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배지를 단 남자는 이번에 매우 주의 깊게 체스를 둔 덕에 질버만보다 약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그러나 질버만 역시 온 신경을 쏟았다. 마치 이 시합에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는 듯 끈질기고 진지하게. - P80
"무척 예리하게 잘 드시는군요." 그의 목소리는 칭찬보다는 비난에 가까웠다. "나는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요." 질버만는 적의에 차서 거짓말을 했다.그는 이런 겸손한 말이 승자의 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래서 패자에게 더 많은 굴욕을 안겨주는 것임을 잘 알았다. 패자는 최소한 상대방이 전력을 다했다는 말을 들을 자격은 있지 않은가; - P81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이겼고 기차가 함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당원 배지를 단 남자는 여섯 번 패했다. ㆍ ㆍ ㆍ 둘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저 사람도 인간이야. 질버만은 기뻤다. 당원 배지를 달았지만, 분명 인간이었어. 어쩌면 모든 상황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닐지도 몰라. 체스에서 패배한 뒤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뻔뻔해지지도 않는 사람이라면, 강도짓을 하거나 누구를 때려 죽이기는 어렵지 질버만은 체스 승리에 힘을 얻고 역을 떠났다. 더는 자신을 도망자나 나약한 외톨이로 느끼지 않았다. 여전히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 P83
수첩은 뭔가 적을 때면 늘 옆에 있었고, 뭔가 찾을 때는 한 번도 없었다. - P94
아무리 기회가 주어진데도 올바른 행실을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야. 뒹굴 수 있는 진창이 보인다고 바로 돼지가 되어 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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