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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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카모메 식당>,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로 배 속과 마음속 모두 따뜻하게 채워준 일본 작가 무레 요코의 신작 소설집이다. 다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엔, 어느 날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 다섯 가구에 개나 고양이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아이 없는 부부에게 간택된 길고양이, 황혼 이혼 후 남겨진 남자에게 찾아온 개, 부모님이 떠난 뒤 사이가 어색해진 중년 자매의 집에 방문한 고양이 등의 다섯 가지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웃기고 귀엽고 괴상해 웃음을 유발한다. 한편, 반려동물과 나이 들어가는 것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아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표제작인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아이 없는 부부 모토코와 쓰요시가 길고양이들과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결혼 후 노후의 외로움을 걱정하며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지닌 주변 사람들 속에서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아온 예순 여섯살의 부부 모토코와 쓰요시의 일상이 따스하게 전해져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겉으로는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고양이들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반복하고 다시 새로운 인연의 고양이와 살아가면서 노년의 나이가 된 부부는 슬픔과 불안의 감정에서 나아가 나아가 현재의 행복과 사랑을 충만하게 느끼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동물은 인간만큼 생사를 깊이 생각하며 살지 않아. 물론 그 아이들도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죽음에 한해서는 담백해. 인간이 너무 슬퍼하면 떠난 동물들이 곤란하니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했던 기억을 많이 떠올리는 게 좋아."

"쓰요시가 주걱을 내려놓고 루루를 뒤에서 안았다. 모토코가 앞에 앉은 쓰요시를 바라보며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오코노미야키. 이러다 타겠어'라고 마음의 소리를 보냈으나, 쓰요시는 표정 하나 꿈틀하지 않는 루루를 언제까지나 꼭 끌어안고 있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홀아비와 멍멍이'는 황혼 이혼 후 남겨진 남자에게 찾아온 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의욕적이고 능력이 뛰어난 아내와 맞벌이를 하다가 쉰다섯 살에 이혼한 남자 고지는 예순 살이다. 고지는 어느 날 우연히 유기견 란을 만나서 함께 살게 되면서 전처와 아이에게 개에게 했던 다정한 말과 행동들을 하지 않았던 사실을 깨닫는다. 개를 만나면서 일상이 행복으로 변화하며 과거의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남자 고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이, 삼등신 밖에 안 되는 강아지들이 종종거리며 란을 따라 돌아다니고, 하품을 하나 싶더니 어느새 까무룩 잠들고, 젖도 안 나오는데 고지의 손가락을 쪽쪽 빨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아랫배에서부터 차올라 가슴이 울컥했다. 행복이 바로 어떤 감정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은 기분이었다."

""많이 힘들었지. 편하게 쉬렴."

말을 걸자, 란이 앏은 이불 위에 둥글게 몸을 말았다. 익숙하지 않은 병원의 우리 속에서는 편하게 자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전처에게는 이런 말도 건네본 적 없었다고 또다시 생각했다. 보통은 아내와 자식에게 할 말을 고지는 지금 개들에게 한다. 이 아이들은 이렇게 배려심 가득한 말을 하려고 고지 곁에 와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중년 자매와 고양이'는 부모님이 떠난 뒤 사이가 어색해진 중년 자매의 집에 방문한 고양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촉탁직으로 회사에 다니는 예순여섯 살 언니 히로코와 쉰 살에 조기 퇴직해 부모님을 간병했던 동생 히토미가 이웃 할머니의 강아지와 그 집을 드나들던 길고양이와 함께 생활한다. '중년 자매와 고양이'는 중년자매 히로코와 히토미가 부모의 오래된 모조 주택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라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즐거움과 갈등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의 네 번째 에피소드 '노모와 다섯 마리 고양이님'은 여든 다섯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섯 마리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일흔 살 노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딸 유미코는 어머니가 전근대적인 아버지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유미코는 노모가 자신에게 해주지 않았단 다정한 말을 건내는 모습을 바라보고, 모아둔 비상금으로 고양이를 위해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을 걱정하며 화해를 하지 못하고 집을 나선다. '노모와 다섯 마리 고양이님'는 새끼 고양이를 키우는 노모가 나이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딸의 걱정과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신이 원하는 살아가는 노모의 행복이 대비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한편, 집 안은 새끼 고양이들이 온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집이 조금이라도 어수선한 걸 싫어했던 아버지는 장지에 바른 청호지가 조금만 찢어져도 빨리 고치라며 엄마를 나무랐다. 그래서 장지에는 늘 창호지가 빳빳하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장지 상태는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종이가 쫙쫙 찢어져서 제대로 붙은 곳이 없었다. 게다가 고양이들이 찢어진 곳을 재미있어하며 드나들면서 구멍을 키웠다."

이 책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나이 차 나는 부부와 멍멍이와 고양이'는 예순여섯 살 사토코와 마흔여덟 살 남편 오사무가 요양원으로 가게된 이웃 할머니의 강아지와 그 집을 드나들던 고양이를 키우는 과정을 담아낸다. 사토코는 쉰 살에 노름판에 돈을 마구 쓰는 남편과 헤어지고, 상점가의 길고양이의 죽음을 보고 어린 아이처럼 울던 오사무를 바라보고 감정의 변화를 느끼며 사실혼 관계가 된 지 삼년이 되었다.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며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사토코와 오사무의 이야기가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천진난만하고 무방비하게 내 천 자로 잠든 인간, 개, 고양이를 보니 분노는 곧 포기 섞인 한숨으로 바뀌었다. 오상수의 몸에는 담요, 타로와 하나코에게는 배가 차가위지지 않도록 손수건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셋은 깨지 않는다.

'절대로 안 일어나겠네......'

사토코는 방 한쪽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셋이 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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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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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노인의 죽음을 통한 남은 자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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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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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 우산을 쓰고 가다>는 <냉정과 열정 사이><도쿄 타워> 등의 작품으로 사랑받은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평 소설이다. 이 책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엮어 전개한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여러 인물들의 삶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특히 이 책은 팬데믹 시대를 반영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생생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섣달 그믐 날 밤, 호텔에 모인 세 명의 노인. 그들은 함께했던 시간을 더듬으며 회상하고, 엽총으로 함께 목숨을 끊는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 노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가까운 가족이어도, 친구여도, 지인이어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계기고 남겨진 자들의 평범했던 일상이 뜻하지 않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에 혼란이 찾아들고, 살아 있는 자들의 일상이 세 노인의 죽음 위에 켜켜이 쌓인다. 연락이 끊겼던 가족들이 다시 이어지고, 낯선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는 등 각자의 등장인물들에게 낯섦의 순간들이 파고든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서는 본인의 죽음 앞에 선 세 노인들과 타인의 죽음 뒤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는 세 노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는 죽음이라는 상실 이후에 가족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친구나 지인이지만 떠난 사람의 상처를 제대로 알지 못한채, 각자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안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일상의 생활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여주어 인상적이다.

"체념. 어느 시기부터 아버지한테서 그게 느껴졌다. 혼자서 산속으로 이주해 버린 것도 그 체념과 관련 있었을 테고, 인간보다 고양이니 염소니 작은 새와 같은 동물에게 더 애정을 쏟았다. 익숙지 않은 육체노동과 이웃 간의 교류는 생각대로 되지 않은 적도 많았을 게 틀림없으련만 고집스럽게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요 자신이 최근 들어 그 체념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딸에게 있어 자신이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아님을 깨닫고 있으며 아내에게 있어 이상적인 남편과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작년에 임원이 되었기에 정년이 연장되고 사무실도 건물 맨 위층으로 옮기게 되었지만 최근엔 일이라고 하면 회의와 회식 뿐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고 나서 앞으로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누나한테 날짜와 시간을 듣고도 장례 참석은 보이콧했다. 누나가 '치사코 씨'라고 부르는 외할머니를 나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까닭은 누나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며 나는 누나에게 부채가 있다. 수많은 언쟁, 수많은 역성, 친할머니 집에서 누나는 명백히 부당한 꼴을 당했고 어린 나이었음에도 나는 그것을 알아 차리고 있었다. 알아차렸으면서 모르는 척했다. 분란이 잦았다. 새로운 생활에 순응하려 들지 않는 누나를 마음속 어딘가에서 비난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앉아 열차 안의 사람들을 무심코 보고 있는데 전철을 타고 있을 대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살짝 걸터앉아 장신을 구부리듯이 웅크린 채 책을 봤다. 어딜 가든 늘 책을 갖고 다녔다. 식구들끼리 외출해도 마치 자신만 남 같은 얼굴을 하고서 이내 책을 펼쳤다. 오빠에게나 미도리에게나 자상한 아버지였고 미도리가 기억하는 한 아내에 대해서도 애정이 깊은 남편이었지만 그것들은 전부 집 안에서의 기억이며 인상이었다. 집 밖에서의 아버지를 나는 얼마만큼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속이 술렁거렸다. 아버지를 자신들 가족의 것이라 여겼다."

"예를 들어 마당에 심은 구근 하나가 올해 처음 꽃을 피운 것을 발견했을 때라든지 슈퍼마켓에서 장을 다 보고 바깥에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을 때 혹은 우연히 탄 택시의 운전기사의 느낌이 좋지 않았을 때 갑자기 세상이 아버지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감각에 휩싸인다. 그 감각은 손에 닿을 듯이 생생하고 세상 그 자체와 맞먹을 만큼 거대해서 미도리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러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눈물이 터져 나온다."

<혼자서 종이 우산을 쓰고 가다>에서 죽음을 선택한 시노다 간지, 시세모리 츠토무, 미야시타 치사코라는 세 인물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끝나면 남아 있는 것은 각기 다른 세 가지 죽음이다. 에쿠니 가오리 작가는 세 노인이 함께 삶을 끝내기 위해 모이는 과정에서 죽음을 통해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독자에게 전한다.

"예전과 같다고 세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간단히 옛날로 돌아와 버린 것 같다고. 실제로는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상실, 수많은 종언, 정말이지 자신들은 많은 죽음을 경험해 버렸다고 간지는 생각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 싶은 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제 하나도 없어."

"시노다 간지는 자신이 참으로 침착한 것 같다는 것에 희미한 슬픔을 느낀다. 공포든 망설임이든 자신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두려는 무언가가 아마도 마지막까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건 없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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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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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화가들의 작품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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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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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은 <기묘한 미술관>의 저자이자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의 신작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좌절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25명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저자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을 따라 130여 점의 명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위로의 그림들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1장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 2장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3장 '외로운 날의 그림들', 4장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이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위로의 미술관> 속 작품들은 지친 하루의 끝 가만히 책장을 열어줄 당신만을 위해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오롯이 품고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는 절망했기에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화가 모네의 이야기를 건넨다. 이 책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인기의 하락세를 맞이한 모네가 절망 속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품을 통해,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수련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안식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오랜 세월 수많은 실패와 수모, 절망을 겪었기에 이 모든 감정을 위로하는 작품을 남기려 한 것이다.

"온갖 비아냥 속에서 모네는 자신의 화품을 고집하며 쉬운 길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을 함께하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많은 이는 이제 그가 붓을 놓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걸작을 향해 붓을 든다. 그의 친구이자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을 위한 대형 <수련> 연작을 의뢰했고, 그는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게 된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남성 화가가 그린 여성 누드는 우윳빛 살결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려졌지만, 남성의 누드를 그리며 금기에 도전했던 화가 수잔 발라동은 여성의 몸을 솔직하게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에 그려진 여인은 누드는 아니지만, 당시 그녀가 얼마나 전통적 회화의 주제에서 멀어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파란 시트 위에 비스듬히 누운 여인은 책을 다 읽었는지 편안한 옷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강요된 고분고분하고 단아한 이미지라고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중상층 여성도 화가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절, 수잔 발라동이 화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타고난 예술적 소질은 물론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누드화는 예쁘지도, 에로틱한 분위기도 풍기지 않는다. 발라동은 여성의 누드를 통해 진실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의 몸이 아닌 뚱뚱하고 처진 몸 또한 진짜 여성이 몸이며 생생한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실존하는 현실을 미화하거나 각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회화를 알리기 위해 앞장섰다고 말한다. 쿠르베는 변혁의 시대를 살면서, 살아 있는 예술을 하기 위해 기존 전통 회화를 거부하며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그리려 했다.

"쿠르베는 <오르낭에서의 저녁 식사 후>, <돌 깨는 사람들>, <오르낭의 매장>을 통해 더 이상 이상적 풍경이 아닌 현실 속 낮은 계급의 모습을 더 많이 그리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미술계에 보여준다.

쿠르베는 고향에서 <오르낭의 매장>을 그릴 당시 가족, 친지, 마을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인물들을 모델로 세운다. 그는 평범한 인물도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장례식도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인간의 탐욕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둘째 아들을 상실한 화가 케테 콜비츠가 1922년에 선보인 <전쟁> 시리즈는 많은 이가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평화를 다짐하며 위로받는다고 말한다. 콜비츠는 주변의 평범한 삶을 그려내는 데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위해 용감하게 정치적 발언을 하고, 전쟁 상이용사와 희생자를 위한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콜비츠는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라고 했고, 자신의 예술이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며 도움이 필요한 시대에 자신 작품이 영향을 미치기를 원했다.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예술은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콜비츠의 삶과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넘치도록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자식을 잃은 엄마의 심정을 그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 분노를 함께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과 나누어야 했다. 콜비츠가 할 수 있는 것은 총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그린 작품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콜비츠는 안락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누구든 같은 권리와 행복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위해 소외당하는 이들과 지내며 그들의 삶을 그렸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바람과 달리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졌고,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마저 강탈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픔에 잠겨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평등과 평화를 외치고 또 외쳤다."



저자는 사랑하는 가족의 연이은 죽음과 성공을 가져다준 회사의 해체, 빈 분리파의 결성과 탈퇴, 보수적인 학계와의 논쟁 등 끊임없는 갈등으로 깊은 피로감에 쌓인 화가 클림트는 휴식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클림트는 16년간 매해 여름이 되면 빈을 떠나 아테제에서 두 달 정도 시간을 보내며 세상과 자신을 분리했고, 여기서 그리는 풍경화는 클림트에게 명상이자 탈출구였다. 풍경화를 그릴 때만은 빈에서 겪은 숱한 갈등과 새로운 미술을 선도하려는 욕망, 가족의 죽음으로 생긴 공포가 사라졌다. 저자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클림트는 빈 분리파를 이끌었지만 여럿과 어울리기보다 고독을 좋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반드시 세상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소외와 단절이 아닌 고독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고서야 다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세상과 맞설 힘을 얻었다는 화가 클림트의 삶을 통해 휴식과 비움의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의 풍경화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평온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정사각형 프레임에 오로지 시골 풍경의 일부만을 극대화해 표현했다.

보통 클림트를 떠올리면 <키스>나 <유디트>같이, 여인이 등장하는 황금빛의 그림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가 남긴 230여 점 작품 중 54점, 즉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작품이 바로 풍경화였고, 이 작품들은 그의 나이 마흔에 가까웠던 시절 아테제에서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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