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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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는 소설가 김탁환이 소개하는 스물세 편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이다. 크눌프, 자기 앞의 생, 플랜더스의 개, 어린 왕자, 남방우편기, 연인, 모모, 모두 다 예쁜 말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한 여자, 남아 있는 나날, 녹턴, 디어 라이프,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우주만화, 이것이 인간인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서부전선 이상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달과 6펜스, 폭풍의 언덕, 불멸,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라는 스물 세 편의 소설들 속의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를 만나면서 젊음을 떠올렸다는 소설가 김탁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특히 이 책은 김탁환이라는 소설가의 시선에서 소개하는 소설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삶의 길고 어려운 문제들을 만났을 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작품 속의 인물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스물세 편의 소설에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나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웃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부터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당신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다워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에 대한 경멸로도 이어지겠지요. 열망과 덧없음처럼, 자부심과 경멸 또한 젊음이란 동전의 양면인 겁니다."

김탁환은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소개한다. 소설 속 크눌프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김탁환은 '크눌프의 주장으로 돌아가보자면, 불꽃놀이가 왜 가장 아름다운가, 소녀가 왜 가장 아름다운가. 그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은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같이 있는 것이다. 소멸과 상실을 전제로 하기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크눌프의 설명은 곧 그러한 아픔을 겪어본 자만이 아는 것이겠기에 이 사내가 더욱 쓸쓸해 보이는군요.'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소설가 김탁환의 중학교 시절, 늘 다정히 말을 붙여왔던 인물 크눌프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김탁환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소개한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슬픈 책이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김탁환이 이야기하는 동정심 없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썩어가는 시신 곁에서 모모라는 소년이 발견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김탁환의 이야기를 통해 이 소설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 허물어질 때 모모만은 그 사랑을 지켜낸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읽어가겠다>를 읽는동안, 소설가 김탁환이 소개하는 책들을 꼭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위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없으니까.

 

<읽어가겠다>는 소설가 김탁환의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진짜 슬픈 이야기를 가르쳐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탁환의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슬픔을 알아야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깊이있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갖는 여러 감정 중엔 어두운 감정도 있습니다. 슬픔이나 두려움 말입니다. 어린이들이 이런 감정의 가치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겠지요. 어린 시절 <플랜더스의 개>라는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는 지독한 슬픔을 배웠습니다. 슬픔의 연속이니까요. 물론 잠깐 잠깐 파트라슈와 넬로가 함께 뛰노는 즐거운 시절이 있지만, 이 둘이 크리스마스에 죽을 때까지 계속 슬픔이 이어집니다. 52부작을 보면서 매주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떠올려보세요. 그게 바로 접니다. 삼십 분을 내리 울고 그리고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또 삼십 분을 울었지요. 그때보다 슬픔을 느끼고 많이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슬픔은 단순히 멀리 두고 극복할 대상이 아닙니다. 슬픔보다 기쁨이 훨씬 좋다고 강조해서도 안 되고, 기쁨에 관한 밝은 책들만 읽혀서도 안 됩니다.

진짜 슬픈 이야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불행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소년의 이야기가 바로 <플랜더스의 개>입니다. 이제 부모가 되고 나니 이런 책을 읽으면 고통과 슬픔이 더 커집니다.

죽음을 직시하라고 알려주는 동화가 무척 드물지요.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만 보여주는 동화가 대부분입니다. 죽음을 다루더라도 아주 아름답게 살짝 겉만 건드리고 넘어가지요. 소멸에 관한 책, 불행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이 우리네 동화에서도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김탁환이 이야기하는 프리모 레비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작품이 인상적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부터 인간다움으로서의 글쓰기를 체험한 작가 프리모 레비의 문장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아침에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게 오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김탁환은 <크눌프>와 함께 자신의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작품인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이야기한다. 김탁환은 이 소설이 예술가들이 꿈꾸는 본질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달과 6펜스>를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이 책을 읽고 작품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다.

 

"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감명을 받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읽어가겠다>를 읽으면서 소설가 김탁환이 소개하는 멋진 소설들의 명문장들을 밑줄쳐가면서 음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나서 김탁환이 소개하는 소설들을 한 권 한 권 따로 읽어볼 계획이다. 다양한 소설 속 인물들이 삶의 고통과 고민을 견뎌내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의 삶은 보다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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