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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절에 버리러 ㅣ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평점 :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열일곱 번째 작품은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이서수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서로를 부양하고 부양되는 세 모녀에 대한 소설 세 편과 작가 이서수의 '딸 같은 엄마'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담고 있다. 출가를 결심한 엄마와 절에 가는 모녀의 여정을 담은 '엄마를 절에 버리러', 화가 나면 늑대로 변하는 여자에 대한 소설을 쓰는 엄마의 이야기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자가 격리를 위해 엄마와 딸 단둘이 모텔로 떠나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세 편의 소설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노동과 돌봄의 차원에서 가감 없지만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궁핍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서 고생하게 될 딸의 미래를 염려하며 출가를 결심한 엄마가 딸의 여정을 담아내어 인상적이다. 특히 절을 향해 가는 엄마와 딸이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엄마는 내가 건넨 30연발짜리 폭죽을 손에 들고 하늘을 향해 곧게 쏘아 올렸다. 그것은 힘차게 솟아 올라 허공에서 팡 터졌다가 빛나는 튀밥처럼 빛을 뿌리며 검은 파도 위로 추락했다. 기대했던 선명한 아름다움과 찰나의 폭발력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고, 나도 싱겁게 웃었다.
우리에겐 아직 폭죽이 많이 남아 있었다. 팡 터뜨리고, 감탄하고, 피시식 사라질 폭죽이 100발 넘게 남아 있었다. 엄마의 손에 불붙은 폭죽을 건네주며 나는 이 순간을 엄마가 영원히 기억하길 바랐다.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그날에도. 찬란하게 떠올라 이내 어두운 바다 속으로 녹아 사라지더라도.
피융! 파앙! 피시시이익.
피융! 파앙! 피시시이익.
지나가던 사람들이 엄마가 쏘아 올린 폭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는 그들을 잠깐 돌아보더니, 당찬 소녀 같ㅇ느 얼굴로 폭죽을 높게 쏘아 올렸다."
"소원아, 인생은 플레이리스트 같다. 듣기 싫은 음악을 참고 들으면 언젠가 좋은 음악이 나오잖아. 그러니까 좋은 음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우리."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은 소설을 쓰는 딸 정하연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주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흥미롭다. 딸 하연이 엄마가 쓴 소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을 읽으며 은빛 털을 휘날리는 암 늑대로 변한 엄마를 상상하고 그 등에 올라타 털을 꼭 쥐고 있는 어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엄마가 쓴 사랑의 세계가 펼쳐진 장면들을 만나는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반인반수. 화가 나면 짐승으로 변하는 여자의 이야기야.
짐승?
손등에 털이 나고, 눈이 파래지고, 등이 굽는 거야. 늑대처럼. 한번 읽어보고 돈이 될지 어떨지 말해줘. 너는 작가니까 알 거 아니야.
엄마는 안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왔다. 화면에 한글문서 창이 띄워져 있었다. 내가 쓴 소설을 다 읽었다는 건 알았지만 엄마가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 나는 배움에 대한 엄마의 인내심과 성실함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엄마는 쪽파 한 단을 신문지로 싸서 품에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곧바로 엄마가 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침묵 속에 전달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연아,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이렇게 못 배우고, 경험 적고, 만나본 남자도 덜떨어진 너희 아버지 한 명밖에 없는 채로 끝나는 걸까. 나는 그게 좀 억울해. 내가 해본 게 너무 없는데 환갑이 된 게 억울해. 나는 네가 부러워.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네가 환갑이되면 나랑 얼마나 다른 모습이겠니. 인생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인간들이 없으니 너는 얼마나 너답게 늙겠니. 많은 것을 하겠지. 나는내 인생에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간섭했던 인간들 때문에 내 뜻대로 살 수가 없었는데, 지금 그 인간들 코빼기도 안 보여. 어디 갔니. 다들 어디 간 거야. 집은 있는 거야. 나만 집이 없는 거야. 내 오빠들은 집이 다 있는데 나는 집이 없어. 그래서 화가 나서 연락도 안 해. 내가 이 나이에도 자존심이 세서 오빠들한테 굽힐 줄을 몰라. 근데 그 자존심의 원천이 바로 너야. 내 딸, 정하연. 연애보다 일을 우선시하는내 딸 정하연은 절대로 내 꼴은 안 날 거야."
'있잖아요 비밀이에요'에서 코로나에 확진될 가능성이 있는 남편 차기훈으로 인해서 서한지가 자가격리를 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모텔에서 함께 지내는 장면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남편의 외도와 생활고로 고통을 받다가 자신을 벌레처럼 혐오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증과 공황증으로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엄마 김월희에게 딸 서한지가 전하고 싶은 위로의 글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서한지는 김월희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일을 하려면 김월희는 자신이 왜 아픈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벌주려는 걸 말이다. 서한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엄마가 좋아하는 알밤, 그걸 떠올려봐. 벌레 먹은 밤을 집어 들면 에잇 속았다, 그런 표정으로 웃잖아.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 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것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지극히 초라한 길이어도."
"김월희는 곧 월세방으로 이사할 것이고, 서한지는 이오선을 골탕 먹일 궁리를 하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할 것이고, 차기훈은 여전히 얼굴을 모르는 민해연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주말, 확진자 폭증,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다가 더워지고, 그들은 한여금에 미지근한 소주를 마시면서 소주가 언제 이렇게 독해졌지, 하고 말하며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일까. 서한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월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도 벌레 같지 않고, 아무리 봐도 사람 같은 엄마의 얼굴을."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는 이서수 작가의 에세이 '무지개떡처럼'이 실려있어 인상적이다. 이서수 작가는 자주 자신의 딸 같고, 가끔 자신의 엄마 같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서수 작가는 2021년 여름부터 2022년 여름까지 '엄마'라는 테마로 세 편의 단편 소설을 썼고, 그 기간 동안 엄마와 몇 달간 함께 살았으며, 엄마가 이사 간 뒤엔 엄마 집을 오가며 밥을 먹기도 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서수 작가는 엄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찾아오는 드문 날이면, 엄마가 그 모든 고난을 뚫고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한다. 온갖 맘고생을 했음에도 젊은 남자 배우를 보며 무지개떡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는 게 기적 같고, 엄마의 마음에 아직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게 눈물겹게 기쁘다는 이서수 작가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엄마와 가까이 사는 동안 나는 엄마의 고민과 꿈, 상념과 집념을 곁에서 목도했다. 그러나 만일 엄마가 이 책을 읽는다면, 자기 모습이 어디에 나오는지 몰라서 의아해할 것이다. 엄마의 일부분이 여기저기에 조금씩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 눈엔 그것이 잘 보이지만 엄마의 눈엔 조각난 1000피스짜리 그림 퍼즐처럼 보일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썼다.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기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만 쓸 수 있고, 어쩌면 그건 반쪽짜리 진싱이 되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엄마의 삶을 모티프로 삼아 세 명의 육십대 여성을 만들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이다. 가난과 노동 그리고 딸."
"후회해도 된다.
엄마처럼 아주 많이 후회해도 된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책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진. 그걸 깨닫고 나면 후회가 아무런 소용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완벽한 삶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