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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평점 :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무엇이 우리의 쉼을 빼앗고 어떻게 쉼을 되찾을지를 사유하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이자 성찰적 에세이다. 이 책은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쉼'이 사라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살피고,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이 책은 '1장 왜 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가?, 2장 일과 소비에 대하여 착각하는 사람들, 3장 우리는 언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4장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해서'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성과사회는 피로사회이고, 피로사회는 곧 부채사회라고 말한다. 즉 성과사회는 부채사회의 부채노동으로 성과를 만드는 사회이고, 누군가의 저당 잡힌 노동과 피로 덕에 누군가의 안락함이 보장되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다. 저자는 부채 때문에 쉴 수 없는데, 누군가는 이를 꿈을 이루는 열정의 과정이라고 포장한다고 이야기한다.
"저당 잡힌 미래, 이것이 바로 부채의 본질이다. 이렇게 끌어들인 미래의 노동, 내 미래를 저당 잡은 부채는 불행히도 내 노동 가치를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내가 원하는 일, 나 자신을 위한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부채 규모에 반비례해서 적어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대출 원리금을 매달 꼬박꼬박 갚으려면 원치 않는 일이거나 싼값이라도 노동을 팔아야 한다. 노동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부채와 육체의 노화로 인해 점점 평가 절하되고, 신용등급은 하락한다. 미래에 사용될 노동까지 저당 잡힌 소비 능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반대로 늘어나는 부채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마침내 니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결국 삶 속에서 자유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이에 반비례하여 불안은 점점 커진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실업자는 의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낮은 존재면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추진하는 강력한 노동 통제와 저임금 정책 아래에서 항시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게 된 데 따른 사회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실업은 비록 노동하지 않는 상태, 즉 비노동의 상태지만 쉼과는 전혀 다른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쉼의 상태를 여가나 레저, 또는 필요한 자원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상태, 공공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 데 비해, 실업은 노동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 실제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암울하다. 실업은 사람이 온전히 쉴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할 수 없는, 실패의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업은 소비 능력이 전혀 없을뿐더러 사회적 자산과 국가 재정 측면에서 '마이너스'로 간주되고, 노동윤리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상태다. 그래서 일을 쉬고 있는 실업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긴장이 가장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실업자를 호모 사케르처럼 취급할수록 불안은 점점 사회를 잠식한다."
저자는 취직만 하면, 로또만 당첨되면, 결혼만 하면,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통일만 되면, 재개발 승인만 떨어지면, 마치 관련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의 생산이 판타지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판타지는 결핍을 채우고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착각일 뿐, 도달할 종착점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착각 노동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는 상태, 즉 '실업'이나 '폐업'을 결핍과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어진 좌절의 상태이자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상태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착각노동'이라는 판타지는 사람들이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면서도, 실업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노동을 충실히 되풀이하도록 하고, 노동에 중독되도록 한다.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면서도,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킬레우스가 달리기를, 시시포스가 바위 굴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비록 지금의 노동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 노동의 종착지에는 성취, 보상,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든 것은 이 종착지에 가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성찰 없이, 종착지에 도달하기 위해 각종 진통제와 피로회복제, 다양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곁에 둔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기대했던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잇을까? 노동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착각은 아닌지 한번쯤 의식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과잉 노동은 곧 노동하지 않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비노동 시간(쉼과 여가의 시간)을 줄어들게 하고, 그나마 조금 있는 비노동 시간을 자유롭고 창조적인 시간이 아닌,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갇힌 시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과잉 노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 뿐더러, 그 기원이 어딘지도 모를 GDP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에 자기 욕망을 맞춰야 하는 몰가치적인 상태로 전락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의 일은 '쉼'을 통해 '과잉 노동'이나 '착각 노동'이 아닌, 나와 사회의 통증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 '기쁜 노동', '행복한 노동'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쉰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상태를 넘어, 불안 대신 어떤 기대와 믿음, 설렘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 저나는 쉼의 상태는 개인이 느끼는 통증을 가족, 이웃, 사회, 일터의 동료, 공동체가 함께 느끼는 '공감'의 상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쉴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을 낯설게 느낀다는 수준을 넘어 세상과 항시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일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고, 개인과 사회의 통증은 결국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불안과 고통이 된다. 우리는 나와 타인의 통증을 공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쉼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쉴 수만 있다면, 함께 느끼는 통증은 함께 살아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이 통증을 치유해내면 함께 살며 즐기는, 공색공략의 삶을 이룰 토대가 마련된다."
저자는 쉼은 자신이 편안하고 존엄하다고 느끼는 안정된 상태라고 말한다. 반대로 진정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느끼는 통증을 달래고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외부 힘에 의해 강제로 억눌려 있음을 의미한다. 존재와 삶의 자율적 의지가 꺽이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거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기를 힘들게 하고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과 자기접근성을 주장할 때 타인의 그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쉰다는 것은 외부의 강제성을 벗어난 상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기존엄성과 연결된다. 자기존엄성이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 즉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자기결정권은 그저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한테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저자는 쉰다는 것은 인간이 정한 인위적이고 상징적인 것,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르는 합의들로부터도 해방된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 합의는 신과 인간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구별하고 위계를 만드는 계약이다. 쉰다는 것은 이러한 위계적 구별은 없앤다. 저자는 편히 쉰다는 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의무와 부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깨 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존재를 위한 의지, 삶을 위한 의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쉼이 있는 사회는 숲과 같아,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차별이 아닌 평등한 차이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 기반이자, 존재의 의미가 된다. 저자는 우정, 사랑, 환대, 연대는 쉼이 있는 사회의 소중한 자양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쉼이 있는 사회는 경제성장이나 국가발전 전략을 이유로 누군가의 삶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쉼이 있는 사회는 도시재개발의 시간에 따라 원주민을 내쫓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동일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표준화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원하는 미래를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이 더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대화와 도시화만을 정답으로 삼거나, 자본주의의 교환가치가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부정할 수 있어야 쉼이 있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 부정은 곧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와 공생공락의 쉼을 회복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착각과 중독 속에서 반복되는 노동의 피로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을 잠시 멈춰보자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왜 이렇게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매일매일 반복되는 노동이 과연 자신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는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정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과중한 경쟁과 무리한 노동은 죽음과 같은 삶을 강요할 뿐이며, 이제 여기서 벗어날 '정지 운동'을 시작할 때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