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갈대>
[쇠는 빨갛게 달아올랐을 때 쳐야 한다. 꽃은 활짝 피었을 때 즐겨야 한다 나는 만성(晚成)의 예술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허접한 일본식 면도기로 수염을 밀고 있었다. 거울도 없이 어스름한 곳에서 침착하게 면도를 하고 있었다.
몇 천 번, 몇 만 번의 경험이 이 노인에게 거울도 없이 손으로 얼굴을 더듬으며 새로운 수염을 쓱쓱 미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렇게 쌓인 경험 앞에서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도저히 이길 도리가 없다. - P371
우리보다 마흔 번이나 많은 여름을 보냈고 마흔 번이나 많이 꽃구경을 했고 좌우지간 마흔 번은 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아 온 것이다. - P372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예컨대 체호프의 독자로서 그의 서간집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갈매기> 속 뜨리고린의 독백을 서간집 곳곳의 구석에서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 P376
무간나락
눌러도, 열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문이 세상에 있다. 지옥문조차 냉정하게 지난 단테도 이 문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 P391
갈대의 자계(戒)
첫째, 오직 세상만 바라보라. 자연 풍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을 자각할 때는 ‘내가 늙고 쇠약해졌구나‘라고 솔직하게 패배를 고백하라. 둘째, 같은 말을 두 번 되풀이해 입 밖으로 내지 마라. 셋째, ‘아직 멀었다‘ - P396
나의 댄디즘
‘브루투스, 너마저.‘ 인간, 이러한 쓴맛을 보지 않은 이가 과거,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이는, 일생에서 중대한 순간에 반드시 자신의 얼굴에 더러운 돌을 던진다. 퍽 하고 던진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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