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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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구조

  이 책은 리 마커스 보츠라는 아이가 헨쇼라는 동화 작가에게 편지를 쓴 후 받은 답장에 있는 10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마치 글쓰기 치료과정을 보는 듯싶지만 이 책은 주인공의 내면을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깊은 감명을 던져준다.

  주인공의 내면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는 1인칭 또는 전지적 시점을 사용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1인칭 시점을 사용하였으며 특이하게도 편지일기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리 보츠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보여준다. 편지라는 형식과 1인칭 시점이 아주 잘 어우러져 감동을 주었다.

  처음에는 헨쇼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노란색 페이지)형식으로 나중에는 편지 형식의 일기(하얀색 페이지)에서 일반적인 일기 형식(하얀색 페이지)으로 바뀌는데(81, 리 보츠는 자신의 생각을 종이 위에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니 굳이 편지처럼 일기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리 보츠가 헨쇼 선생님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에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외로움과 돌봄

  리 보츠의 부모님은 현재 이혼한 상태이다. 이 책에서 리 보츠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계속 표현하고 있으며 외롭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67, 53. 53쪽은 엄마의 말이다)

  이 책에서 리 보츠는 중반까지 외로운 소년으로 어머니하고 대화하는 거 외에 친구와 대화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왜 이 소년이 이렇게 외롭게 지내는지는 정확하게 추측할 수 없지만 아버지의 부재가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우리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집에 없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보통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리 보츠의 경우 부모가 싸워서 헤어진 것은 아니고 둘 다 애정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좀 다르지만 대개의 경우 부부가 이혼할 때는 큰 싸움이 있기 마련이고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다.

  거기에 이혼 후의 부모 중 한 명의 부재는 상처를 더욱 아리게 만든다.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관심을 받고 있는 존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언을 해줘도 한계가 있는 것이 바로 아이들은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중에서도 리 보츠는 아빠가 통화가 끝날 때 작별인사로 엄마 잘 도와드리고 말 잘 들어라. 애야!” 하는 식의 말이 짜증이 난다고 말한다. 왜 아빠는 자신이 보고 싶다고 말하거나 자기 이름을 부르지 않는지 의문을 표한다.(33, 77)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고상한 말이나 지시, 충고 따위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행위도 필요하겠지만 그런 원론적 이야기는 한두 번으로 끝내야 한다. 매일 들으면 지겨운 그런 이야기보다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심이 필요하다.(42. 리 보츠는 자신한테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준다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해답이 있는 것 같다.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현실에서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는 이제 학교가 회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물론 학교의 존재 의의는 교육이다. 보살핌 또는 돌봄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무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은가 싶다.

  그 고민에 답을 던져줄 만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프리들리 아저씨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인 프리들리 아저씨는 리 보츠의 표현에 따르면 공평하고 너그럽고 자상한 분이다. 담임 교사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고 특별히 좋아하는 선생님도 없다는 리 보츠가 좋아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유일한 인물이다. 선생님보다 학교를 관리하는 아저씨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리 보츠의 이야기에서 돌봄이라는 것도 교사가 가져야할 덕목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배려와 관계

  글을 잘 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잘 듣기라고 리 보츠는 말한다. 동감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많이 읽고 생각하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이 채워지게 되면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좋은 문장이 나오게 된다고 한다.

  ‘잘 듣기는 경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꼭 좋은 글을 떠나서 삶의 기본적인 태도로 삼을 만하다.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표현이다. 가정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이 둘이 처음 만날 때는 뜨거운 열정으로 사소한 결점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없고 있다하더라도 무시한다. 그러나 감정만으로 결혼생활이 유지될 수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이라도 3년이 지나면 식는다는 속설처럼,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라는 말처럼 애정만 가지고 가정이 유지될 수는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리 보츠의 부모도 어렸을 때 뜨거운 감정에 치우쳐 결혼을 했지만 결국 현실상의 문제 때문에 헤어지게 된 경우다. 지금도 애정은 남아있지만 리 보츠의 엄마는 다시 합치는 것에 회의적이다. 결혼 생활의 유지를 위해서는 현실에서 부딪히게 되는 타자의 문제를 의식해야 한다. 나와 통하는 나의 파트너가 아닌 나와 다른 존중받아야 할 타자임을 인식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배려일 것이다.

  오늘날 가족이 해체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배려가 부족한 것, 즉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상대방을 말을 들을 것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야릴 수 있으므로 가족의 해체까지 이어지지 않게 된다. 리 보츠의 부모가 서로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선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빠 쪽이 더 큰 문제가 있다.

  리 보츠의 엄마는 아빠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하지만 동시에 왜 아빠랑 다시 결혼하지 않느냐는 리의 질문에 네 아빠는 결코 어른이 되지 않을 테니까(123)라고 답한다. 여기서 어른이란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 속한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른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나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만 차리고 유치하게 살아가는 많은 어른들을 안다. 반면 어린나이에도 철이 들어 자기 동생들을 잘 돌보는 어린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교사는 자신도 물론이려니와 학생들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책임과 배려는 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vs공동체 의식

  그러 리 보츠네 가족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개인의 자유와 가족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배려가 아쉽지만 리 보츠의 아빠가 트럭을 좋아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문제가 될 것은 아니다.(69, 72) 오히려 그의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데 있다.

  무한정한 자유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지만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 한 부분이 제한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 보츠의 아빠처럼 가정을 이룬 남자라면 과거 자신의 생활패턴을 계속해나갈 자유는 제한된다. 하지만 리 보츠의 아빠는 자신의 파트너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였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는 공동체의 파괴였다.

  역으로 공동체의 일원이 됨으로서 누릴 수 있게 되는 자유도 있긴 하다. 만약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치자. 그 사람은 대기업이라는 공동체에 속함으로서 자신의 생활패턴을 고쳐야 할 수도 있고 시간에 쫓겨 자신의 취미를 누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면 대기업이라는 공동체에 기대어 만약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고 원하던 것을 쟁취할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집단은 필연적으로 긴장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드문 확률로 개인과 공동체가 딱 맞아 떨어져 이러한 긴장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공동체 집단에 자신을 맞추느라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역으로 공동체 집단에 속했다는 사실만으로 누리지 못할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공동체 집단에 의한 자유의 제한은 최소한으로 국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한다는데 있다. 공동체 집단의 목적에 필요하지도 않음에도 불구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 집단에 의한 개인의 자유 제한은 인정되지만 그 제한은 최소한으로 국한되어야 하다 볼 수 있다.

 

 

마음과 표현

  책 96~7쪽을 보면 리 보츠는 아빠의 편지에 분노를 표한다. 엄마의 말처럼 아빠가 아이스크림으로 산적을 잃어버린 일을 퉁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산적을 소중한 친구로 생각하는 리 보츠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공자는 한 마음은 로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에게 란 문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그 사회 구성원 공용의 것이다. 리 보츠의 아빠는 표현이 서툴렀고 리 보츠가 동의할 수 없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자신만의 표현 방법은 자신에게나 옳은 것이다. 타인에 휘둘려 자신을 잃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가 되겠다.

 

 

회복적 정의

  이야기 전체의 한 축을 차지하는 사건이 리 보츠의 도시락에 있는 맛있는 음식이 사라지는 일이다. 리 보츠는 계속해서 이에 대해 화가 난다고 표현하고 이를 막기 위해 도난방지장치를 만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도둑이 누군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최근에 흉악한 범죄사건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범죄의 정도에 따라 처벌의 강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이러한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사형을 집행하는 미국 텍사스 중의 범죄율이 순위권이라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강력한 처벌보다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 분위기, 경제구조가 범죄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학교마다 담당경찰 배치, 학교폭력위원회 기구 조직 등 대책이 수립되고 있지만 이는 한계가 있고 여전히 학교폭력은 큰 문제다. 때문에 회복적 정의라는 말이 대두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생각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지라 확언하기 힘들지만 기존과는 다른 범죄에 대한 대응방식으로 기대가 크다. 또한 학교 차원에서는 생활지도와 연관시켜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듯하다.

 

 

좋은 글이란?

  리 보츠는 안젤라 배저(소녀들이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에서 그가 쓴 <아빠 트럭을 탄 날>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리는 여기서 결국 이야기로 꾸미지는 못했다며 자신을 낮추지만 안젤라 배저 작가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고 네 자신 그대로, 가장 너답게 글을 썼다며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안젤라 배저 작가의 격려는 이오덕 선생의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수사와 화려한 언변으로 가득찬 글이 아니라 아이의 삶에서 아이답게 쓴 글을 더 높이 평가했던 이오덕 선생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맞다. 글은 작가의 분신이다. 작가 그 자신은 아닐지 몰라도 글은 작가의 삶에서 나온다. 어떤 형식과 사회의 시선에 맞춘 글을 상업성이 우수하다 평할 수는 있어도 좋은 글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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