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시유~~~, 냅둬유~~~

[자연에서나 우리 삶에서나 꼴찌만 아니면 솟아날 구멍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_86




탁월한 고전학자 고미숙 박사에 따르면, 그 옛날 양명학을 공부하던 학자들은 인식과 실천이 분리된 게 아니라 하나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았다. 《전습록傳習錄》 2권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앎의 진정한 독실처篤實處가 곧 행行이요, 행함의 명각정찰처明覺精察處가 곧 앎이니, 앎과 행함의 공부는 분리할수 없다."  이는 곧 2013년 내가 제인 구달 Jane Goodall 박사와 함께 설립한 ‘생명다양성재단‘의 좌우명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표현한다"로 이어졌다. - P48

더 큰 문제는 저출생과 고령화가 불러올 세대 단절과 갈등이다. 앞에서 다룬 남녀 갈등은 때로 엄청나게 심각해질 수 있으나 종국에는 해소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남녀 사이에는 본능적인 끌림이 있어 어떻게든 화합의 길을 모색하기 마련이지만 세대 갈등은 영원히 평행선을 긋거나 점점 더 벌어져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  - P53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그는 주류 정치인들과 기득권층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자녀의 미래를 훔치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세대가 누린 만큼 미래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자연을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속 가능성 sustainability‘의 기본개념이다. 



환경이 진정 미래 세대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면 우리 세대는 채무자이고 미래 세대는 채권자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미래 세대가 미성년자이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지라 다들 어물쩍 넘어가는 듯하다. - P56

그들이 서로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를 파악하면 그들 행동의 의도와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평생 동물들의 대화를 엿듣느라 귀 기울인 연구자로서 나는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에 관해서도 나름 깊이 숙고해왔다. 오랜 숙고 끝에 얻은 결론은 싱겁기 짝이 없는것이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소통이란 조금만 노력하면 잘되리라 착각하며 산다.  - P64

미래는 창의성을 갈망하건만 학교에 가면 갈수록 창의력이 고갈되는 우리 교육의 역설과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놀이터에서 천방지축 뛰놀던 우리 아이들이 학교라는 거푸집을 거쳐 나오면 잘 깎여 한데 묶인 연필 자루들이 된다. 차이라고는 연필의 길이와 뾰족하거나 뭉툭한 정도일 뿐 놀랄 만치 균일한 제품들로 다듬어진다.  집단 창의성 collective creativity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하나의 잣대로 모든 걸 재는 상황에서는 다양성을기대하기 어렵다. 잣대가  다양해야 창의성이 돋아난다. - P73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 몰입할 때 나타난다.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
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 P75

곤충과 식물은 결코 호시탐탐 서로를 제거하려는 무차별적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게 아니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살아남았다. 평생 생물학자로 살며 깨달은 결론은 자연이란 손잡은 생물이 미처 손잡지 못한 것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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