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 습관, 일, 관계까지 바꿔주는 뇌 최적화의 기술
가비아 톨리키타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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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뇌’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하던 일, 익숙하고 편한 일을 좋아하는 뇌는 우리가 달라지려고 하는 모든 행동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계속 원래의 습관, 행동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인생의 변화를 이루고 싶다면 뇌를 바꿔야 한다. 현재에 안주하려는 지금의 뇌를 도전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데 거리낌 없는 뇌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책 <당신의 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는 수백 건의 임상 사례와 최신 신경과학 연구로 검증되고 수백 명의 CEO, 운동선수, 학자들에게 극찬받은 ‘뇌 최적화의 기술’을 소개한다.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단순하고 사소한 행동 방식을 설계해 습관, 성격에서부터 일, 관계까지 인생의 9가지 영역을 효과적으로 바꾸는 방법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새로운 습관은 아침에 하고,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 호흡 연습을 하고, 일을 미루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이유’를 자문자답해보는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이런 방법들을 한번 시도해볼 의지만 있다면 뇌를 바꾸는 일도, 늘 작심삼일로 끝나는 인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도 놀랍도록 간단해진다. 그러니 이 책을 따라 일상 속 작은 행동들을 하나씩 바꿔보자. 중간에 멈추는 법 없이 계속해서 더 나은 길로 향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하루가 끝나고 피곤할 때, 더구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인간 뇌, 특히 전전두피질과 같이 가장 복잡한 븐블이 적절하게 기능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간은 좀 더 에너지 효율이 높은 포유류 뇌의 지배를 받는 옛 습관으로 쉽게 돌아가고 만다. 따라서 저자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하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전전두피질의 지배를 받는 우리의 의지력은 그 시점에서 거의 바닥나기 때문이며, 이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새로운 습관 형성의 첫 번째 규칙은 "새로운 일은 아침이나 휴식 직후에 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뇌가 사용할 에너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전전두피질에 휴식이 필요한 저녁에는 의지력을 비롯한 전전두피질의 중요한 자질들이 많이 약화되어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층 발달된 뇌 중추를 사용해야 하며 여기에는 휠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전전두피질을 사용해서 눈앞의 충동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위해서는, 습관을 바꿀 때의 많은 이점을 목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습관을 바꾸지 않을 때 지금의 그리고 장래의 부정적 결과도 목록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행동과 낡은 행동에 대해 그렇게 많은 수의 혜택과 결점을 찾으려면 자신의 삶을 일, 가족, 인간관계, 사회생활, 취미,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자기계발의 여덟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포유류 뇌의 쾌감 및 고통 중추를 재교육시켜야 한다. 습관이 장기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그 습관이 우리를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는지 아니면 그 길에 방해가 되는지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포유류 뇌가 이런 연관성을 잊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리란 것을 유념해야 한다. 즉 이 목록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포유류 뇌에게 장기적인 결과를 계속해서 상기시켜야 한다."

저자는 성공적으로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포유류 뇌가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도체를 진정시키는 활동을 하고 변화를 작은 단계로 쪼개 친숙한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가능하면 무엇이든 한 번에 한 가지씩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야심 찬 큰 변화로 여러 가지 새해 계획을 만드는 일은 편도체에게 최악이다. 대신 저자는 이달에 바꾸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 변화를 위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번 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단계의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모든 인간의 감정은 크게 슬픔, 분노, 죄책감과 수치심, 혐오감, 두려움, 놀람, 흥분과 기쁨, 사랑과 신뢰의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각 감정은 뚜렷한 목적과 그와 연관된 구체적인 트리거, 즉 유인이 있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여덟 가지 감정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설명한다. 그중에서 저자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당신의 행동이나 존재 방식이 사회의 요구에 적합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현대에 와서는 죄책감의 주된 유인이 '의무'로 바뀌었다. 즉 다른 사람이나 사회로부터의 기대에서 비롯된 내면화된 지침으로 말이다. 저자는 그러기위해서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의무를 적은 광범위한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한정된 자원들을 어디에 사용해야할지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삶에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순간에 당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의식적인 선택을 하고 그 가치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의무'를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면 즉각적으로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이로써 자기 비난과 수치심을 덜어낼 수 있다.

"죄책감이 특정한 행동 혹은 반대로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감정인 반면, 수치심은 결함이 있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믿음과 실제의 상태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감정을 관리하는 것을 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편도체를 달래서 신체를 교감신경 지배 상태에서 부교감신경 지배 상태로 전환시키고 몸과 뇌의 화학 구조에 회복할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그때에서야 명확한 사고와 창의성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대를 형성할 능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분했을 때 우리는 주위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흥분한 상태는 편도체를 위험에 좀 더 기민해지도록 만든다. 저자는 편도체가 안정되면 우리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면서 편도체에게 세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때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장 주된 이유는 사람들 각자가 세상을 바라볼 때 대단히 편향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뇌는 대단히 선택적이어서 이전에 중요하다고 정해둔 것들만을 인식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식한 것 중에서 아주 적은 부분만을 기억한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는 기억하는 부분은 더 적어진다. 저자는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세상에 대한 기존의 모델을 깨부수고 새로운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과거의 행동 패턴에 가둬버리는 편도체 지배적인 사고인 고정형 사고방식을 버리고 당신이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일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장형 사고방식을 키우라고 말한다.

저자가 감정을 통제하고 의지려과 주의 집중력, 작업 기억과 동기를 갖게 하는 전전두피질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도록 해주는 습관을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첫째 전전두피질의 뉴런들이 영양소와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으려면 규칙적으로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하고, 호흡을 느리고 깊게 하고, 운동을 해서 혈액의 산소포화도를 높여 혈관을 확장시켜야 한다. 둘째 일과 휴식 시간을 번갈아 가져야 한다. 셋째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적당한 신체 활동을 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멀티태스킹은 두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시간을 낭비하게 해 성과를 저하시킨다고 말한다. 두뇌를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저자는 일상 속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지루함을 경계하여 당신을 흥분하게 하는 도전을 찾으라고 말한다. 흥분되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할수록 스트레스 수치는 떨어지고 인지 능력은 개선되고 그만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강화 환경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여행이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수치는 운동,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특히 밤에 이루어지는 숙면으로도 관리할 수 있다.

저자는 편도체를 안정시키는 대화를 위해서는 약속을 하기, 주관적인 경험을 공유하기, 상대의 말을 반복하기, 상대의 다름을 수용하기, 상대의 말에 공감하기에 대한 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끝없는 언쟁을 단숨에 멈추는 4단계 기술로 관찰하기, 느낌 공유하기, 욕구 확인하기, 요청하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가 뇌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서 뇌에 맞서려고 노력하는 대신 현재 상태에 따라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뛰어난 두뇌에 대해 배우는 일이 당신 자신을 훨씬 더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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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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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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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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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무엇이 우리의 쉼을 빼앗고 어떻게 쉼을 되찾을지를 사유하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이자 성찰적 에세이다. 이 책은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쉼'이 사라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살피고,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이 책은 '1장 왜 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가?, 2장 일과 소비에 대하여 착각하는 사람들, 3장 우리는 언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4장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해서'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성과사회는 피로사회이고, 피로사회는 곧 부채사회라고 말한다. 즉 성과사회는 부채사회의 부채노동으로 성과를 만드는 사회이고, 누군가의 저당 잡힌 노동과 피로 덕에 누군가의 안락함이 보장되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다. 저자는 부채 때문에 쉴 수 없는데, 누군가는 이를 꿈을 이루는 열정의 과정이라고 포장한다고 이야기한다.

"저당 잡힌 미래, 이것이 바로 부채의 본질이다. 이렇게 끌어들인 미래의 노동, 내 미래를 저당 잡은 부채는 불행히도 내 노동 가치를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내가 원하는 일, 나 자신을 위한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부채 규모에 반비례해서 적어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대출 원리금을 매달 꼬박꼬박 갚으려면 원치 않는 일이거나 싼값이라도 노동을 팔아야 한다. 노동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부채와 육체의 노화로 인해 점점 평가 절하되고, 신용등급은 하락한다. 미래에 사용될 노동까지 저당 잡힌 소비 능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반대로 늘어나는 부채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마침내 니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결국 삶 속에서 자유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이에 반비례하여 불안은 점점 커진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실업자는 의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낮은 존재면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추진하는 강력한 노동 통제와 저임금 정책 아래에서 항시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게 된 데 따른 사회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실업은 비록 노동하지 않는 상태, 즉 비노동의 상태지만 쉼과는 전혀 다른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쉼의 상태를 여가나 레저, 또는 필요한 자원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상태, 공공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 데 비해, 실업은 노동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 실제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암울하다. 실업은 사람이 온전히 쉴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할 수 없는, 실패의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업은 소비 능력이 전혀 없을뿐더러 사회적 자산과 국가 재정 측면에서 '마이너스'로 간주되고, 노동윤리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상태다. 그래서 일을 쉬고 있는 실업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긴장이 가장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실업자를 호모 사케르처럼 취급할수록 불안은 점점 사회를 잠식한다."

저자는 취직만 하면, 로또만 당첨되면, 결혼만 하면,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통일만 되면, 재개발 승인만 떨어지면, 마치 관련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의 생산이 판타지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판타지는 결핍을 채우고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착각일 뿐, 도달할 종착점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착각 노동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는 상태, 즉 '실업'이나 '폐업'을 결핍과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어진 좌절의 상태이자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상태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착각노동'이라는 판타지는 사람들이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면서도, 실업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노동을 충실히 되풀이하도록 하고, 노동에 중독되도록 한다.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면서도,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킬레우스가 달리기를, 시시포스가 바위 굴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비록 지금의 노동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 노동의 종착지에는 성취, 보상,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든 것은 이 종착지에 가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성찰 없이, 종착지에 도달하기 위해 각종 진통제와 피로회복제, 다양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곁에 둔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기대했던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잇을까? 노동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착각은 아닌지 한번쯤 의식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과잉 노동은 곧 노동하지 않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비노동 시간(쉼과 여가의 시간)을 줄어들게 하고, 그나마 조금 있는 비노동 시간을 자유롭고 창조적인 시간이 아닌,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갇힌 시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과잉 노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 뿐더러, 그 기원이 어딘지도 모를 GDP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에 자기 욕망을 맞춰야 하는 몰가치적인 상태로 전락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의 일은 '쉼'을 통해 '과잉 노동'이나 '착각 노동'이 아닌, 나와 사회의 통증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 '기쁜 노동', '행복한 노동'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쉰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상태를 넘어, 불안 대신 어떤 기대와 믿음, 설렘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 저나는 쉼의 상태는 개인이 느끼는 통증을 가족, 이웃, 사회, 일터의 동료, 공동체가 함께 느끼는 '공감'의 상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쉴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을 낯설게 느낀다는 수준을 넘어 세상과 항시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일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고, 개인과 사회의 통증은 결국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불안과 고통이 된다. 우리는 나와 타인의 통증을 공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쉼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쉴 수만 있다면, 함께 느끼는 통증은 함께 살아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이 통증을 치유해내면 함께 살며 즐기는, 공색공략의 삶을 이룰 토대가 마련된다."

저자는 쉼은 자신이 편안하고 존엄하다고 느끼는 안정된 상태라고 말한다. 반대로 진정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느끼는 통증을 달래고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외부 힘에 의해 강제로 억눌려 있음을 의미한다. 존재와 삶의 자율적 의지가 꺽이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거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기를 힘들게 하고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과 자기접근성을 주장할 때 타인의 그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쉰다는 것은 외부의 강제성을 벗어난 상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기존엄성과 연결된다. 자기존엄성이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 즉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자기결정권은 그저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한테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저자는 쉰다는 것은 인간이 정한 인위적이고 상징적인 것,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르는 합의들로부터도 해방된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 합의는 신과 인간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구별하고 위계를 만드는 계약이다. 쉰다는 것은 이러한 위계적 구별은 없앤다. 저자는 편히 쉰다는 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의무와 부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깨 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존재를 위한 의지, 삶을 위한 의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쉼이 있는 사회는 숲과 같아,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차별이 아닌 평등한 차이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 기반이자, 존재의 의미가 된다. 저자는 우정, 사랑, 환대, 연대는 쉼이 있는 사회의 소중한 자양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쉼이 있는 사회는 경제성장이나 국가발전 전략을 이유로 누군가의 삶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쉼이 있는 사회는 도시재개발의 시간에 따라 원주민을 내쫓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동일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표준화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원하는 미래를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이 더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대화와 도시화만을 정답으로 삼거나, 자본주의의 교환가치가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부정할 수 있어야 쉼이 있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 부정은 곧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와 공생공락의 쉼을 회복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착각과 중독 속에서 반복되는 노동의 피로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을 잠시 멈춰보자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왜 이렇게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매일매일 반복되는 노동이 과연 자신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는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정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과중한 경쟁과 무리한 노동은 죽음과 같은 삶을 강요할 뿐이며, 이제 여기서 벗어날 '정지 운동'을 시작할 때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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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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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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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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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는 완화의료 전문가인 저자 아나 아란치스가 죽음을 곁에 둔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을 지켜보며 느낀 성찰을 다룬 책이다. 아나 아란치스는 20여 년이 넘도록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우며, 2013년에 오래도록 금기시돼왔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의료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TEDx 강연이 큰 호응을 얻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 책은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을 돌보는 의사로서 저자가 경험한 삶과 죽음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완화의료의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다정한 시선으로 전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아무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죽음의 순간을 통해, 저자는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도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저자는 오늘의 삶이 어떻게 죽음의 모습으로 투영되는지 알려주면서,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기회를 선사한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과 나를 만나게 해주었으며, 나는 의사로서 날마다 일터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치열하게 존재하는 다른 인간들을 돌보는 인간으로서 깨달은 것들을 독자들과 모두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처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며, 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행위로도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존재 안에서만 죽음은 끝이 아닐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우리는 다수가 믿고 있는 '정상적인 것'을 뒤집어야만 한다."



저자는 임박한 죽음이 삶의 의미와의 만남을 앞당겨주기도 하지만, 그 만남을 체험할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괴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완화의료는 헛된 치료의 중단 가능성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환자의 신체적 고통, 진행되는 증상, 그리고 심각한 불치병을 통제하기 위한 공격적 치료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이 제공하는 확대된 돌봄이라는 실체적 현실도 포함한다. 저자는 환자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으면서 겪는 정신적 고통은 매우 극심하며,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이 지닌 의미를 찾고 싶게 만든다고 말한다.

"나는 늘 의학이 심리학이라는 복잡한 영역에 비하면 쉽고, 심지어 지나치게 단순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신체 검진을 통해 환자의 거의 모든 장기들을 평가할 수 있다. 몇 가지 검사실 검사와 영상 검사만 있으면 환자의 생명 유지 과정이 얼마나 잘 기능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들을 아무리 관찰해도 그들이 어디에서 평화를 발견하는지, 얼마나 많은 죄책감이 혈관에서 콜레스테롤과 함께 흐르는지, 얼마나 큰 공포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외로움과 방치로 마음이 병들어 있어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재앙이나 비상 상황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병이 하루하루 진행되고 있는 환자들을 한 사람씩 관찰한다. 나는 노인의학 전문의이기에 환자들이 처음 노화의 여정에 들어설 때부터 돌봄을 시작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는데, 그건 엄청난 특권이다. 나는 유일한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 인간존재인 그들을 오랜 시간 지켜보며 돌봄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늘 준비가 되어 있도록 노력한다. 지속적인 기술적, 과학적 배움과 인도적인 태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돌봄이 모두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한 균형 없이는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없다."

저자는 사람들이 죽음에 가까워져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고통을 느끼면서 진실을 감지하는 진정한 안테나를 갖게 되는 것을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마치 신탁을 전하는 사람들 같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명쾌하게 안다. 자신의 본질에 직접적으로 닿게 되면서 주위 사람들의 본질을 보는 능력을 얻는다. 저자는 우리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영웅은 죽음과의 만남을 피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심오한 지혜로 죽음을 인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완화의료가 안락사나 죽음의 촉진을 지지한다고 여기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안락사를 제공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완화의료 수련을 받은 의사라면 안락사를 권고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환자에게 신체적, 정서적, 가족적, 사회적, 영적 안락에서 오는 웰빙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건강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조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고,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모든 면에서 존엄과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삶을 살아왔다면 죽음을 생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죽음이 적당한 때에 찾아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큰 야심을 갖고 완화의료를 수행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을 유도하고 보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저자는 완화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맗나다. 누군가가 고통받으며 죽어갈 때 그 사람 곁에 있는 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감이라고 불리는 재능이다. 저자는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기술로, 이는 완화의료를 하고자 하는 의료 전문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전문가가 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맹목적 공감의 위험은 당신이 타인의 입장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지녔는지 모른다면, 타인의 입장이 되었다가 자신의 입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고 말한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꿔놓을 수 있게 해주며, 그래서 공감을 넘어서 환자에게는 고통을 이해해 주고, 의미 있는 무언가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공감은 위험을 지니고 있지만 연민은 그렇지 않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오염될 위험을 막아준다. 공감은 소진될 수 있지만 연민은 무궁무진하다. 공감은 이따금 맹목적이 되어 우리를 타인의 고통으로 인도하면서 스스로를 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연민의 경우 타인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 문화에는 성숙함과 진실성,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다해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저자는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린다면 실상 그것은 시간이 더 빨리 가도록, 그리하여 죽음이 더 빨리 찾아오도록 재촉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가 그 속도를 높이고 싶어 하든 낮추고 싶어 하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삶은 우리가 그 시간 동안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체험이다. 날이 저물기를, 주말을, 휴일을, 은퇴를 기다리며 삶을 보낸다면 죽음의 날이 더 빨리 오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진정한 삶은 일이 끝난 후에 시작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을 사는 것'은 특정 순간이나 삶의 즐거움에 맞추어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다. 즐겁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100퍼센트의 시간을 산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지나간다. 삶을 날마다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저자는 존재적 좀비와 같은 인간들을 비판한다. 폭력과 편견을 공유하고 고집하는 사회 안에서 내면의 불행을 외면한 채 어리석게도 외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 모두는 벌거벗은 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사회에 최악의 모습을 노출시키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서 부재하며, 아마도 그것이 죽음의 순간에 스스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삶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환상을 품고 무책임하게 살아간다. 진실함이나 선함, 아름다움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자신의 본질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 죽음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피하는 사람들은 가구 없는 방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과 같다. 그들은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는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죽음을 보지 않으면, 죽음도 나를 보지 않을 거야.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은 삶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잔꾀를 부린다. 그들은 쓰레기 같은 관계, 쓰레기 같은 직업, 쓰레기 같은 삶을 기어코 유지하면서 자신만 속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쓰레기는 실체를 드러낸다. 악취를 풍기고, 불편을 초래하고, 병을 유발한다."

"자신의 삶에서의 부재는 변명이 불가능하다. 자신과 타인, 자연, 주위 세상, 그리고 각자가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존재의 상태여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살아 있지 않은 사람들과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여지가 없다. 잠시 환기하자면, 나는 진짜 죽은 자와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시체, 죽음에 대해 용감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 이미 인간성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매장하고 목적 없이 떠도는 존재적 좀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건 육체적인 죽음뿐이다."

저자는 평생 일에만 매어 살게 되면 죽음을 앞두고 후회로 남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인생을 성취의 집함체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삶은 소유를 의미한다. 소유하고 축적하기 위해 미친 듯 일하며, 물질적인 것들만 모으는 게 아니라 상처와 위기까지 모은다. 그리하여 문제들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소유한다. 저자는 일에서 얻는 에어지도 삶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나쁜 에너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삶에서 얻어낸 것들을 온전히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잃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존재적 상실, 그것이 하나의 관계든, 직업이든, 확신이든 모든 상징적 죽음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가 필요하고, 둘째,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좋은 점도 간과해선 안 되며, 셋째, 이제 끝나버린 그 시간에 당신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저자는 상실의 수용은 계속되는 삶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애도자에게 고인이 의미로 충만한 삶을 남기고 떠났음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고인에게 배운 것들, 고인과 나눈 추억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저자는 애도자는 추억과 감정들까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죽지만 오직 사랑만이 우리 안에서 불멸의 가치를 지닌다는 저자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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