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강아지의 비밀 생활 - 강아지 육아 초보들에게 꼭 필요한 반려 교과서 반려인 클래스 시리즈 1
사라 화이트헤드 지음, 서종민 옮김 / 길(길퍼블리싱컴퍼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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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강아지의 비밀 생활>의 저자 '사라 화이트헤드'는 동물행동심리전문가이며 반려견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영국에서, 강아지 교육과 훈련 분야에 손꼽히는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저자는 영국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학습방법으로 강아지와 성견을 훈련하는 클레버 도그 컴퍼니를 운영한다. 이 책은 강아지와 특별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강아지들이 왜 그렇게 생동하는지, 강아지들이 어떻게 우리와 소통하고자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지 강아지의 비밀 생활>에서는 강아지들이 앞을 볼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이빨도 나지 않은 채 체온을 유지하려 엄마개와 다른 강아지들에게 꼭 붙어있어야만 하는 갓난쟁이 시절부터 특유의 카리스마를 가진 자신감 넘치는 개로 자라나기까지의 수 주, 혹은 수개월에 달하는 시기를 세세히 살펴본다. <아기 강아지의 비밀 생활>에서는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방법이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방법, 또는 반려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 여러 특별한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여러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함께 몇몇 견종에 대한 소개도 곁들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의 외모를 보고 강아지를 고른다. 하지만 저자는 집과 생활방식에서 강아지가 함께할 수 있는지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는 처음 강아지와 함께 살아가고자 할때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소개한다. 이 책에는 어떤 크기의 강아지를 원하는지, 강아지와 함께 운동할 시간을 얼마만큼 낼 수 있는지, 예방접종 비용이나 애완동물 용품 비용 동물병원 진료 비 등은 고려해 보았는지, 데려오고 싶은 견종이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이 있는가 등에 대한 체크리스크를 살펴볼 수 있어서, 강아지를 데려오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을 알려주어 도움이 되었다.



<아기 강아지의 비밀 생활>은 영국 지상파 방송 '채널5'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든 것으로, 강아지 육아 초보들에게 꼭 필요한 반려교과서와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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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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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데이브 컬런'은 세기말인 1999년 4월 20일 화요일에 일어난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10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집필 끝에 <콜럼바인>을 출간했다. 이 책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낸 재학생 에릭과 딜런의 심리 분석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담아내며 2010년 에드거 상, 굿리드 초이스 어워드와 반스앤노블스 어워드 최고의 논픽션 상을 수상했다. 

 

<콜럼바인>은 소설가 헤밍웨이가 쓴 <무기여 잘 있거라>에 등장하는 '세상이 모든 이를 무너뜨리면, 무너진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강해진다'라는 글귀로 시작하여 인상적이다.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런'이 헤밍웨이가 쓴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한 것은 비극의 처참함과 그로 인해 우리들은 더욱 연대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나갈 것임을 단언하는 문장이다. <콜럼바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현되어 희생자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몸 안으로 들어오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콜럼바인 사태는 인질극이 아니었다. 에릭과 딜런은 어떤 요구조건도 내걸 생각이 없었으며 둘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콜럼비아 고등학교에서 총격살인으로 교사와 학생을 포함하여 13명의 사망자와 24명의 무상자가 발생했다. 이 비극적인 세기말 테러를 일으킨 가해자가 다름아닌 콜럼바인 고등학교를 다니는 2명의 재학생이라는 사실이 미국을 충격으로 빠트렸다.

 

"월요일 아침이면 2000명의 아이들 모두 댄스파티를 끝내고 무사히 학교로 돌아올 터였다. 하지만 다음날인 1999년 4월 20일 화요일 정오에는 학생과 교직원 24명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13구의 시신은 여전히 교내 건물에 남아 있고, 두 구는 바깥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사건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을 다루는 무책임한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 따끔하게 비판한다. 대상을 관찰하는 행위로 인해 대상 자체가 바뀌게 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동한 것이다. 보통 콜럼바인 사태를 떠올릴 때면, 트렌치코트 마피아 출신의 부적응자 고스족 두 명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반목 때문에 고등학교에 난입하여 운동선수를 공격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고스족도 부적응자도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도 아니었다. 반목도 트렌치코트 마피아도 아니었다. 이런 요소들은 원래 콜럼바인에 있던 것들이다. 사건 초기의 뉴스 보도는 잘못된 가정과 어처구니없는 결론으로 얼룩진 추측성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때 자극적인 뉴스가 쏟아지며,  올바른 취재를 하려는 행위보다는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내용을 보도하려는 언론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비극 앞에서 제대로된 질문을 하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콜럼바인은 어느덧 미국에서 사춘기에 관련된 온갖 고약한 면을 모두 담고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추악한 면이 폭로되어 행복하다는 학생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경악했다. 언론매체는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을 훨씬 과장되게 묘사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살인의 가해자인 에릭과 딜런이 살인을 저지른 본성과 심리적인 원인은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흔히 우리는 무차별 총격을 해대는 아이들이 외톨이일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에릭은 귀여운 외모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딜런은 마음이 통하는 여자친구도 없고, 친구도 많이 않고,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며, 운동실력이 형편없고, 못생긴데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삶에 야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세기말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테러 사건의 이유나 동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살인을 저지른 두 명의 재학생 중 에릭은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두 가지 대표적인 특징을 지닌다. 우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다. 아주 사소한 개인적 이들을 위해 남을 속이거나 해치거나 죽인다. 둘째는 이런 배려 없음을 놀라울 정도로 잘 은폐한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가 그토록 위험한 것은 사람들을 기만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엄청난 자존감과 우월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밑바탕에 분노의 감정이 강하게 흐른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본성에 양육과정이 복합되어 생겨난다. 사이코패스의 징후는 이른 시기에 나타나며 평범한 형제자매를 가진 안정된 가정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애초부터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에릭에게 행복이란 우리 같은 사람이 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에릭이 재밌고 똑똑한 미소를 지으며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사람들에게 감추고 있을 동안 딜런의 내부는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찼다.

 

"에릭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미친 것도 아니었다. 사이코패스는 이와는 다른 별개의 범주다. 이들의 뇌는 정상인의 뇌와도 정신병자의 뇌와도 다른 그들만의 특징을 지닌다. 에릭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려고, 그리고 살인 행위를 즐기려고."

 

 

"에릭에게 콜럼바인 학살은 공연이었다. 일종의 살인의 예술. 일지에서 그는 실제로 청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청중의 대다수는 내 동기를 이해조차 못하겠지." 그는 콜럼바인을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살인 무대로 기획했는데, 그가 가장 우려한 점은 우리가 너무 멍청해서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이야말로 에릭의 궁극적인 무기였다. 그는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스포츠 경기나 댄스 같은 일회성 사건으로 두려워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평생 두려움을 갖고 살기를 원했다. 이는 결국 들어맞았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두려워했으니까 말이다."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살인의 진부함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는 두 명이 짝을 이뤄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것인데 가장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우울증 환자와 가학적인 사이코패스가 만날 때 폭발적인 짝이 된다. 이 관계를 통제하는 것은 사이코패스지만, 불같은 동료는 거대한 먹잇감을 처리할 때까지 그의 흥분을 계속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딜런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결정적인 경험은 자기가 느끼기에 아주 심각한 상실이나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릭과 딜런에게는 트라우마가 분노를 작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딜런은 자신의 삶 전체가 실패작이라 여겼고 에릭은 과거에 체포되었던 경험으로 분노가 폭발했다. 콜럼비아 고등학교 총격사건의 주범인 에릭과 딜런은 비극을 스스로 실행한 후 자살을 선택했다. 2년 동안 자살을 생각해온 딜런은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으며 자살의 의지를 이끌어줄 파트너 에릭이 있었다. 에릭은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에릭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강조했고 딜런은 운명에 순응하는 쪽이었다. 딜런은 에릭과 달리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에릭으로서는 불안정한 파트너를 공상에서 현실로 한 발짝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에릭은 딜런처럼 우울증을 앓지 않았고 정신병의 징후도 없었다.

 

 

처음부터 에릭과 딜런이 살해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에릭은 대학살을 꾀하기 전에 사소한 범죄를 저질렀다. 에릭은 사춘기 전부터 자신이 살인자라는 특정한 부류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신호를 드러내고 다녔다. 콜럼바인 총격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에릭과 딜런은 절도를 저지른 범죄 사실이 있었다. 에릭과 딜런은 학교 컴퓨터를 해킹해서 사물함 비밀번호 목록을 입수하여 사물함을 털기 시작했지만 들켰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인 에릭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학생주임에게 에릭이 미성년자라고 주장하며 에릭의 범죄 기록을 폐기했다. 이후 에릭이 콜럼바인 고등학교 학생인 브룩스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건이 있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이 일어난 13개월 전에 브룩스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날 밤 조사관이 집에 와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경찰을 지방검찰청에 이를 통보하지 않았다. 에릭과 딜런은 아무 일 없이 교화 프로그램에 면접을 보러 갔다. 브룩스의 부모는 에릭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는데 경찰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콜럼바인 총격사건의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충분히 에릭과 딜런의 전조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 어른들이 이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들은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털어놓는 자백이다. 총격자의 81퍼센트가 자신의 의도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절반 이상의 총격자들이 적어도 두 명 이상에게 말했다. 대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설렁설렁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눈여겨봐야 한다. 모호하고 암시적이고 허황된 위협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반면 위협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동기와 실행 방법까지 거론하면 대단히 위험한 경우다. 감상적으로 토로하는 아이는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에서 장애를 입었지만 살아난 생존자 '패트릭'과 한쉬도 쉬지 않고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사망한 '데이브' 선생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또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을 직접 경험하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감정을 너무 많이 느끼거나 반대로 너무 적게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비극의 책임은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감정을 너무 많이 느끼는 아이는 과거의 일이 불쑥불쑥 생각나서 고통스럽고 공포의 기억을 떨칠 수가 없으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4월 20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증상 없이 몇 시간, 몇 주, 몇 달을 지내다가도 광경이든 소리든 냄새든 사소한 계기 하나로 이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사건에 대한 나쁜 기억 정도가 아니다. 사건이 정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이와는 정반대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문을 완전히 닫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쁜 기억과 함께 즐거운 기억, 기쁨도 다 사라진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멍한 상태가 된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은 미국 경찰의 대응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계획을 개발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책반이 꾸려져서 2003년에 '총격자 대처방안'을 발표했다. 새로운 대처방안의 핵심은 적극적이라는 말이었다. 이어지는 10년 동안 버지니아 공대에서와 같은 최악의 총기사건을 포함하여 여러 사건이 잇달아 터졌는데, 이때 경찰과 경호인들은 잽싸게 들어가 총격자를 제지하고 생명을 구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 이후 10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학교 총기사건은 80건이 넘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에 대한 비극적인 보고서를 읽으면서 2014년 4월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아직도 세월호에서 구조된 많은 학생들이 생존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아픔일 것이다. 대한민국도 2,000페이지가 넘는 문서와 영상, 100명이 넘는 등장인물, 9년 동안의 치밀한 조사로 탄생한 책 <콜럼바인>의 이야기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극적인 사건을 올바르게 다루며 투명하게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극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희생자들과 생존자, 유가족들의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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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지 않아도 괜찮아 -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연습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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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지 않아도 괜찮아>는 일본의 심리 카운슬러인 고코로야 진노스케가 알려주는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비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고코로야 진노스케는 긍정적이고 희망에 찬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이 책은 1장 그대로 괜찮다, 2장 패턴을 깨라, 3장 열심히 하지 않기, 4장 민폐를 끼쳐라, 5장 바꾸어가기, 6장 모든 게 기분 탓, 7장 나의 즐거움이 먼저, 8장 원래 행복하다, 9장 솔직해져라, 10장 지금 이 순간에 웃자, 11장 손해를 보자, 12장 야비한사람이 되자, 13장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기, 14장 제대로 살자 라는 1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지나치게 서두르고 지나치게 초조해하는 것은 '잘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만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잘하지 못하는 나, 하지 않는 나, 도움을 받는 나, 눈치 없는 나, 잘 모르는 나를 소중히 여겨줄 때이다. 잘하지 못하는 나라도괜찮다고, 그렇게 믿어보자.


"훌륭해지고 나서 비로소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이런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됩니다. 유감이지만 당신은 지금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보다 더 좋아지지는 않아요.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 멋진 미래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장은 대단한 무언가가 되거나 남들은 못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지금까지 해온 일에 "정답! 예스! 오케이! 완벽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셀프 이미지(자기 평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시작하는 용기,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그만두는 용기, 남에게 아첨을 떨지 않는 용기, 애쓰지 않는 용기, 게으름을 피우는 용기, 적당히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행한 날을 마주치는 거은 괜찮지만 불행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릴 적 선생님이나 친구, 부모님, 혹은 저명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아직도 그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을 의심하고 깨부수는 경험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나만의 정의가,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정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정의가 존재하고, 모두 내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옳다는 개념은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의는 스스로를제한하며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만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또 정의는 사람을 심판합니다. 정의가 심판하고 있는 한, 악인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속 정의와 불의는 제로가 되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제약을 넘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마음속의 정당함과 부당함을 하나씩이라도 줄여가는 것이 좋습니다."


저자는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이 주위 사람들에게 '난 당신들을 믿지 않아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열심히 하지 않을 때가 기회의 순간이다. 열심히 하지 않을 용기, 열심히 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는 용기, 열심히 하지 않도 다른 사람의 칠절함을 신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열심히 하지 않거나 지금보다 성장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쓸모없어진다'는 말은 그렇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진짜 내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절규와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당신은 나답지 않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큰 목표를 달성하거나 민폐를 끼치지 않고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겁니다. 요컨대,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모습으로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자는 열심히 노력하던 시절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워하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내가 열심히 한 거니까, 나 혼자 힘으로 이루어낸 거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는 '에고'에 빠져서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죠. 돌아보면 무척이나 오만하던 시절이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눈앞의 자신을 더욱 기쁘게 해주려면 에고로 가득한 삶을 살면 된다.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고 결과적으로 또 다른 나인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해야만 하는 감사에서 마음에서 흘러넘치는 진짜 감사로, 감사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감사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굉장한 일을 해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고,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위에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닫아가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하지만 때로는 타닝에게 민폐를 끼쳐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을 열어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힘을 과신다는 대신 주위 사람들을 믿고 그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뿌리치는 이유는 '내개 주어진 것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주위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렇게 폐를 끼치면 미움 받는다'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남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민폐를 끼쳐보라고 말한다. 그런 각오가 없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 용기가 없으면 당신은 또다시 세상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렇게 눈치 보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저 행복하게 성과를 얻기 위해서 감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것이 '해야만 하는 감사' '성과를 얻기 위한 타산적 감사' 입니다. 반면에 행복한 사람은 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감사할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니까요."


저자는 '신은 항상 '예스'라고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사랑받고 있으니까" 일단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왜냐하면 생각이 먼저이고 현실은 그다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생의 고민이나 문제는 '나답지 않을 때' 생긴다고 강조한다. 나답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때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때 그럴 때 눈앞에 문제가 나타난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별 볼일 없는 부분, 그리고 마음속 분노와 슬픔과 열등감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진짜 나다움'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스스로에게 "더 열심히 해!" "왜 못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건 괜찮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고 괴롭죠.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험담하고 비하하는 것을 끝내는 게 좋습니다. 내가 나에게 함부로 하기 때문에 주위에서도 당신에게 똑같이 대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저자는 평온한 사람은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결심한다는 것은 잠재의식이 아닌 의식의 차원이다. 스스로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의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답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상대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했다. 상대가 그 일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갖는 원망이라는 것은 대개 이 두가지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합친 것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사랑을 못 받았다'라는 것이고요. 당신은 그 사실을 용서하지 못하고 몇 년째 계속 토라져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그때'에 멈추어 흘러가지 않는 겁니다. 시간이 멈추어있는 탓으로 당신은 즐거운 일도 좋은 일도 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거죠. '지금 나를 가장 손해 보게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지금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바로 나'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이것이 진실입니다."


저자는 기분은 기분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기분 탓으로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의 내면에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오르고 있다면 거기에는 '불쌍해'라는 마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불쌍해'라는 마음은 그저 당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라는 걸 명심하자. 저자는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견딜 수 있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흘려보낼 수 있다'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나쁜 일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유연함이란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고, 그 자신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믿는 힘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도리에 어긋났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우리의 허물을 북북 찢어버립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혹시라도 허물이 벗겨질까 두려워하며 잔뜩 움츠리고 있을 뿐이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어리석다고만 여겼던 그들은 아무런 '죄악감' 없이 저 위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두려움과 죄악감에 붙잡혀 고통 받고 있는데 말이죠. 어느 날 최악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저 높은 곳에서 이곳으로 오라고 당신을 계속 부르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저자는 상담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이 기뻐하지 않거나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나는 가치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자신감이 없어서 열심히 노력한다. 연애와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들을 돕거나 배려하는 것으로 사랑을 얻고 싶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상대가 기뻐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할 때 상대방도 나를 찾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 '보상받는 노력'이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이란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고 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피곤하지도 않고 애쓴다는 생각도 들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일이 잘 안 풀리는데다 피곤하기만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다른 일들도 흐름을 타고 잘 풀립니다. 더 나아가 열심히 하던 일을 그만두어도 타력의 힘에 의지해 더욱더 일이 잘 풀립니다. 그러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고 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이것도 로켓을 우주로 쏘아 올릴 때처럼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으로는 좋습니다. 분노와 슬픔, 질투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에서 더 센 파워가 나오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대기권을 빠져나간 후에는 제어가 되지 않아 결국 폭주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노력의 교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웃으며 받아들여보세요.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워집니다. 폼을 잡을 필요도 없고 화가 나지도 않습니다. 현재의 상태를 긍정하면 거기에서 밝은 미래가 생겨나는 법입니다. 지금 웃으면 앞으로도 계속 웃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일과 인간관계, 그리고 노력까지도 모두 덧셈을 버리고 계속 뺄셈을 하라고 말한다. 자신감은 갖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감이 있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그것을 한번 잃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충분히 있다' 그러니 '잃어버려도 괜찮다'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을 그만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해보는 것이다.


" "행복해!" "고마운 일이네!" "나, 훌륭한 걸!"이란 말은 최후의 마법주문. 앞으로의 현실을 만들어가니까요. "부족해" "난 아직 멀었어" "어차피 난 이런 사람인 걸"이란 말은 최초의 저주. 지금까지의 현실을 만들어왔으니까요."


저자는 '손해를 본다'는 것은 지금까지 두렵거나 귀찮아서, 혹은 무리라고 생각했거나 실패할 것 같아서 피해왔던 일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무난한 길을 선택해온 사람이라면 고난과 모험에 도전해본다. 혹은 의미 없는 일에 시간과 돈을 써본다. 때로는 싸우고 인색하게 굴고 엉뚱한 짓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본다. 반면에 지금까지 줄곧 도전하며 고난을 겪어온 사람이라면 평화롭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쳐본다. 그곳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주위 사람들은 잊고 자기만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지내본다. 저자는 이렇게 스스로 금기시해온 일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원하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일을 거절했기 때문에 비로소 내 안에 자신감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항상 "야비한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이유는 야비한 사람은 '죄악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야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사는 것을 '나쁘다(두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심판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죄악감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야비한 사람은 행동도 다르다. 그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 때문에 일을 시작한다. 무엇을 숨기거나 속죄하는 일 없이 그냥 즐기는 것. 이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야비하다'를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금기(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걸려있는 금지, 부정, 억악의 저주를 푸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피하고 있었던 미지의 세계를 알게 된다. 야비하게 금기를 어긴다는 것은 '타력에 몸을 맡기고 본래의 나다움을 발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있을 수 없다' '절대 안 된다'고 거부해온 곳에 인생을 열어줄 열쇠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대로 사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걸까, 돈이 없는데도 하는 걸까.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걸까, 시간이 없는데도 하는 걸까. 재능이 없어서 못하는 걸까, 재능이 없는데도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걸까. 손해를 보거나 남들이 싫어하니까 할 수 없는 걸까, 아니면 손해를 봐도 남들이 싫어해도 그만둘 수 없어서 하는 걸까. '그래도 한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당신은 돈과 시간, 재능, 그리고 용기까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야비한 사람은 죄악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동에 제약이 없고 죄악감에서 비롯된 친절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친절함이 흘러넘칩니다. 야비한 사람은 무언가를 숨기거나 자신의 행동을 애써 정당화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다. 나답다. 아첨하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다. 이것이 야비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어때요? 야비한 것도 나름 괜찮죠?"


저자는 남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제대로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이 '설레는 시간'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행동을 바꾸어서 알기 쉬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지 이야기한다. 불안해하는 대신 그냥 괜찮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뭐든지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범위가 늘어나는 것을 '허용한다' 혹은 '성장'이라고 말한다. 싫고 좋은 감정을 분명히 드러내는 자신이어도 괜찮다. 


"웃는 것과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다릅니다. 행복이란 언제나 웃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웃어보세요. 괴로워도 일단은 웃어보세요. 웃는데도 전혀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나요? 늘 웃음으로 얼버무렸던 사람은 괴로워도 즐거워도 웃습니다. 그런 사람은 웃지 않기 위한 재활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진짜 웃음'을 짓는 것이 가능해지겠죠. 늘 화를 내거나 못마땅해 하고 불쾌한 얼굴을 했던 사람은 지금부터 항상 웃어봅시다. 반대로 우습지도 않은데 늘 웃음으로 얼버무렸던 사람은 웃지 않는 걸 연습해봅시다."


저자는 노력으로 현실을 바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즐겁게 해서 외부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보라고 말한다. 


"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나는 쓸모없다며 자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책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어른들이 붙여놓은 '낙제 꼬리표'를 믿고 '내가 아닌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대로는 안 돼'라는 저주에 걸려버렸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행동을 바꿔보세요. 열심히 하지 않을 것. 손해를 볼 것. 야비하게 살 것. 누군가를 돕지 않을 것.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좋아하는 일만 할 것. 참는 것을 그만둘 것."


저자는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겠다는 배짱을 가지고 꾸밈없이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따라서 내 생각을 바꾸어야 현실도 달라진다. <더 이상 참지 않아도 괜찮아>는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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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 -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
이미령 지음 / 샘터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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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는 수년째 'YTN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에서 하루에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외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저자 이미령의 위로하는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에세이이다. 이미령은 팔만대장경을 번역하고 불교의 세계를 강의와 글로써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인물이며 책을 읽는 시간은 세상의 작고 여린 것들을 위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책 속 세상에는 영웅도 악한도 모두가 저마다 자기 사연을 늘어놓습니다. 거인처럼 여겨졌던 이들에게도 탄식이 쏟아지고, 위선으로 똘똘 뭉친 악인에게도 수줍음이 있으며, 세상에서가장 선량한 자에게도 교활한 눈빛이 숨어 있고, 명석한 철인에게도 생명에 대한 무지가 서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 속삭임과 흐느낌을 만나면서 책은 내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굳건하게 품던 생각들에 틈이 생기고, 이전에는 보지 못한 면을 보게 됩니다. 책이 내게 열어주는 세상은 이렇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탄식합니다.

'세상은 얼마나 작고 여린 것들로 가득 차 있는가!' "


이 책은 함민복의 '눈물을 외 짠가',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로실드의 바이올린', 윤태호의 '미생',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 광대', 줌파 라히리의 '일시적인 문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 윤홍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언 매큐언의 '속죄', 김주영의 '도둑견습',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고은규의 '알바 패밀리', 페터 빅셀의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던 황소',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랑',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배리 하인즈의 '케스-매와 소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한승원의 '사람의 맨발', 류수홍의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허준의 '잔등', 존 버거 장 모르의 '행운아', 루쉰의 '고향',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푸른 알약', 전영택의 '화수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문학작품들을 저자만의 책을 읽는 깊이 있는 시선으로 소개한다.


이 책에서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라는 작품을 '익명의 낙원 잃고 휘청거린 하루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귀가 인상적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리카락도 빳빳하게 섰다. 비둘기의 눈이 미처 다시 뜰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는 후다닥 방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안전 자물쇠의 꼭지를 돌리고 부들부들 떨며 비틀비틀 침대까지 가, 마구 방망이질 쳐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털푸덕 주저앉았다. 이마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목덜미와 등허리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비둘기>는 조나단에게 벌어진 이날 하루의 소동과 지독한 혼란을 지겨울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한 인간이 자신이 지켜온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길 때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연쇄작용을 일으키는지가 섬뜩할 정도입니다.(...)

현대인들은 익명성 속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하지요. 하지만 익명성 속에서 지켜지는 자신만의 왕국은 이처럼 덧없고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허수아비보다 못한 현대인의 자존감, 그 무게가 황당할 정도로 가벼워서 오히려 현대인들은 휘청거리며 사는 모양입니다."


저자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작품을 '갑작스레 닥친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주제의 글로 풀어낸다. 우리의 현실은 온통 뒤틀리고 꽉 막힌 난제로 가득한 반명 인간의 힘은 놀랍고 위대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펼친 이 세계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카뮈의 <페스트>는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을 대, 자기 책임도 아닌 일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에 말려들 때 펼쳐지는 사람들의 혼돈과 방황, 저마다의 극복 의지를 세밀하게 담고 있다. 특히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 안에서 매일 죽음의 공포와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몸부림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메스르 사태를 겪어보았고, 해마다 쉬지 않고 발생하는 조류독감과 같은 가축 전염병오 경험했지만 메르스로 인해 일상이 정지당하고 격리된 사람들을 둘러싼 반응이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그들이 갇히게 된 것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안전지대 안팠의 모두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기심을 보여준다. 저자는 오해하고 왜곡할 때 인간은 재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재난이 반복되었을 때 또다시 절규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이런 재난에서 자유롭지도 무관하지도 않다는 것을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 "영웅 놀음은 집어치우고 전반적인 해방을 기다립시다. 나는 그 이상은 더 나가지 않겠어요."

"랑베르. 절대로 옳은 말씀이에요.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문제입니다. ......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내가 전율하는 부분은, 우리에게 닥친 '불행'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극복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불행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딱 저마다의 관점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는데, 이때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현실을 추상적으로 대하려는 생각이라고 카뮈는 지적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어떤 의미를 자꾸만 덧붙여이고 모호한 관념으로 대할 때 인간은 그런 불행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행이 반복될 때 또다시 절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이 부분은 파늘루 신부가 어린아이의 죽음을 마주할 때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페스트에 걸려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구원해달라고, 그래도 신은 사랑이시라며 기도하는 신부를 향해 의사는 말합니다.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이 세상이라면 아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구원'이라는 사탕발림을 거부하며, 지금은 죽음과 불행을 직시하고 그것들과 싸워야 할 때라는 것이 의사의 생각입니다. 이런 어린 양들의 저항에 신부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실존을 온갖 메타포와 이론으로 치장하고서 저 멀리 있는 구원만을 들먹이거나, 되돌아갈 수 없는 전생을 들먹이는 종교인들로서는 이런 '어린 양'들의 저항, '죄 많은 범부'의 반발에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의사는 자신의 이 과격한 발언까지도 사과합니다. 그런 종교적 자세 또한 불행한 현실에 대처하고 싸우려는 하나의 방식일 테니까요. 이렇게 한계에 봉착한 인간은 저마다의 지혜를 짜내서 힘을 합해야 한다고 카뮈는 말합니다."


저자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통하여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을 향한 어느 필경사의 외침'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여 흥미롭다.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 말은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저항을 상징하는 문장이 됩니다. 원 문장은 "I would prefer not to" 입니다. 이 문장은 매우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어요." (...)

하지만 "싫습니다"라는 말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에는 뭔가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집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건 아니면서도 결국은 하지 않겠다는 쪽이니 당신이 그건 이해해줘야 한다는, 사뭇 인간적인 배려를 요구하는 듯한 거절이기 때문입니다."


"꽉 막힌 세상.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세상. 인정이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하오는 세상. 능률과 성과가 우선이어서 지체되는 것이 재빨리 폐기 처분해야 하는 세상. 그 속에서 버티려면 감정도 의지도 죽여야 하는 세상. 이미 자신의 선택이랄 게 없는, 남에 의해 정해져 있는 세상. 바틀비의 삶은 이런 세상에 대한 항거였습니다."


저자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쪼그라든 세상에서 만난 운명의 지배자'라는 주제로 쓴 글이 눈길을 끌었다.


" "못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못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은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엔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이 말 하나에 조르바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평생 '무엇'에 대해 알아보느라고 한 번도 '무엇'인 적이 없었습니다. 아, 정말 그렇습니다. 불교신자는 붓다에 대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하느라 일생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건 조르바 스타일이 아닙니다. 조르바는 붓다로 살아버립니다. 붓다에 대해 알아보는 게 아니라 붓다고 사는 것이지요. 진리에 대해 알아보는 게 아니라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자니 그것을 '논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원리로, 조르바는 일할 때면 일 그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 "대체 저 신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살아야 할 때 제대로 살지 못하고, 늘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은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울을 품에 넣고 다니는 이들은 늘 생명의 무게를 달며 값을 따집니다. 하지만 조르바에게 생명은 처음이자 끝입니다."


저자는 '존 버거, 장 모르'의 '행운아'를 통해 '불행이 넘쳐나는 시대에 '행운아'가 되는 법'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한다. 불행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생각하며 사는 시골의사 존 사샬은 그의 직업에서 인간이 행운아가 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 "진찰을 잘하는 의사는 드문데, 이는 그 의사에게 의학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관련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실들-단순히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 역사적, 환경적인 것까지-을 고려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시골의사 존 사샬은 이처럼 환자를 온전한 하나의 인간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 역시 총체적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환자의 질병과 환자의 인간 전체를 분리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잘 살필 수 있는 눈과 가슴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는 상식이라는 늪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는 늘 사색하고, 시험해보고, 비교해보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에게 있어 매일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들 중에 그 어떤 환자도 똑같은 증상을 가진 이는 없고, 똑같은 결론에 이르는 이도 없습니다. 이런 가운에 존 사샬은 자신이 알고 잇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그동안 상식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인지는 늘 의심하고 사색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슬픔을 마주할 때 내 슬픔도 끝난다>의 원고는 저자가 <법보신문>에 연재한 글들이며, 프롤로그에 실은 글은 국방부에서 펴낸 <마음의 양식>에 담은 글을 저자가 다듬은 것이다. 저자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를 비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책 읽기는 그 빈 자리에 책 속의 주인공을 맞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내 속에 들어와 있던 작품 속 주인공을 내보낸다. 저자는 본래의 나로 돌아와서 책들이 내게 무엇을 보여주었고, 내게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일, 이것이 책 읽기의 본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문학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동경하게 하고, 질투하게 하고, 두렵게 만듭니다. 각박한 일상을 살아가느라 딱딱하게 굳은 감성을 간질이고, 엄숙한 철학을 논하느라 지쳐버린 이성을 부드럽게 녹이빈다. 세상의 구원을 저 혼자 장악한 듯 위세를 떨치는 종교와 세력의 덧없음을 깨닫지 못한 채 권세를 부리는 권력을 향해 혀를 내밀어 조롱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문학에서는 참 다양한 인간을 만날수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뻐기는 사람, 소심한 사람, 비열한 사람, 허황된 사람, 저속한 사람, 자기 꾀에 넘어가는 사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내는 일이빈다. 그들이 웃고 우는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불러낸 이들의 심정을 좇다 보면 어느새 삶의 위안을 얻은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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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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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고, 아울러 정신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려 한다. 단순한 욕망은 단순한 유토피아를 낳는다. 유토피아는 해결책은 고사하고 미리 재단한 대답을 제공하지도 않지만, 옳은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저자인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유럽의 젊은 사상가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말하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출간된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국가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국제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기본소득 운동을 촉발히켰다.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선데이 타임스 등에서 이 책을 특집 기사로 다루었고, BBC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세상은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청년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경력 초기에 몸과 마음이 탈진하고, 항우울제를 상용한다. 사회는 실업과 불만, 우울증 같은 집단적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개인 탓이라고 거듭 비난한다. 성공이 선택이라면 실패도 선택이다. 일자리를 잃었는가? 더욱 열심히 일했어야 했다. 몸이 아픈가? 건강한 생활방식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불행한가? 약을 복용하라."


저자는 자본주의가 풍요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은 확실하지만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진보의 실마리는 잘 사는 것의 의미를 아는 지혜로서 어떤 지식 경제로도 획득할 수 없다. 유토피아는 '좋은 장소'와 '없는 장소'를 동시에 가리킨다. 우리의 유토피아는 작은 규모로 시작할 것이다. 세대를 내려오는 동안, 각성한 몽상가가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가난하고 굶주리고 더러울 것이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어리석을 것이며, 질병에 시달리고 추할 것이다. 유토피아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 책에서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완성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 살아 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이다'라고 말한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글귀가 인상적이다.


"정신의 방향을 미래에 맞춰야 한다. 인정사정없이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미디어와 여론 조사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불평을 쏟아내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 대안을 생각해내고 새 집단을 결성해야 한다. 한계가 있는 시대정신을 뛰어넘어 시민이 공통으로 믿는 이상주의를 인식해야 한다."


저자는 이제 기본소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본소득 제공은 자본주의가 내내 추구했어야 했던 과업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바쁘게 생활하는 사람과 가난하게 생활하는 사람 사이에는 주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빈곤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람은 상대적으로 빈곤을 느낀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항상 불평등이 불행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현대 시장은 유용성, 질, 혁신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오로지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평등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부가 상류층에 집중될수록 기업 변호사, 로비스트, 초단타 주식 거래자를 요구하는 수요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결국 수요는 외부와 단절되어 형성되지 않고, 지속적인 협상의 산물로서 국가의 법과 제도,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로 혁신하지 않아야 이익을 얻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똑똑한 인재 수천 명이 결국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뿐인 고도로 복잡한 금융 상품을 고안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인류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놓쳤을지 상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힘쓰지 말고 부를 창출하느라 모든 재능을 쏟아 넣어야 했다.


"우리가 어느 때보다 부유해지고, 젖소가 더욱 많이 우유를 만들어내고, 로봇이 더욱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세상에서는 친구나 가족이나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과학, 예술, 스포츠, 그 밖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활동에 시간을 쏟을 여지가 있다. (...) 우리가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일에 집착하면 불필요한 직업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선진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국민에게 단 한 푼도 벌어주지 않으면서 관리자의 수가 계속 늘어난 것이 그 예이다."


저자는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주체는 시장이나 기술이 아니라 사회라고 말한다.


"다음 질문에 대답하려면 자신과 자신의 개인적 이상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예를 들어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가? 자원 봉사 활동에 들이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가? 아니면 예술 활동? 스포츠? 미래 교육은 고용 시장뿐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삶에 대비하도록 자신을 준비시켜야 한다. 금융 부문을 제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라나는 경제학자들에게 철학과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인종, 차별, 사회경제적 집단을 아울러 결속을 더욱 강화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회학을 가르쳐야 한다."


저자는 역사의 경로를 결정하는 요인은 기술 가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형성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노동시장은 더욱 비효과적으로 번영을 분배할 것이다. 저자는 기술이 베푸는 축복을 누리고 싶다면 궁극적으로 재분배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돈의 재분배(기본소득), 시간의 재분배(주당 근로시간의 단축), 과세의 재분배(노동이 아닌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 로봇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저자는 세계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이민에 관해 우유부단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금융 부문을 정밀하게 조사하여 위기가 닥치자마자 휘청거리지 않도록 은행을 압박해 더욱 커다란 완충 기제를 구축하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환경미화원, 간호사, 교사의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상당히 많은 수의 로비스트, 변호사, 은행가들의 임금은 삭감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 세대에서 가장 총명한 인재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대 난제, 예를 들어 기후변화, 불평등, 노령인구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서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게 하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의 개념에서 주당 근무시간을 줄이자는 주장은 주말을 길게 무기력하게 보내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일들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자는 뜻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이어야 하고, 불가능에 도전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귀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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