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어지간하고 웬만한 감독이라도 원작만큼 그 의도와 행간의 함의를 영상에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보통 책이 먼저 나오고 영화화되면 십중팔구 영화가 원작에 미치지 못해 실망을 하게 되거나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면 부분영상과 함께 깊이를 더해 더 감동을 받게 된다.
꼭 그렇다기보다 대체로 그렇다는 거다.
2018년 8월 8일 《좀도둑 가족》책이 발간되었고
어쩌다 8 월 9일 영화《어느 가족》을 먼저봤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오래 울었고 영화에 대한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었다.
감독도 작가도 마침표를 찍지 않고 관객과 독자들에게 ‘이것이 가족이다‘라고 정의하지 않고 물음표를 던져 놓고 있다.
영화를 보고 원작소설을 읽었다.
영화를 두 번 본 것과 같다.
소설을 두 번 읽은 것이다.
감독이자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의도와 함의가 고스란이 농축되어
영화와 소설의 차이는 번역의 차이뿐이다.
[그들이 훔친 것은 함께한 시간뿐이다]

린은 회의실 의자에 앉아, 건네받은 종이에 파란색 크레용으로 바다를 그렸다.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에서 갈색 머리의 린과 쇼타, 노부요. 아키 그리고 수염을 기른 오사무가 웃으며 손을 잡고 있었다. 미야베와 마에조노는 오렌지주스를 들고 들어와 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림을 들여다보며 미야베가 먼저 말을 건넸다. ㆍ ㆍ ㆍ "우아, 색이 참 예쁘네." ㆍ ㆍ ㆍ "날씨가 좋았구나." 린의 그림에는 새빨간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 P216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어요" 노부요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한 법이에요." "엄마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뿐이잖아요." "네?" 무슨 말이 하고 싶나요, 라고 묻듯 미야베는 노부요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낳으면 다 엄마가 되나요?" "낳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죠" ㆍ ㆍ ㆍ
"부러웠나요? 그래서 유괴했나요?"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노부요는 생각했다. "증오했는지도 몰라요・・・・・・ 엄마를." 노부요는 자기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엄마인 체하며 딸의 인생을 지배하더니 결국 딸을 버린.... - P234
"두 아이는 당신을 뭐라고 불렀나요?" 미야베는 알아듣기 쉬운 말에 가시를 세워 물었다. 노부요는 말이 없었다. "엄마? 어머니?" 그런 식으로 부를 리 없다. 이 여자가 그렇게 불릴 자격이있을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미야베는 질문을 거듭했다. 노부요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쇼타에게도 말했다. 하지만 막상 질문을 받으니 그때와는 다른 감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는 분명 엄마였다. 욕실에서 내 화상 흉터를 쓰다듬어주던 손길, 옷을 태우면서 한 포옹,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 바닷가에서 잡은 작은 손.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 아이에게 ‘엄마‘라고도 ‘어머니‘라고도 불리지 못하리라. 모든 것을 이해한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 P235
쇼타는 모자를 눌러쓴 채 고집스럽게뒤를 보지 않았다. 뒤돌아 손을 흔들면 분명 오사무가 더 슬퍼할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버스를 뒤쫓던 오사무의 의지는 신호를 세 개지났을 무렵 말끔히 사그라들었다. 그때까지 기다린 뒤 쇼타는 드디어 창밖을 돌아보았다. 등 뒤로 눈이 남아 있는 포장도로의 가로수가 흘러갔다. "...... 아빠......" 쇼타는 입속으로, 처음으로 그렇게 불러보았다. 버스를 뒤쫓던 오사무는 멈춰 서서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거대함을 깨닫고 목 놓아 울었다. 오사무는이제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누구도 그를 기다리고 있지않았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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