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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평점 :

<위로의 미술관>은 <기묘한 미술관>의 저자이자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의 신작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좌절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25명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저자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을 따라 130여 점의 명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위로의 그림들이 전하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1장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 2장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3장 '외로운 날의 그림들', 4장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이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위로의 미술관> 속 작품들은 지친 하루의 끝 가만히 책장을 열어줄 당신만을 위해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오롯이 품고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자는 절망했기에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화가 모네의 이야기를 건넨다. 이 책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 인기의 하락세를 맞이한 모네가 절망 속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품을 통해,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수련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안식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오랜 세월 수많은 실패와 수모, 절망을 겪었기에 이 모든 감정을 위로하는 작품을 남기려 한 것이다.
"온갖 비아냥 속에서 모네는 자신의 화품을 고집하며 쉬운 길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을 함께하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많은 이는 이제 그가 붓을 놓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걸작을 향해 붓을 든다. 그의 친구이자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을 위한 대형 <수련> 연작을 의뢰했고, 그는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게 된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초까지 대부분의 남성 화가가 그린 여성 누드는 우윳빛 살결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남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려졌지만, 남성의 누드를 그리며 금기에 도전했던 화가 수잔 발라동은 여성의 몸을 솔직하게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에 그려진 여인은 누드는 아니지만, 당시 그녀가 얼마나 전통적 회화의 주제에서 멀어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파란 시트 위에 비스듬히 누운 여인은 책을 다 읽었는지 편안한 옷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강요된 고분고분하고 단아한 이미지라고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중상층 여성도 화가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절, 수잔 발라동이 화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타고난 예술적 소질은 물론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누드화는 예쁘지도, 에로틱한 분위기도 풍기지 않는다. 발라동은 여성의 누드를 통해 진실한 여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남성의 시선에 갇힌 여성의 몸이 아닌 뚱뚱하고 처진 몸 또한 진짜 여성이 몸이며 생생한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는 실존하는 현실을 미화하거나 각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회화를 알리기 위해 앞장섰다고 말한다. 쿠르베는 변혁의 시대를 살면서, 살아 있는 예술을 하기 위해 기존 전통 회화를 거부하며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그리려 했다.
"쿠르베는 <오르낭에서의 저녁 식사 후>, <돌 깨는 사람들>, <오르낭의 매장>을 통해 더 이상 이상적 풍경이 아닌 현실 속 낮은 계급의 모습을 더 많이 그리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미술계에 보여준다.
쿠르베는 고향에서 <오르낭의 매장>을 그릴 당시 가족, 친지, 마을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인물들을 모델로 세운다. 그는 평범한 인물도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장례식도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인간의 탐욕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둘째 아들을 상실한 화가 케테 콜비츠가 1922년에 선보인 <전쟁> 시리즈는 많은 이가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평화를 다짐하며 위로받는다고 말한다. 콜비츠는 주변의 평범한 삶을 그려내는 데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위해 용감하게 정치적 발언을 하고, 전쟁 상이용사와 희생자를 위한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콜비츠는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라고 했고, 자신의 예술이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며 도움이 필요한 시대에 자신 작품이 영향을 미치기를 원했다.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예술은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콜비츠의 삶과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넘치도록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자식을 잃은 엄마의 심정을 그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 분노를 함께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과 나누어야 했다. 콜비츠가 할 수 있는 것은 총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그린 작품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콜비츠는 안락한 삶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누구든 같은 권리와 행복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위해 소외당하는 이들과 지내며 그들의 삶을 그렸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의 바람과 달리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졌고,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마저 강탈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슬픔에 잠겨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평등과 평화를 외치고 또 외쳤다."

저자는 사랑하는 가족의 연이은 죽음과 성공을 가져다준 회사의 해체, 빈 분리파의 결성과 탈퇴, 보수적인 학계와의 논쟁 등 끊임없는 갈등으로 깊은 피로감에 쌓인 화가 클림트는 휴식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클림트는 16년간 매해 여름이 되면 빈을 떠나 아테제에서 두 달 정도 시간을 보내며 세상과 자신을 분리했고, 여기서 그리는 풍경화는 클림트에게 명상이자 탈출구였다. 풍경화를 그릴 때만은 빈에서 겪은 숱한 갈등과 새로운 미술을 선도하려는 욕망, 가족의 죽음으로 생긴 공포가 사라졌다. 저자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클림트는 빈 분리파를 이끌었지만 여럿과 어울리기보다 고독을 좋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반드시 세상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소외와 단절이 아닌 고독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보내고서야 다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세상과 맞설 힘을 얻었다는 화가 클림트의 삶을 통해 휴식과 비움의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의 풍경화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평온함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정사각형 프레임에 오로지 시골 풍경의 일부만을 극대화해 표현했다.
보통 클림트를 떠올리면 <키스>나 <유디트>같이, 여인이 등장하는 황금빛의 그림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가 남긴 230여 점 작품 중 54점, 즉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작품이 바로 풍경화였고, 이 작품들은 그의 나이 마흔에 가까웠던 시절 아테제에서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