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첩 박람강기 프로젝트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검은 안개>라는 책이 있다. 모비딕에서 출간한 책으로 마쓰모토 세이초가 일본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을 조사하여 기록을 한 논픽션 형태의 에세이다. 이 책을 완독하진 않았지만 조금 읽었을 때에는 무척 흥미로웠다. 형사들의 기록과 함께 법의학적인 접근도 함께 수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론이 들어가 있었다. 탐정이 어떤 사건을 꿰뚫듯, 마쓰모토 세이초 나름대로 찾아낸 진실의 조각이 수록된 책이었다. <일본의 검은 안개>의 축소판이라고 해야 할지, 그의 작품론이라고 해야 할지, 여하튼 <검은 수첩>은 마쓰모초 세이초의 작품과 더불어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논픽션의 에세이다. 

 

재미있는 구성이 있다. 추리소설이 대중화된 것에서부터 출발한 이 이야기 중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메모가 수록되어 있다. 날짜와 연도별로 짤막하게 적혀 있지만 그의 메모습관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혹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볼 수 있어서, 왜 일본에서 마쓰모초 세이초의 작품이 매년 드라마화되고 추리소설계로부터 우상화 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책보단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작년에 방영된 <얼굴>이란 드라마가 충격적이어서, 원작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성별이 바뀌었다. 원작은 남자가 주인공이고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서로 뒤바뀐 성별이었지만 마지막에 보여지는 결말은 여전히 짜릿했다. 오히려 성별을 바꾸어 각본했기에 원작과 드라마 모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다지 기복이 크게 바뀌지 않는 잔잔한 배경의 드라마였지만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주인공의 심리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버렸던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보이는 범인은, 어떤 고뇌가 있었다. 그가 왜 사람을 죽여야만 했는지, 사람을 죽인 죗값을 왜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 마쓰모토 세이초는 한 인간을 통해 어떤 세계를 보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는 <모래 그릇>과 <검은 복음>, <3억엔 사건>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비록 나는 드라마로 그의 작품을 접했지만 <얼굴>이란 드라마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가 원작을 크게 각본했을 것 같지는 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2013년도에는 일본에서 미해결사건으로 남은 '3억엔 사건'에 대해 재조명한 드라마가 유독 많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나마 사실에 근접했고 가장 그럴싸한 추론을 보인 것만 같았다. 그가 대하는 작품의 방식은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어느 것 하나도 그저 흘러보내지 않는 섬세함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이 작가의 작품이라면 믿고 봐도 되겠다 여겼다.

 

바로 그런 때에, 북스피어에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세계를 담은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자교정을 모집한다기에 잽싸게 신청을 했고, 운 좋게 출판사까지 찾아가 날것 그대로의 원고와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이 책에는 <일본의 검은 안개>에 수록된 사건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런 기록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 범죄학의 대가인 표창원 교수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 함께 떠올랐는데, 내 안에 숨어 있던 범죄에 대한 흥미를 일깨웠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형사의 자취를 쫓아가듯, 사건을 찾아내고 기록했던 글들은 그가 사회에 숨겨진 이면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작품이 허구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의 검은 안개>와 <검은 수첩>을 보니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조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제 있었던 사실을 적었기에 그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을 읽고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런 '현실감'이었다. 언제 현실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범죄와 범죄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런 것은 지금 현실에서도 보여주고 있었기에 결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작년에 있었던 용인살인사건도 <모방범>을 읽고난 후 접하게 된 사건이라 무시무시하다고 느꼈다.

 

미스터리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유희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워준 건, 바로 이 사회파 미스터리다. 탐정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트릭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회를 꼬집는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스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정말 봐야할 미스터리는 바로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홈즈나 뒤팽과 같은 멋진 탐정이 있는 미스터리도 좋지만, 가끔은 경각심을 일깨워줄 사회파 미스터리도 찾아 읽어야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검은 안개>를 완독해야겠지. <검은 수첩>도 다시 재독해야겠다. 

 

한 번 더, 사회를 진득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