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4.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샘터 12월호에 등장하는 흔적 지우는 남자 김석훈님의 글이 인상적이다. 냉혹한 유족을 만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생후 1년도 되지 않은 아기가 죽은 흔적을 발견했을때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씁쓸하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오늘도 마음을 담아 흔적을 지웁니다'라고 말하는 김석훈님의 말 속에서 '그래도 죽음 곁을 지키리라'라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열악한 현장에서 회의와 분노, 그리고 상처를 얻고 돌아오면 아무리 무감각해진 나라도 우울해지곤 한다. 작업한 날엔 시취가 몸에 배 어딜 가든 냉대를 받는다. 그럼에도 당연하단 듯 흔적 지우는 일을 이어간다. 썩어 버린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흔적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부모를 위로할 수 있기에, 고인의 하늘 이사를 도울 수 이씩에, 다시 깨끗해진 집을 보고 희망을 얻는 이가 있기에. 그리고 시취가 뭔지도 모르고 아빠에게 달려와 안기는 딸이 있기에."

샘터 12월호에는 고경원 기자가 '새 책이 말을 걸었다'라는 코너로 샘터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따끈따끈한 새 책 소식이 소개된다.​ 이번호에는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새책을 소개하여 흥미롭다. 여성학자이가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에게 책 읽기는 일종의 독서 치료다.

"<정희진처럼 읽기>는 그의 마음을 자극하는 책을 '고통, 주변과 중심, 권력, 안다는 것, 삶과 죽음'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나눠 소개한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생글거리는 세상에서, 정희진은 나와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라고 권한다. 비주류의 관점에서 쓴 책, 모르는 분야의 책을 즐겨 읽기에 그의 서가는 작은 서점을 방불케 한다. 모두가 그의 독서 방식을 따를 수는 없지만 참고할 수는 있으리라. 칸칸이 약이 담긴 서랍에서 내게 필요한 약을 찾아 꺼내듯,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치유했던 책의 면면을 보자. 그리고 문득 어느 책과 마음이 공명한다면 권말부록을 살펴보자. 리뷰한 도서 목록을 실어 해당 책을 더 읽고 싶은 독자들을 배려했다."​

샘터 12월호 '지혜 나누는 장터'에서는 주고받고 함께 나누며 키워가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별별 물건 이력서로 만지면 해로운 비스페놀A가 검출되는 영수증, 발효 김치의 놀라운 힘에 관한 ​이야기 등 생활 속 유익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영수증에 들어 있는 유해물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영수증을 입에 물거나 손으로 심하게 만지작거리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영수증을 만지고 나면 손을 닦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 습성이 있는 영유아가 절대 영수증을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비스페놀A는 물보다 기름에 잘 녹아 화장품을 발랐을 때 더욱 잘 흡수된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김치에 들어가는 무는 유산균 배양에 도움을 주는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김치에 무를 넣지 않으면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유산균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잡균이 많아져 김치 본연의 맛이 나지 않는다. 양념으로 들어가는 고추는 김치에 들어가는 소금의 양을 줄여주고 부패를 더디게 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끔 한다. 또한 마늘을 김치에 유산균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마늘을 넣지 않으면 유산균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김치가 빨리 상할 수 있다."​

연말을 마무리하는 12월. 샘터 12월호와 함께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추운 겨울이며 약속도 많은 12월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게 한해를 마무리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레스 스토리콜렉터 27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특징은 동화 속 주인공들을 새로운 인물로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크레스>에서 작가는 ​인공위성에 갇힌 천재 해커 라푼젤의 스토리를 펼쳐놓는다. 사이보그 신데렐라, 우주선 배달부 빨간 모자에 이어서 등장하는 동화 라푼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내용이 흥미롭다.

달과 지구 사이 어딘가, 조그마한 인공위성에 한 소녀가 갇혀 있다. 금발머리를 길게 땋아 드리우고 기계와 네트워크만을 벗 삼아 지내는 소녀의 이름은 크레스, 마법 능력이 없는 껍데기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헤어져 벌써 7년째 인공위성에서 달의 레바나 여왕을 위해 첩보 활동을 하고 있는 천재 해커이자 신더에서 신더에게 레바나 여왕의 야욕을 알려 연례 무도회 대소동의 불씨를 지폈던 바로 그 소녀다. 은하계의 1급 수배범이 된 신더와 카스웰 함장이 감옥에서 무사히 탈출하고 우여곡절 끝에 스칼렛과 울프까지 합류한 시점에서, 우리의 주인공 크레스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크레스와 카스웰과​의 만남이 인상적이다. 카스웰을 사랑하는 크레스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다. 

"어쩌면 운명 같은 건 없는지도 몰라요. 그저 기회가 주어지는 것뿐이고, 그 기회를 붙잡는 건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사하고 환상적인 로맨스는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크레스가 신더 일행과 함께 레바나 여왕을 물리치려는 여정이 시작된다. 레바나 여왕과 카이토 왕자의 결혼식장에 잠입하여 카이토 왕자를 데려오는 신더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 책의 다음편인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의 마지막 4부 <윈터>는 동화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한다고 하니,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향기>는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필립 클로델의 에세이이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필립 클로델의 영화 <차가운 장미>를 관람하고 나서 그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향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수놓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안개'라는 제목의 글이다. 필립 클로델은 안개라는 소재를 아름다운 문장들로 끌어낸다.

 

"나는 안개가 좋다. 안개 덕분에 언제나 나 자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으니.

바깥을 나가 내 주변의 공간만이 어렴풋이 나타나 보이는 자연 속을 걸으면, 비록 보이지 않는 지우개에 지워져 이미 삼켜진 세계일지라도 이 세계는 영혼의 단순한 투사물이 된다. 통찰력 있지만 다소 냉정한 가설이 된다.

나는 혼자다.

내면 깊이 혼자다.

나는 껍데기 속 달팽이처럼 이 생각에 틀어박혀 있다. 멀리서 비쳐오는 빛. 그 존재를 증명해주는 하얀 색조가 불가해한 어떤 논리를 따라 이곳저곳 뚫고 들어오려 하지만, 거의 들어오지 못한다.

불투명한 안개의 현존 속에서 중대한 결과도 고통도 없이, 가벼운 '세계의 종말'이 돌연 출현한다. 일시적으로 갇힌 잠재적 향기의 냉정한 추출자로서 안개는 일상의 풍경을 훼손한다. 다르게 보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호텔방'이라는 제목의 향기가 느껴지는 글이 인상적이다. 필립 클로델은 자신의 사무실이나 연구실이었던 호텔방의 이야기를 향기로 건넨다.

 

"방은 우리와 몇 시간 동안, 하룻밤 동안 결합하여 우리가 유일하다고 믿게 만든다. 더 잘 속이기 위해 우리 향기를 덧입는다. 그러고 나서 사냥감을 몰듯이 우리를 내쫓는다.

호텔방의 진짜 향기는 우리의 간결성과 피상성의 향기인 것이다."

'석탄'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어린시절의 냄새, 가난과 슬픔의 냄새'라는 글이 석탄의 향기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석탄이다. 광산을 채굴하는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거의 어디서나 석탄을 때는 모양이었다.

어린시절의 냄새, 가난과 슬픔의 냄새였다.

크든 작든 해롭든 이롭든 지속적이든 일시적이든, 인생길에 놓여 운명을 더럽히는 불행을 그을음이 잘 드러내 보이듯 말이다."​

'잠든 아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현재와 과거의 우리를 이야기하는 잠든 어린아이의 살냄새를 표현하는 필림 클로델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현재의 우리 또는 과거의 우리에 대해, 깊이 잠든 어린아이의 살냄새만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침대 속에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두려움도 공포도 전율도 없이 쉬고 있는 어린아이는, 우리가 늘 가까이 붙어 어둠을 쫓고, 흔뜨리고, 필요하다면 그 어둠을 부정할 준비다 되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의 집'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이제 어린시절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는 없고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필립 클로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

"아버지는 이곳에서의 삶을 특징지었던 모든 것을 가지고서 떠났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집의 향기도 동시에 죽었다.

춥다. 여기에서 글을 쓰는 것이 여러 해 만에 처음이다. 아마 30년도 넘은 듯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곧 집은 팔려서 새로 칠해지도 개조될 것이다. 여기에서 살 존재들은 그들의 삶, 꿈, 고통, 불안, 평안을 이곳에 가져올 것이다. 잠을자고, 사랑하고, 먹고, 씻고, 화장실에 가고, 목공일을 하고, 울고, 웃고, 아이들을 키울 것이다. 늘어나는 양초처럼 집은 조금씩 그들에게 순응해가면서 그들의 향기를 간직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제목의 필립 클로델의 글이 눈길을 끌었다. 죽음에 관한 명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필립 클로델이다.

 

"죽음은 정말이지 모든 것을 생각한다. 죽음은 살아남을 줄 안다. 죽음은 시간과 결혼했고 화장법을 바꿨다.

혁신.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죽음도 분명 권태로웠을 것이다.

항상 이기는 것, 그것은 정당한 게임이 아니다."

'교도소'라는 제목의 글. 필립 클로델은 교도소에 강연을 하러 여러번 간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교소도의 향기는 억눌린 향기인 것이다'라는 그의 글에 공감한다.​ 교도소라는 공간을 섬세한 향기로 이야기하는 글에 매료된다.

 

"교도소의 세계와 그 원리는 그에 적절한 행동 양식, 다른 곳에서는ㄴ 찾아볼 수 없는 병리학, 특별한 냄새를 만들어낸다. 그곳에서는 모두 약화되어 있고, 약해져 있고, 마비되어 있다. 그리고 바깥에서라면 한계 없이 펼쳐질 수 있는 모든 것이 두꺼운 벽 사이, 높은 유리창 아래, 창살로 고정된 빈약한 공간 안에 정체되어 있다.

제약되고 낮춰지고 늦춰진 삶의 향기들이 교도소 안에서 음정을 잃는다. 퇴색되어,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소리가 멈춘다. 들어가자마자 해체되고 희석된다. 낡은 벽의 녹에, 항상 닦지만 여전한 바닥의 기름기에, 매년 봄 헛되이 덧칠해지는 처량한 페인트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 함께 있는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꾸미고 치장하려는 노력을 더는 하지 않는다. 본질을 포기하고 체념하고 일률적으로 변한다. 그것이 아마도 이 장소의 향기를 가장 특징짓는 것, 우리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일 터이다.

본래의 향기를, 그리고 서로 구별되기를 거부하는 냄새들.

스스로 유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냄새들.

단념해버린 냄새들.

교도소의 향기는 억눌린 향기인 것이다."

소설 <회색영혼> <브로덱의 보고서>의 작가,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차가운 장미>의 감독 필립 클로델의 냄새와 추억에 대한 공감각적 산문집, 2013년 장자크 루소 상 수상작인 책 <향기>를 읽으면서 삶과 장소, 인물들에 대한 추억을 섬세한 향기로 기억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어가겠다>는 소설가 김탁환이 소개하는 스물세 편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크눌프, 자기 앞의 생, 플랜더스의 개, 어린 왕자, 남방우편기, 연인, 모모, 모두 다 예쁜 말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한 여자, 남아 있는 나날, 녹턴, 디어 라이프,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우주만화, 이것이 인간인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서부전선 이상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달과 6펜스, 폭풍의 언덕, 불멸,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라는 스물 세 편의 소설들 속의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를 만나면서 젊음을 떠올렸다는 소설가 김탁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특히 이 책은 김탁환이라는 소설가의 시선에서 소개하는 소설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삶의 길고 어려운 문제들을 만났을 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작품 속의 인물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스물세 편의 소설에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나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웃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부터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당신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다워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경멸로도 이어지겠지요. 열망과 덧없음처럼, 자부심과 경멸 또한 젊음이란 동전의 양면인 겁니다."

김탁환은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소개한다. 소설 속 크눌프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김탁환은 '크눌프의 주장으로 돌아가보자면, 불꽃놀이가 왜 가장 아름다운가, 소녀가 왜 가장 아름다운가. 그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은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같이 있는 것이다. 소멸과 상실을 전제로 하기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크눌프의 설명은 곧 그러한 아픔을 겪어본 자만이 아는 것이겠기에 이 사내가 더욱 쓸쓸해 보이는군요.'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소설가 김탁환의 중학교 시절, 늘 다정히 말을 붙여왔던 인물 크눌프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김탁환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소개한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슬픈 책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김탁환이 이야기하는 동정심 없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썩어가는 시신 곁에서 모모라는 소년이 발견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김탁환의 이야기를 통해 이 소설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 허물어질 때 모모만은 그 사랑을 지켜낸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읽어가겠다>를 읽는동안, 소설가 김탁환이 소개하는 책들을 꼭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위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없으니까.

 

<읽어가겠다>는 소설가 김탁환의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진짜 슬픈 이야기를 가르쳐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탁환의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슬픔을 알아야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깊이있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갖는 여러 감정 중엔 어두운 감정도 있습니다. 슬픔이나 두려움 말입니다. 어린이들이 이런 감정의 가치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겠지요. 어린 시절 <플랜더스의 개>라는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는 지독한 슬픔을 배웠습니다. 슬픔의 연속이니까요. 물론 잠깐 잠깐 파트라슈와 넬로가 함께 뛰노는 즐거운 시절이 있지만, 이 둘이 크리스마스에 죽을 때까지 계속 슬픔이 이어집니다. 52부작을 보면서 매주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떠올려보세요. 그게 바로 접니다. 삼십 분을 내리 울고 그리고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또 삼십 분을 울었지요. 그때보다 슬픔을 느끼고 많이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슬픔은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훨씬 좋다고 강조해서도 안 되고, 기쁨에 관한 밝은 책들만 읽혀서도 안 됩니다.

진짜 슬픈 이야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불행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소년의 이야기가 바로 <플랜더스의 개>입니다. 이제 부모가 되고 나니 이런 책을 읽으면 고통과 슬픔이 더 커집니다.

죽음을 직시하라고 알려주는 동화가 무척 드물지요.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만 보여주는 동화가 대부분입니다. 죽음을 다루더라도 아주 아름답게 살짝 겉만 건드리고 넘어가지요. 소멸에 관한 책, 불행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이 우리네 동화에서도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김탁환이 이야기하는 프리모 레비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작품이 인상적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부터 인간다움으로서의 글쓰기를 체험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문장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아침에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게 오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김탁환은 <크눌프>와 함께 자신의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작품인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이야기한다. 김탁환은 이 소설이 예술가들이 꿈꾸는 본질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달과 6펜스>를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고 작품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읽어가겠다>를 읽으면서 소설가 김탁환이 소개하는 멋진 소설들의 명문장들을 밑줄쳐가면서 음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나서 김탁환이 소개하는 소설들을 한 권 한 권 따로 읽어볼 계획이다. 다양한 소설 속 인물들이 삶의 고통과 고민을 견뎌내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보다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사랑을 하고 있어>는 마스다 미리​가 여자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위트 있게 포착한 에세이이다. 91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을 하는 여자들의 섬세한 심리를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마스다 미리 초창기 화풍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제어할 수 없었던 그건 사랑이었다'라는 제목의 글.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을 때는 이미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것. 사랑은 사소한 일로 시작된다.

"설마, 그런 사소한 일로.

웃음이 난다. 사랑의 시작은 이토록 사소한 것.

비틀거리는 순간 잡아주었다거나, 어떤 디저트로 할까 갈등하는데 두 가지를 모두 주문해주었다거나, 작은 책이 정장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거나, 그런 작디작은 일.

무엇이 계기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에 관한 시선에 관한 글에 공감했다. 그들이 헤어지는 것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 경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순간을 잘못 판단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싫어진 건 아닌데 헤어지는 일.

어른이 되면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 전혀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제, 다음번에는 친구의 얼굴로밖에 만날 수 없다. 이 밤을 경계로, 둘만의 친밀한 대화도 사라지게 된다. 그 사람이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

적당히 둘러대며 계속 만날 수 있지만, 굳이 헤어지는 것은 서로에게 더욱 소중한 사람이 생긴 경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순간을 잘못 판단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어서 독특하다.​ 또한 수짱 캐릭터와 다른 마스다 미리 초기 화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 마스다 미리의 팬들이라면 더욱 관심이 가는 책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