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숨을 들이쉬어도 공기는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것도 입이나 코가 아니라 가슴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그곳으로스며드는 듯한 느낌이다. ㆍㆍㆍ관자놀이에서 혈관이 무슨 생각이라도 떠올랐다는 듯 팔딱팔딱 떨어댄다. - P23
눈앞으로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안개가 흘러가고 머리가 무겁고 멍해졌다. 손발을 천천히 움직이자 관절에 기름칠을 한 듯, 미끌미끌한 기름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를 잊어간다. 몸에서 온갖 것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내가 인형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방은 달콤한 공기로 가득 차고 연기가 폐를 마구 긁는다.내가 인형이라는 감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놈들 생각대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최고로 행복한 노예다. - P79
썩어버린 시체에서 피어나는 발진처럼, 불어나는 암세포의 혈장처럼 꽃이 피었다. 하얀 천처럼 흔들리는 벽을 배경으로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바람에 날려 오르기도 하면서. - P100
비가 피부를 찌른다. 냉동고에 매달린 채 얼어붙어 껍질이 다벗겨진 내 살에 철봉이 관통하듯이 비가 피부를 찌른다. - P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