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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
무레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9월
평점 :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카모메 식당>,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로 배 속과 마음속 모두 따뜻하게 채워준 일본 작가 무레 요코의 신작 소설집이다. 다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엔, 어느 날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는 다섯 가구에 개나 고양이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아이 없는 부부에게 간택된 길고양이, 황혼 이혼 후 남겨진 남자에게 찾아온 개, 부모님이 떠난 뒤 사이가 어색해진 중년 자매의 집에 방문한 고양이 등의 다섯 가지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웃기고 귀엽고 괴상해 웃음을 유발한다. 한편, 반려동물과 나이 들어가는 것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아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표제작인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아이 없는 부부 모토코와 쓰요시가 길고양이들과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결혼 후 노후의 외로움을 걱정하며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지닌 주변 사람들 속에서 길고양이들과 함께 살아온 예순 여섯살의 부부 모토코와 쓰요시의 일상이 따스하게 전해져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아이 없는 부부와 고양이'는 겉으로는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동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고양이들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반복하고 다시 새로운 인연의 고양이와 살아가면서 노년의 나이가 된 부부는 슬픔과 불안의 감정에서 나아가 나아가 현재의 행복과 사랑을 충만하게 느끼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동물은 인간만큼 생사를 깊이 생각하며 살지 않아. 물론 그 아이들도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죽음에 한해서는 담백해. 인간이 너무 슬퍼하면 떠난 동물들이 곤란하니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했던 기억을 많이 떠올리는 게 좋아."
"쓰요시가 주걱을 내려놓고 루루를 뒤에서 안았다. 모토코가 앞에 앉은 쓰요시를 바라보며 '알았어, 알았으니까 빨리 오코노미야키. 이러다 타겠어'라고 마음의 소리를 보냈으나, 쓰요시는 표정 하나 꿈틀하지 않는 루루를 언제까지나 꼭 끌어안고 있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홀아비와 멍멍이'는 황혼 이혼 후 남겨진 남자에게 찾아온 개의 이야기를 담았다. 의욕적이고 능력이 뛰어난 아내와 맞벌이를 하다가 쉰다섯 살에 이혼한 남자 고지는 예순 살이다. 고지는 어느 날 우연히 유기견 란을 만나서 함께 살게 되면서 전처와 아이에게 개에게 했던 다정한 말과 행동들을 하지 않았던 사실을 깨닫는다. 개를 만나면서 일상이 행복으로 변화하며 과거의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남자 고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이, 삼등신 밖에 안 되는 강아지들이 종종거리며 란을 따라 돌아다니고, 하품을 하나 싶더니 어느새 까무룩 잠들고, 젖도 안 나오는데 고지의 손가락을 쪽쪽 빨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아랫배에서부터 차올라 가슴이 울컥했다. 행복이 바로 어떤 감정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은 기분이었다."
""많이 힘들었지. 편하게 쉬렴."
말을 걸자, 란이 앏은 이불 위에 둥글게 몸을 말았다. 익숙하지 않은 병원의 우리 속에서는 편하게 자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전처에게는 이런 말도 건네본 적 없었다고 또다시 생각했다. 보통은 아내와 자식에게 할 말을 고지는 지금 개들에게 한다. 이 아이들은 이렇게 배려심 가득한 말을 하려고 고지 곁에 와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중년 자매와 고양이'는 부모님이 떠난 뒤 사이가 어색해진 중년 자매의 집에 방문한 고양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촉탁직으로 회사에 다니는 예순여섯 살 언니 히로코와 쉰 살에 조기 퇴직해 부모님을 간병했던 동생 히토미가 이웃 할머니의 강아지와 그 집을 드나들던 길고양이와 함께 생활한다. '중년 자매와 고양이'는 중년자매 히로코와 히토미가 부모의 오래된 모조 주택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라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즐거움과 갈등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의 네 번째 에피소드 '노모와 다섯 마리 고양이님'은 여든 다섯살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섯 마리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일흔 살 노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딸 유미코는 어머니가 전근대적인 아버지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유미코는 노모가 자신에게 해주지 않았단 다정한 말을 건내는 모습을 바라보고, 모아둔 비상금으로 고양이를 위해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을 걱정하며 화해를 하지 못하고 집을 나선다. '노모와 다섯 마리 고양이님'는 새끼 고양이를 키우는 노모가 나이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딸의 걱정과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신이 원하는 살아가는 노모의 행복이 대비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한편, 집 안은 새끼 고양이들이 온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집이 조금이라도 어수선한 걸 싫어했던 아버지는 장지에 바른 청호지가 조금만 찢어져도 빨리 고치라며 엄마를 나무랐다. 그래서 장지에는 늘 창호지가 빳빳하게 붙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장지 상태는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종이가 쫙쫙 찢어져서 제대로 붙은 곳이 없었다. 게다가 고양이들이 찢어진 곳을 재미있어하며 드나들면서 구멍을 키웠다."
이 책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 '나이 차 나는 부부와 멍멍이와 고양이'는 예순여섯 살 사토코와 마흔여덟 살 남편 오사무가 요양원으로 가게된 이웃 할머니의 강아지와 그 집을 드나들던 고양이를 키우는 과정을 담아낸다. 사토코는 쉰 살에 노름판에 돈을 마구 쓰는 남편과 헤어지고, 상점가의 길고양이의 죽음을 보고 어린 아이처럼 울던 오사무를 바라보고 감정의 변화를 느끼며 사실혼 관계가 된 지 삼년이 되었다.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며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사토코와 오사무의 이야기가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천진난만하고 무방비하게 내 천 자로 잠든 인간, 개, 고양이를 보니 분노는 곧 포기 섞인 한숨으로 바뀌었다. 오상수의 몸에는 담요, 타로와 하나코에게는 배가 차가위지지 않도록 손수건을 덮어주었다. 그래도 셋은 깨지 않는다.
'절대로 안 일어나겠네......'
사토코는 방 한쪽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셋이 깨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