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 김병연에겐 詩가 있고
고산 김정호에게는 地圖가 있다.
실사구시의, 이용후생의, 경세치용의 실학자

무릇 지도란 판별이 쉽고 품기가 간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쓰임에서 가치가 없다면 모든 작업이 다 도로에 지나지 않는다. ㆍ ㆍ ㆍ 그에게 있어 지도란 저울과 같다. 사람살이의 저울이요 세상살이의 균형추요 생사갈림의 나침반이다. 손쉽게 땅의 요긴함과 해로움을 알아보게 하고, 완만한것과 급한 것. 너른 것과 좁은 것, 먼 것과 가까운 것을 미리 분별하게 할 뿐 아니라, 시기를 살펴 위급할 때엔 가히 생사를 손바닥처럼 뒤집을 수 있으니 어찌 이것을 만민의 저울이라 하지는 않겠는가 - P16
실사구시의 자세가 가장 필요한 것이 지리학이요. 지도 제작이라 할 수 있네." ㆍ ㆍ ㆍ 고산자의 대동여지도는 그런 면에서 획기적이라할 것이네. 축척과 방위가 놀랄 만큼 정확하고 실증적이라 그 말일세. 게다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알아보기 쉬운 그 기호들좀 봐. 놀랍게 과학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 실학정신의 기본이란 이런 것일세." - P195
"저는...감히 말씀드리지만,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기 위한지도를 그리고자 합니다. 이용후생입지요. 제 선친께서 일찍이실제와 다른 지도로 억울하게 작고하셨습니다. 관아에서 내준 지도였어요. 지도란 사람살이의 흥망은 물론이고 목숨줄이 달려있는 겁니다. 대마도가 역사적으로 우리 강토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적으로는 나도 대마도, 우리 땅이라 하고싶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적 이상이나 정치적인 목적, 판단은 제소임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시 말해 대마도를 우리 강토로 그려내도록 하는 일은, 여기 계신 대감 같은 분의 소임이지요." - P196
발
이해 저해 해가 가고 또 끝없이 가네 이날 저날 날이 가고 또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달이 왔다 또 가고 나니 하늘의 시간과 사람 일이 다 이 가운데 있네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_난고 김병연, 「是是非非詩」 - P209
"이제, 바람이..... 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내몸 안에 지도로 새겨넣을까 하이, 오랜.....옛산이 되고 나면 그 길이 보일걸세. 허헛. 내 처음부터 그리고 싶었던 지도가 사실은 그것이었네. 그 동안 자네 신세가 많았어." ㆍ ㆍ 돛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다. 좋은 바람이다. 물 위의 길은 바람에 따라 생겨나고 바람 끝을 따라 또한 이내 지워진다. 그는 뱃전에 서서 삽시간에 멀어지는 마포나루를 본다. 햇빛이 투명하고 한없이 희다.
이후, 그를 보았다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아무도 없다. - P347
다만 나라가 망하고도 그가 믿었던 유장한 강과 우뚝한 산은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무궁한 것은, 훗날 그 강토에서 사는 사람들이 본 그대로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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