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다.
[밤새 알링턴파크엔 비가 내렸다.
구름은 서쪽에서 몰려왔다. 어두운 성당 같은 구름, 기계 같은 구름, 별빛만 있는 마른 하늘에 피어난 검은 꽃 같은 구름이 몰려왔다.]
이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을 것 같고, 이 구름은 더 짙어질 것 같군!

꽃 냄새, 음식 냄새, 왁스 냄새가 진동하는 그 거실에서 줄리엣은 새로운 깨달음, 삶은 본래 멋진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언젠가 과거에도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어느샌가 그 느낌은 사라져버렸다. - P24
선물 같은 그 하루 동안 줄리엣은 자신만의 은밀한 삶을 보충해야 했다. 그녀의 삶은 문학반 모임이 있는 금요일 오후라는 가느다란 실핏줄에 의존해 유지되고 있었다. - P32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바깥 풍경은 탁했다. 너무 탁하고 부질없었다. 비통함과 어울리는 풍경,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다른 감정은 조금도 깃들 수 없게 하는 풍경이었다. - P48
멜라니 바스의 음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목소리, 아주 고독하지만 힘이 있는 여자 목소리, 그건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노래를 듣고 있으니 줄리엣도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룩진 카펫이 깔린 이 작은 집을 벗어나고, 장보기에서도 벗어나고, 이 집의 상처받은 사람들과, 비에 젖은 회색 빛의 알링턴파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씁쓸함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자신의 몸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한 송이 꽃처럼 활짝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덜 복잡하고, 덜 답답한 곳을 찾아 자기 안에 모든 꽃잎을 활짝 열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P48
사실, 자신이 사랑해야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줄리엣은 남편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멀리서 남편을 바라볼 때는 쉽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햇빛 좋은 날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 P54
집안일들이 마치 뜨거운 기구에 실은 모래주머니 같아서, 하나씩 덜어 낼 때마다 몸이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 P59
어멘다는 테이블을 돌며 빈 커피잔을 채워주었다. 립스틱이 묻은 커피잔이 모두 그녀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 P92
그녀는 창밖의 정원을 내다봤다. 베드퍼드로드 너머로 보이는 다른 집들의 뒷벽은 배수관이나 전선, 혹은 아무렇게나 발라 놓은 모르타르때문에 항상 지저분해 보였다. 앞쪽에는 멋진 석조 장식도 있고, 덤불도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외지인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앞쪽만 보겠지만, 어맨다는 매일 지저분한 뒤쪽을 마주하고 살아야 했다. 왜 친밀해질수록 그렇게 약한 면이나 황폐한 면을 보이게 되는 걸까? 왜 제임스와 제시카, 에디를 돌보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친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이 남편의 때 묻은 속옷과, 배수구에 막힌 남편의 수염 뭉치, 그리고 아이들의 상실감뿐이란 말인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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