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진실의 외피를 둘러쓴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
...타인을 겨냥한 악의는 어쩌면 입구를 단단히 동여맨 풍선 같았다.
(...)
입술을 열면 예기치 못한 말들이 딸려나올까봐서 혀를 동그랗게 오므렸다.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말들을 작은 어금니로 오독오독 깨물었다. - P163

예술가로 타고난 영혼이라면 마땅히 그럴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친구는 없어도 괜찮다고 아이는 결심하고 있었다. 그 마음은 방패이자 과녁, 빌헬름 텔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 한 알처럼 딱딱했다. - P164

다희는 언제나처럼 단정적이고 단호한 투로 말했다. 내용이 무엇이든,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있는 순간에는 그 의견이 세상에서 가장 타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스스로가 하는 말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자만이 내뿜는 특유의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 P175

어느 보슬비 내리던 봄날, (...) 그때야말로 솔직히 털어놓기에 알맞은 순간이었노라고 이제야 그는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아득하게 멀어져 간다. 그것이 거짓말의 속성이었다. - P178

다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 세상이 아주 쉽고 단순한 질서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흰 스케치북 위에 4B연필로 반듯하게 내리그은 몇 개의 선들과, 그 사이사이에 듬성듬성 찍힌 소박한 작은 점들. 그리고 웬일인지 그 점들과 선들을 미치도록 수긍하고픈 심정이 된다. - 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