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본 수집일까? 식민지 약탈일까?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의 선구적 과학자들이 대서양 노예 무역에 의존해 먼 장소에서
관련 자료와 표본을 수집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쩌면 그때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사람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해 보게 합니다.
사진 속 인물은 해적 생물학자 윌리엄 댐피어에요.
악당이자 말썽꾸러기였지만 찰스 다윈에게 큰 영향을 미친 생물학자이지요.
댐피어는 정부로부터 암묵적 승인을 얻은 사략선의 해적이 아닌
부커니어, 즉 단순한 범죄자인 해적이었답니다.
하지만 이 댐피어는 지적 탐구심이 대단했고, 이로 인해 후대의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답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실린 인용문 중 약 1000개는 댐피어가 남긴 글에서 유래했으며
banana, posse, smuggler, tortilla, avocado, chopsticks을 포함해
그가 도입한 여어 단어도 수십 개가 된다고 해요.
댐피어는 자연을 순수하게 관찰하고 기술한 연구자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어요.
마구마구 훔치는 약탈자 해적이었음에도 그의 저서 <새로운 세계 일주 항해>는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으며 영국의 왕립학회로부터 강연 초대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댐피어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아이작 뉴턴, 에드먼드 핼리는 조수와 폭풍우의 기원에
관한 논문을 각각 따로 발표했고, 이후 댐피어의 <바람에 관한 담론>이라는 유명한 소론은 바람과 해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확실하게 밝혔다고 해요.
이 세 과학자는 전 세계의 바다와 물의 순환 운동에 관한 오래된 여러 수수께끼를
단번에 해결했어요.
정상적으로 사람들은 해적을 핼리나 뉴턴과 같은 반열에 올리지 않지만
댐피어는 어느 모로 보나 이 분야에서만큼은 그들과 동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댐피어는 해적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댐피어가 함장이었을 때 부함장이었던 조지 피셔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댐피어는 피셔를 지팡이로 때리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계속 두들겨 팼다고 해요.
그를 족쇄에 채워 2주일 감금했는데 피셔는 자신의 오물 속에서 2주를 지내야 했답니다.
훗날 피셔는 영국의 당국자들에게 해적 과학자인 댐피어를 고발했고
댐피어를 파멸시킬 생각만 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