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너의 여름은?

기상관측기록을 매일 매일 갱신하는 폭염으로 숨막히는 도시와 사람들은 유리 볼 안에서 하얀 눈이 흩날리는 겨울을
나는 유리 볼 밖에서 이글이글 지글지글 불타는 여름을
지구상에서 유리遊離되어
유리琉璃bowl 밖 여름을 憧憬한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펀드는 듯했다. - P21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그런 소문은 
귀에 잘들어왔다. 이수는 자기 근황도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있었다.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그 자식 공부 잘했는데. 그러니까 걔가 그렇게 될줄 어떻게 알았어. 
인생 길게 봐야 하나봐. 누구는 벌써 부장 달았던데. 걔가 잘 풀릴 줄 아무도 몰랐잖아. 동일한 출발선을 돌아본뒤 교훈을 찾고 줄거리를 복기할 입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색한침묵이 돌면 금방 다른 화제를 찾아내겠지. - P92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 P173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 P182

나는 어떤 시간이 내 안에 통째로 들어온 걸 알았다.
그리고 그걸 매일매일 구체적으로 고통스럽게 감각해야 한다는것도 피부 위 허물이 새살처럼 계속 돋아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그건 마치 ‘죽음‘ 위에서, 다른 건 몰라도 ‘죽음‘만은 계속 피어날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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