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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데이브 컬런'은 세기말인 1999년 4월 20일 화요일에 일어난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10년에 걸친 자료조사와 집필 끝에 <콜럼바인>을 출간했다. 이 책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낸 재학생 에릭과 딜런의 심리 분석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담아내며 2010년 에드거 상, 굿리드 초이스 어워드와 반스앤노블스 어워드 최고의 논픽션 상을 수상했다.
<콜럼바인>은 소설가 헤밍웨이가 쓴 <무기여 잘 있거라>에 등장하는 '세상이 모든 이를 무너뜨리면, 무너진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강해진다'라는 글귀로 시작하여 인상적이다. <콜럼바인>의 저자 '데이브 컬런'이 헤밍웨이가 쓴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한 것은 비극의 처참함과 그로 인해 우리들은 더욱 연대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나갈 것임을 단언하는 문장이다. <콜럼바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구현되어 희생자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몸 안으로 들어오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콜럼바인 사태는 인질극이 아니었다. 에릭과 딜런은 어떤 요구조건도 내걸 생각이 없었으며 둘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콜럼비아 고등학교에서 총격살인으로 교사와 학생을 포함하여 13명의 사망자와 24명의 무상자가 발생했다. 이 비극적인 세기말 테러를 일으킨 가해자가 다름아닌 콜럼바인 고등학교를 다니는 2명의 재학생이라는 사실이 미국을 충격으로 빠트렸다.
"월요일 아침이면 2000명의 아이들 모두 댄스파티를 끝내고 무사히 학교로 돌아올 터였다. 하지만 다음날인 1999년 4월 20일 화요일 정오에는 학생과 교직원 24명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13구의 시신은 여전히 교내 건물에 남아 있고, 두 구는 바깥에 쓰러져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교내 총기사건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을 다루는 무책임한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 따끔하게 비판한다. 대상을 관찰하는 행위로 인해 대상 자체가 바뀌게 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동한 것이다. 보통 콜럼바인 사태를 떠올릴 때면, 트렌치코트 마피아 출신의 부적응자 고스족 두 명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반목 때문에 고등학교에 난입하여 운동선수를 공격한 사건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고스족도 부적응자도 갑작스러운 감정의 폭발도 아니었다. 반목도 트렌치코트 마피아도 아니었다. 이런 요소들은 원래 콜럼바인에 있던 것들이다. 사건 초기의 뉴스 보도는 잘못된 가정과 어처구니없는 결론으로 얼룩진 추측성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때 자극적인 뉴스가 쏟아지며, 올바른 취재를 하려는 행위보다는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내용을 보도하려는 언론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비극 앞에서 제대로된 질문을 하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콜럼바인은 어느덧 미국에서 사춘기에 관련된 온갖 고약한 면을 모두 담고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추악한 면이 폭로되어 행복하다는 학생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경악했다. 언론매체는 아이들의 시선과 생각을 훨씬 과장되게 묘사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살인의 가해자인 에릭과 딜런이 살인을 저지른 본성과 심리적인 원인은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흔히 우리는 무차별 총격을 해대는 아이들이 외톨이일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에릭은 귀여운 외모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딜런은 마음이 통하는 여자친구도 없고, 친구도 많이 않고,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며, 운동실력이 형편없고, 못생긴데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삶에 야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세기말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테러 사건의 이유나 동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살인을 저지른 두 명의 재학생 중 에릭은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두 가지 대표적인 특징을 지닌다. 우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다. 아주 사소한 개인적 이들을 위해 남을 속이거나 해치거나 죽인다. 둘째는 이런 배려 없음을 놀라울 정도로 잘 은폐한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가 그토록 위험한 것은 사람들을 기만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는 엄청난 자존감과 우월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밑바탕에 분노의 감정이 강하게 흐른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본성에 양육과정이 복합되어 생겨난다. 사이코패스의 징후는 이른 시기에 나타나며 평범한 형제자매를 가진 안정된 가정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애초부터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에릭에게 행복이란 우리 같은 사람이 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에릭이 재밌고 똑똑한 미소를 지으며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사람들에게 감추고 있을 동안 딜런의 내부는 우울한 마음으로 가득찼다.
"에릭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미친 것도 아니었다. 사이코패스는 이와는 다른 별개의 범주다. 이들의 뇌는 정상인의 뇌와도 정신병자의 뇌와도 다른 그들만의 특징을 지닌다. 에릭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려고, 그리고 살인 행위를 즐기려고."
"에릭에게 콜럼바인 학살은 공연이었다. 일종의 살인의 예술. 일지에서 그는 실제로 청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청중의 대다수는 내 동기를 이해조차 못하겠지." 그는 콜럼바인을 텔레비전으로 중계될 살인 무대로 기획했는데, 그가 가장 우려한 점은 우리가 너무 멍청해서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이야말로 에릭의 궁극적인 무기였다. 그는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스포츠 경기나 댄스 같은 일회성 사건으로 두려워 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평생 두려움을 갖고 살기를 원했다. 이는 결국 들어맞았다. 전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를 두려워했으니까 말이다."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살인의 진부함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는 두 명이 짝을 이뤄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것인데 가장 신경질적이고 변덕스러운 우울증 환자와 가학적인 사이코패스가 만날 때 폭발적인 짝이 된다. 이 관계를 통제하는 것은 사이코패스지만, 불같은 동료는 거대한 먹잇감을 처리할 때까지 그의 흥분을 계속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딜런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도 같았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결정적인 경험은 자기가 느끼기에 아주 심각한 상실이나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릭과 딜런에게는 트라우마가 분노를 작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딜런은 자신의 삶 전체가 실패작이라 여겼고 에릭은 과거에 체포되었던 경험으로 분노가 폭발했다. 콜럼비아 고등학교 총격사건의 주범인 에릭과 딜런은 비극을 스스로 실행한 후 자살을 선택했다. 2년 동안 자살을 생각해온 딜런은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으며 자살의 의지를 이끌어줄 파트너 에릭이 있었다. 에릭은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에릭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강조했고 딜런은 운명에 순응하는 쪽이었다. 딜런은 에릭과 달리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에릭으로서는 불안정한 파트너를 공상에서 현실로 한 발짝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에릭은 딜런처럼 우울증을 앓지 않았고 정신병의 징후도 없었다.
처음부터 에릭과 딜런이 살해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에릭은 대학살을 꾀하기 전에 사소한 범죄를 저질렀다. 에릭은 사춘기 전부터 자신이 살인자라는 특정한 부류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신호를 드러내고 다녔다. 콜럼바인 총격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에릭과 딜런은 절도를 저지른 범죄 사실이 있었다. 에릭과 딜런은 학교 컴퓨터를 해킹해서 사물함 비밀번호 목록을 입수하여 사물함을 털기 시작했지만 들켰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인 에릭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학생주임에게 에릭이 미성년자라고 주장하며 에릭의 범죄 기록을 폐기했다. 이후 에릭이 콜럼바인 고등학교 학생인 브룩스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건이 있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이 일어난 13개월 전에 브룩스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날 밤 조사관이 집에 와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경찰을 지방검찰청에 이를 통보하지 않았다. 에릭과 딜런은 아무 일 없이 교화 프로그램에 면접을 보러 갔다. 브룩스의 부모는 에릭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는데 경찰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콜럼바인 총격사건의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충분히 에릭과 딜런의 전조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는 것, 어른들이 이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들은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에 털어놓는 자백이다. 총격자의 81퍼센트가 자신의 의도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절반 이상의 총격자들이 적어도 두 명 이상에게 말했다. 대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설렁설렁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눈여겨봐야 한다. 모호하고 암시적이고 허황된 위협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반면 위협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동기와 실행 방법까지 거론하면 대단히 위험한 경우다. 감상적으로 토로하는 아이는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에서 장애를 입었지만 살아난 생존자 '패트릭'과 한쉬도 쉬지 않고 아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사망한 '데이브' 선생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또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을 직접 경험하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감정을 너무 많이 느끼거나 반대로 너무 적게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비극의 책임은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감정을 너무 많이 느끼는 아이는 과거의 일이 불쑥불쑥 생각나서 고통스럽고 공포의 기억을 떨칠 수가 없으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4월 20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증상 없이 몇 시간, 몇 주, 몇 달을 지내다가도 광경이든 소리든 냄새든 사소한 계기 하나로 이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사건에 대한 나쁜 기억 정도가 아니다. 사건이 정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이와는 정반대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문을 완전히 닫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쁜 기억과 함께 즐거운 기억, 기쁨도 다 사라진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멍한 상태가 된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은 미국 경찰의 대응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계획을 개발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책반이 꾸려져서 2003년에 '총격자 대처방안'을 발표했다. 새로운 대처방안의 핵심은 적극적이라는 말이었다. 이어지는 10년 동안 버지니아 공대에서와 같은 최악의 총기사건을 포함하여 여러 사건이 잇달아 터졌는데, 이때 경찰과 경호인들은 잽싸게 들어가 총격자를 제지하고 생명을 구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 이후 10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학교 총기사건은 80건이 넘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사건에 대한 비극적인 보고서를 읽으면서 2014년 4월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아직도 세월호에서 구조된 많은 학생들이 생존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들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아픔일 것이다. 대한민국도 2,000페이지가 넘는 문서와 영상, 100명이 넘는 등장인물, 9년 동안의 치밀한 조사로 탄생한 책 <콜럼바인>의 이야기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극적인 사건을 올바르게 다루며 투명하게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극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희생자들과 생존자, 유가족들의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