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_편혜영

물속 골리앗_김애란

여자에게는 화원에서와 같은 뒤엉킨 꽃 냄새가 풍겼다. 



김은 화원을 인수하고 나서야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몇 가지 종류가 한데 뒤섞이면 금세 악취가 된다는 걸 실감했다. - P16

김은 장례식장의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입관하듯 선에 맞추어 차를 댔다. 



어두컴컴한 짐칸 안에서 화환이 옅은 국화 냄새를 풍기며 낮달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김은 짐칸으로 들어가 조화 옆에 누웠다. 등을 타고 찬 기운이 전해졌다. 어두운 곳에서 차고 딱딱한 곳에 누워 있자니 염을 기다리는시신이 된 기분이었다. - P23

김은 어둠에 모습을 감춘 국도 속으로 마라토너가 서서히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흔들리는 흰 점이 되어 차츰 작아져가다가 끝내 숨듯이 모습을 감췄다. 그 완전한 소멸은 오히려 어둠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도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일깨웠다.  - P28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 P35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게 자연이고자 했다. 예상하지 말라는 듯. 예고도 준비도 설명도 말며 납작 엎드려 있으라는 듯. - P48

관계자들은 진실을 쥔 손은 등뒤로 감춘 채 나머지 한 손으로 어색한 악수를 건네려 했다. - P59

살면서 그렇게 푸른 하늘은 본 적이 없었다. 파랑의 종류만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데, 그런 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인디고블루, 프러시안블루, 코발트블루, 네이비블루, 아쿠아마린, 스카이블루······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그건 어떤 파랑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완벽한 파랑이었다. 어디선가 ‘울트라마린 아니야?‘라고 대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게 뭔데?‘라고 물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옛날 화가들이 그린 기도서의 색깔이야‘라고 답했다. 나는 그게 무슨색인지 몰랐지만 ‘기도서의 색‘이라는 말만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내 불쾌해져 기도가 그렇게 푸를 리 없다고. 내가 아는 기도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색을 지녔다고 닳고 닳아 너절해진 더러운 색이라며 화를 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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