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오토코와 마을 남자 사이의 그런 거래를 묵시默市라 부른다고 한다.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묵시가 조금도 신기한 일이아니란 것을 나도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다. 숲 근처에 산다는 것은 그런 사람, 예를 들어 나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에게 얼마간위안이 된다. 숲에 많은 것을 버렸지만 버린 것이 아니라 다른세계로 놓아준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숲의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집착하고, 그리워한다. 한편 지금도 숲에서 늘어나고 있는 동물들은 숲 밖의 인간세계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다. 적어도 숲에서 뭔가 튀어나와 사람을 덮쳤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어떤 형태로든 묵시가 숲 안쪽과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 아이들도 어쩌면 숲의 고양이들과 정말로 거래를 시작했을지모른다. - P29

사진 왼쪽에 ‘카우라‘라는 글자가 보인다. 팻말에 적힌 것이다. 통나무를 삼각뿔 모양으로 쌓고 나무껍질로 전체를 덮은 오로크족‘의 여름 집을 그들은 카우라라고 부른다. 아이들 여름방학에 홋카이도로 여행을 갔을 때 한 개인박물관에 들렀다. 자카도프니란 이름의 박물관이었다. 소중한 것을 간직해두는 곳이라는 뜻으로, 밭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아담하고 청결한 건물이 서 있고 입구에 카우라가 세워져 있었다. 오로크족은 견고한 집에서 겨울을 나고 사냥철인 여름에는 사냥터의 단출한 오두막으로 옮겨가 사냥을 하며 한 해를 보낸다고 했다. - P149

아무런 추억도 연고도 없는 곳에 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은그 반대였어. 멀리 떠나오니 도쿄는 이제 시간이 멈춘 공간이 되어서, 시간 속에서 잊혀야 할 추억이 오히려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되살아나 귀신처럼 계속.
se - P207

D선생님의 외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보낸 너무도 짧은 시간을 새삼 정확한 날짜로 확인하니 한 젊은 여자의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져 그가 아무런 인연도 없는 다른 시대의 외국인 같지가 않았다. 얼마나 밝게 웃고 이야기하고, 햇살에 기뻐하고 비를 즐겼을까. 노랗게 물든 잎들에 탄성을 지르고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이 멋진 세상을 이토록 빨리 떠나야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믿기 힘들었을까. 마치, 여섯 살에 세상을떠난 내 아이처럼, 다른 모든 죽은 이처럼. - P232

우리 셋은 막막할 정도의 고요속에 앉아 있었다. 정면에 영사막처럼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었다. 커튼도 달지 않은 창은 바깥의 어둠을 잊지 말라는 듯 안으로 불러들였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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