 돌본다. 치매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니었다. 사리 분별이 흐릿해지고 인지 장애를 겪으며, 성격이 급변하여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계속해서 뿌려지는 불운의 씨앗들. 시어머니마저 치매 증상을 보이고 시아버지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아 항암 치료를 받게 된다. 다른 가족들이 돌보기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저자는 이들을 모시고 합가하기에 이른다. 다행히 친엄마는 동생이 수간호사로 근무하는 요양 병원에 모셨지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시부모 두 분을 며느리가 케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름지기 효심 가득한 며느리는 하늘이 점지한다고 했던가. 치매 증상을 경감시키는데 효과가 있다는 맨몸 운동과 끝말잇기 훈련 등을 계속하면서 시엄마는 점차 발병 이전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허나 하늘이 무심하게도 남편마저 전립선암에 걸리면서 가족들의 간병을 위해 헌신하던 그녀의 열의와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염병할 년, 그래도 사랑합니다> 페이지 구석구석에는 그녀의 포기를 모르는 간병에의 의지와 파도치듯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페이지 곳곳에 무수히 써진 '참을 인' 자와 뚝뚝 떨어진 눈물이 보이는 듯하다.
한국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보수적인 유교 사상으로 인해 노부모를 요양 병원에 맡기는 것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취급하고 반감을 가지는 것에 대해 저자는 항변한다. 그들이 한 번이라도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곁에서 병수발하고 케어했다면, 극한에 몰린 주간병인을 홀대하고 모른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국의 중증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주간병인들은 오늘도 개인사는 제쳐두고, 그들의 수족처럼 행동하고 말동무가 되어주며 헌신하고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연거푸 처방약을 들이켜는 그들을 말리고, 집 밖으로 배회하는 그들을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배변에 문제가 있는 치매 노인들을 집에서 돌보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 돌입한 것이다. 여기저기 똥칠을 하며 흔적을 남기는 그들을 따라다니며 하루에도 몇 번씩 대청소를 하는 간병인의 희생은 눈물겹고 애처롭다. 저자는 간병인들에게 당신은 충분히 소임을 다했다면서, 요양 시설에 중증 치매 환자를 맡기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10년간의 지난한 간병 분투기를 통해 겪은 시행착오와 실수, 노하우 등을 책에 담았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와 주간보호 센터 등 공공 서비스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이용을 권유한다. 또한 정부의 지원 정책도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도록 보다 세밀한 행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간병인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고는 나 몰라라, 연락도 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는 주위 가족들의 무관심도 고쳐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경미 작가, 그녀는 고통스럽고 암울한 터널을 지나 출구에 다다랐다. 허나 그녀의 여생은 또 다른 터널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노년을 맞이한 그녀 또한 치매 초기 증상을 앓고 있고, 언젠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야 함을 각오하고 있다. 그녀는 오랜 간병 생활을 통해 과거를 잊어가고 자신마저 상실하는 질환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함께 걸어가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우리는 <염병할 년, 그래도 사랑합니다>를 읽으면서 그녀가 조목조목 짚어주는, 치매 환자의 특성과 간병 노하우를 깨달을 수 있다. 2026년 한국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 100만 명이 넘고,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일 거라는 전망에.. 이 책을 평생 소장하고, 노년에 가까이 두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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