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투이《판사님》

˝다양성, 형평성, 이민・・・・・・ . 나는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미리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식기와 냅킨을 통해 한사람 한 사람의 경계가 그어진 식탁처럼 다룬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다 같이 하나뿐인 똑같은 향연을 다 함께 즐기고 있다고, 하나뿐인 똑같은 행성에서 다 함께 살고 있다고말이다.˝ -킴 투이


p269
[이어 우리는 마치 누군가의 소식을 싣고 바다로 던져지는 유리병처럼 베트남 땅을 떠났고, 말레이시아의 난민 수용소까지 갔다. 그곳에서도 과도기의 베트남에서와 똑같은 생활 방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말 것. 그 무엇도 마음에 담지 말 것.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느끼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갖지 않았다.]


오타와가 몬트리올, 토론토,퀘벡, 킹스턴 등의 경쟁을 물리친 것은 오로지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 사이에 위치한다는, 영어권과 프랑스어권 사람들에게 완벽한 절충안을 제공하는 중립적 장소라는 지리학적 여건 덕분이었다. 
오타와가 수도로 선정되는 것과 함께 캐나다의 중심을 이루는 기본 색이 정해졌다.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을 그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게 해 주면서 받아들이는, 힘주어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지해 주는, 그 어떤 것도 묶어 두지않으면서 균형을 만들어 주는 캐나다의 색.


오타와는 조화의 색조를 만들어 냈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평범함의 색조, 겸허함의 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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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퀘벡 지역에 수립된 영국령 식민지 ‘더캐나다스(The Canadas)‘는 세인트로인스강 상류의 어퍼캐나다(Upper Cana-da, Haut-Canada) 지역과 하류의 로어캐나다(Lower Canada.
Bas-Canada)로 나뉘었다. - P266

1975년과 1978년 사이에는 결혼식 날에 너무 많이 기뻐하는 것은 장례식 날에 너무 슬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애국적 행동이었다. 수학을 배울 때 아침과 저녁에 생포한 적군의 수가 아니라 파인애플과 바나나의 수로 덧셈 연습을하는 것은 반혁명적인 행동이었다.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은 반문화적 행동이었다. - P268

꿈은 삶이 되었고, 삶은 현실이 되었다. 충만하고 온전한 현재를 가능하게 하고, 한계 없고 과거로 돌아올 일 없는 미래를 가능하게 해 주는 현실이 되었다. - P274

캐나다 총독이 일어서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우리의 나라를, 우리의 모습을 잘 그려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십오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 들고 갔던 오래되고 망가진 여행 가방을, 바퀴가 마치 녹슨 풍향계처럼 삐그덕대며 잘 돌아가지 않는 가방을 아직 그대로 들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다른 가방으로 바꿀 마음이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캐나다의 얼굴이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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