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
박문희 지음 / 보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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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박문희 선생님께서 쓰신 이 책은 기존의 교육에 대한 정의를 무너뜨리는 아주 독특한 책이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사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 아이중심 교육이라 할지라고 그 설계자는 교사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든 교육내용의 입장에서 출발하든 교육의 가장 현실적인 부분인 수업의 최종 설계자이자 결정자는 바로 교사다.

 

또한 교사에게는 가르쳐야할 것들이 있다. 이른바 국가교육과정, 교사들은 이것을 재구성하여 수업을 구상한다. 그 목표는 당연히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성취수준에 아이들을 도달시키는 데 있다. 비록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활동을 구성하고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할지라도 교사가 설정한 테두리에 벗어나는 것은 결국 허락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성취수준 도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의 활동과 참여는 보장되는 것이다.

 

조금 부정적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다. 만약 이러한 성취수준과 목적, 교육과정이 없다면 뭐하러 국가가 그 많은 돈을 들여서 공교육을 지원하겠는가? 또한 선생이란 말의 뜻처럼 먼저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이 배워야할 내용을 미리 설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효율적인 일이다. 그 방향에 의견이 분분할 수는 있겠지만 교사가 배울 내용을 미리 정하고 그 방법을 고안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할 경우 100% 아동이 중심이 되는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아동이 배움의 주체라면 우리는 아동이 온전히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계속 말했듯이 이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아동이 뭘 배워야하는지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 그럴 능력은 있는지, 또한 그렇다고 할 경우 왜 국가, 사회가 지원을 해야는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된다. 때문에 이런 교육을 펼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무게는 보통이 아닌 것이고 아직 난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박문희 선생님은 그 무게를 감당하고 또 이를 즐거워하시는 분인 것 같다.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책에서 느끼는 모습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어주는 자애로운 교사, 그 자체다. 이 분 역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의 영향을 받으신 분으로 마주이야기라는 독특한 교육브랜드를 만드셨다. 책에서 느끼는 바는 마주이야기라기 보다는 가급적 어른은 말을 삼가고 아이들이 말하게 하자에 가까운 것 같지만 어른과 아이의 권력관계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유치원 아이들의 재치 있으면서도 어른들은 생각하기 힘든 말글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이런 말글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글쓰기 교육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생님의 교실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심지어 급식식단조차도 유치원에서 정하지 않는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자신의 주장을 현실에서 올곧게 실천하는 데 여기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존 홀트가 지은 책이 떠올랐다. 읽다가 지루해서 중단한 그 책은 아이들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그 과정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온다. 나는 너무 일관적인 내용에 질려서 그만 읽기는 했지만 언젠가 다시 펼쳐봐야 할 책이다. 아이들의 가능성과 그 배움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와 같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이 초등학교에서도 가능한지 의문은 든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박문희 선생님 책이나 존 홀트 책이나 초등학교 이전의 아이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공교육 체제 하에서의 교사들이 가질만한 고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박문희 선생님이야 유치원 교사이니 당연한 일이고 존 홀트 역시 간혹 초등학생 이야기가 등장할 뿐 대다수 우리나라 유치원 시기의 아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볼 때 이 교육을 초등학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일단 유치원도 국가교육과정이 있긴 하지만 초등학교처럼 엄격하지는 않다. 초등학교는 교과와 학년이라는 분리된 개념들이 있기에 교사가 마음대로 움직일 여지가 유치원보다는 적다. 무엇보다 가르쳐야할 내용이 대략적이나마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마주이야기 내용 자체를 교육과정으로 삼는다는 박문희 선생님의 교육은 들어설 곳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교육이란 결국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글쓰기가 되도록 꾸미는 교육을 해서는 곤란하지만 보편적인 격식을 차리는 것 정도는 훈련이 필요하다. 또한 스승이란 본이 되는 존재다. 아이들에게 배워할 것도 있겠지만 아이들 역시 교사를 배워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교사라는 존재가 있을 필요가 없으며 교대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교사를 양성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성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주변 친구들이 젓가락질 하는 것을 보고 내 습관을 한 번에 바꿨던 경험이 있는지라 또래가 가장 좋은 교사라는 주장에 공감이 되긴 하지만, 동시에 별로 좋지 못한 것을 한 번에 배웠던 것도 또래라는 점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숙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끼리 대화 나누고 살아가면서 배운다는 것은 유치원 수준 또는 초등학교 1, 2년 수준에서나 가능한 것 아닐까? 높은 성장을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노력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동시에 아이들에게 해줘야할 말이 있다면 마땅히 해줘야 할 것이다.

 

마주이야기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 이야기를 줄이는 노력은 필요할 것 같다. 공자나 석가 같은 성현들도 말을 많이 한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더욱 낮아지려는 노력은 필요하겠다. 배워야할 내용 역시 아이들이 직접 골라볼 수 있도록 한 번 해봐야겠다. 요즘 감기기운이 도져서 여력이 부족하지만 한 번 쯤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한 번으로 그칠 것 같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 역시 배우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책은 꽤나 부담스럽다. 좋은 것을 알겠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 그렇다. 그러나 그래서 읽을 가치가 있었다. 이전에 읽은 책으로 행복한 교실 이야기에 나오는 글을 통한 소통이 초등학교 판 마주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다음에는 글을 통한 소통이 있는 책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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